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세트 - 전8권
고우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벼르고 벼르던 고우영의 초한지(8권)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주말농장에도 가지 아니하고 읽었습니다. 남들은 몇 시간이면 읽어치운다는 만화를 이틀을 꼬박 다 채워가며 읽었습니다. 주말 내내 딸이 제 주위 반경 1미터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착 달라 붙어있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원래 그림 보는 속도가 느린 것이 주된 원인입니다. 만화도 평소에 좀 읽어 본 사람이나 빨리 읽지, 저처럼 만화 대여점에 제 돈 주고 간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글을 읽으랴 그림을 보랴 더 정신이 없습니다. 누가 옆에서 만화책 보는 제 모습을 봤다면 무슨 대단한 철학서적 읽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하하하~

표정은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참으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렇다고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초한지의 결말은, 아시다시피,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으로 끝납니다. 그야말로 허무합니다.
수많은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장수와 병졸들의 목이 댕강댕강 잘려나가고, 허리가 싹둑싹둑 잘려나가고, 몸둥아리가 좌우 균등 분할되는 장면을, 고우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자는 그저 남정네의 노리개이고, 대의(?)를 위해 변절은 밥먹듯하고... 그 전형적인 인물로 날건달 유방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신의 표현대로 '구역질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초한지를 읽었으니, 아니 보았으니, 거창하게 뭐 느낀 거 없냐구요?
없습니다.

예전에 삼국지를 두어번 읽고 나서, 뭔가 '깨달은' 것처럼, 술자리의 안주로 삼아 떠든 적이 있었는데, 부끄럽습니다. 삼국지가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되고 불멸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된 것 역시 부끄럽습니다. 뭐 제가 선정한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본받으라는 건지, 요즘 많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초한지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삼국지 초한지를 읽어야 세상 사는 법을 깨닫는다는 말은 군대 가야 사람된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는 법'과 '사람된다'는 말에 어떤 답이 있겠습니까.

고전을 꼭 읽어야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나, 고전 - 결국은 역사를 읽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 말은 그저 호들갑 떨며 읽지는 말자는 뜻이었습니다. 마치 거기에 무슨 답이 있다는 듯이 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횡설수설합니다. 죽은 한신의 시체를 찾아 떠나는 괴철처럼 말입니다.
죽은 한신의 시체를 얻으러 가는 괴철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고도 범하는 것이 사람의 실책이며, 모르는 듯 누리는 것이 인간의 권세인가?"

고우영의 초한지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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