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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저자는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경영학을 전공했다.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정책 기사를 주로 썼지만 학창시절에 관심이 많았던 문화재와 역사 공부를 꾸준하게 이어와 2011년 결국 문화재 기자가 되었다. 박물관과 유적지 답사를 다니며 얻은 지식과 체험을 바탕으로 칼럼도 쓰고 책도 출간했다. 현재도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쓴다는 그의 저서를 살펴보니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한국사 스크랩>등 다양한 역사 교양서가 있다고 한다.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일으킨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박종인의 땅의 역사'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부러 찾아보았던 프로중의 하나였는데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기자의 발길이 참 좋았었다. 그 프로를 보고 찾아갔던 유적지가 꽤나 있다. 흥미로운 예능의 형태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속에서 유추해보는 우리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프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은 우리 문화유적 발굴 역사 최대의 오점이라는 무령왕릉 출토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연히 발견되어 우리의 앞에 모습을 보였던 무령왕릉을 발굴하는 현장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또한 관리 부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반구대 암각화를 보며 옛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게 한다. 백제의 뛰어난 예술미를 지녔다는 '금동대향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재가 보인다. 논산의 관촉사를 찾아가면 볼 수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니 반가웠다. 그 외에도 고려불화나 고려청자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고려불화는 세계에 160점이 남아있다. 그 중 130점이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에는 13점밖에 없다. 오래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전을 보았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세번을 가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해설사에 따라 그 느낌이 달랐다는 게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었다. 그 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수월관음도'의 아름다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제작기법도 특이하지만 비단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선명한 색채감이나 그 섬세함은 정말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국보'다. 우리나라의 국보1호는 숭례문이다. 그런데 왜 국보와 보물이 다를까? 국보의 뜻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우선 만들어진 지 오래되고 그 시대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 제작 기술이 우수하며 흔하지 않은 것, 이름난 사람이 만들었거나 유서가 깊은 것, 역사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국보로 지정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제가 우리의 문화재를 상대적으로 낮춰 보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지정된 순서에 따라 정해지는 번호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일제의 흔적이라고 본다면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옳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국보에 붙은 숫자 1, 2, 3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은 해도 줄세우기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1호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숭례문이 국보1호인데 흥인지문은 왜 보물2호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점이다.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문화재에 얽힌 옛사진들이었다. 일제강점기 초 불국사 3층 석탑의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 4~6세기 야마토 시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의 증거를 찾기 위해 가야 유적 발굴에 혈안이었던 일제가 조선인 인부를 동원해 고령 지산동 고분군 22호를 발굴하는 모습, 일제강점기 경복궁 경회루앞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과 향원정 연못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의 모습, 석굴암 본존불의 무릎에 올라가거나 첨성대에 개미처럼 들러붙어 사진을 찍은 사람들과 탑평리 7층석탑위에 올라가거나 기단위에 참깨를 말리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1910년 벼락맞은 미륵사지 석탑이 무너진 모습도 그랬다. 미륵사지 석탑도 석굴암도 시멘트를 발라놓은 일제에 의해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모습을 찾아주어야 할 우리의 문화재는 아직도 많다. 신윤복의 호 '혜원'에 얽힌 이야기를 이제사 알게 되었다. '혜원'은 '혜초정원蕙草庭圓'을 줄인 말인데 혜초는 콩과 식물로 여름에 작은 꽃이 피는 평범한 풀이라고 한다. 스스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신세를 빗댄것이라고 하니 그 시절 혜원이 가슴에 품고 살았을 한이 느껴진다. 당대에는 무명화가에 불과했던 신윤복이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일제에 의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재미만을 앞세우는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사찰 직원이 훔쳐 달아났다가 되찾았다는 국보42호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과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부석사 전설속 선묘낭자의 모습을 실제로 한번 보고싶다. /아이비생각
이 책은 우리 문화유적 발굴 역사 최대의 오점이라는 무령왕릉 출토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연히 발견되어 우리의 앞에 모습을 보였던 무령왕릉을 발굴하는 현장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또한 관리 부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반구대 암각화를 보며 옛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게 한다. 백제의 뛰어난 예술미를 지녔다는 '금동대향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재가 보인다. 논산의 관촉사를 찾아가면 볼 수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니 반가웠다. 그 외에도 고려불화나 고려청자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고려불화는 세계에 160점이 남아있다. 그 중 130점이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에는 13점밖에 없다. 오래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전을 보았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세번을 가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해설사에 따라 그 느낌이 달랐다는 게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었다. 그 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수월관음도'의 아름다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제작기법도 특이하지만 비단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선명한 색채감이나 그 섬세함은 정말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국보'다. 우리나라의 국보1호는 숭례문이다. 그런데 왜 국보와 보물이 다를까? 국보의 뜻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우선 만들어진 지 오래되고 그 시대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 제작 기술이 우수하며 흔하지 않은 것, 이름난 사람이 만들었거나 유서가 깊은 것, 역사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국보로 지정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제가 우리의 문화재를 상대적으로 낮춰 보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지정된 순서에 따라 정해지는 번호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일제의 흔적이라고 본다면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옳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국보에 붙은 숫자 1, 2, 3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은 해도 줄세우기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1호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숭례문이 국보1호인데 흥인지문은 왜 보물2호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점이다.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문화재에 얽힌 옛사진들이었다. 일제강점기 초 불국사 3층 석탑의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 4~6세기 야마토 시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의 증거를 찾기 위해 가야 유적 발굴에 혈안이었던 일제가 조선인 인부를 동원해 고령 지산동 고분군 22호를 발굴하는 모습, 일제강점기 경복궁 경회루앞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과 향원정 연못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의 모습, 석굴암 본존불의 무릎에 올라가거나 첨성대에 개미처럼 들러붙어 사진을 찍은 사람들과 탑평리 7층석탑위에 올라가거나 기단위에 참깨를 말리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1910년 벼락맞은 미륵사지 석탑이 무너진 모습도 그랬다. 미륵사지 석탑도 석굴암도 시멘트를 발라놓은 일제에 의해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모습을 찾아주어야 할 우리의 문화재는 아직도 많다. 신윤복의 호 '혜원'에 얽힌 이야기를 이제사 알게 되었다. '혜원'은 '혜초정원蕙草庭圓'을 줄인 말인데 혜초는 콩과 식물로 여름에 작은 꽃이 피는 평범한 풀이라고 한다. 스스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신세를 빗댄것이라고 하니 그 시절 혜원이 가슴에 품고 살았을 한이 느껴진다. 당대에는 무명화가에 불과했던 신윤복이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일제에 의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재미만을 앞세우는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사찰 직원이 훔쳐 달아났다가 되찾았다는 국보42호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과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부석사 전설속 선묘낭자의 모습을 실제로 한번 보고싶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