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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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연계에서 펼쳐지는 생존 기계의 ‘합리적인’ 생존 전략, ESS
―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서평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논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생존 양식이 각기 놀라울 정도로 다르며 고도로 다양한 형태로 분화한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서도, 인간은 특이하게도 자아를 인식하는 능력을 획득한 존재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은 인간 특유의 특성에서 비롯한 물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일까? 왜 인간은 자연의 보편적 법칙에서 일견 위배되어 보이는 행위를 일삼는 것처럼 보이는가? 인간에서 더 나아가, 종의 외연을 확장한 모든 생명체의 본성에 대해 일관적으로 서술하는 법칙은 존재할 수 없을까?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의 본성에서 더 나아가, 생명체의 본질에 대한 일관적인 물음을 희구하는 태도로 이 책을 서술하였다. 도킨스는 스스로를 다위니즘의 신봉자이자 전도사라고 지칭한다. 그는 기존에 두루 지지받았던 학설인 그룹 선택설에 내포된 치명적인 논리적 결함―그룹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외연이 확장될 수도 있고, 따라서 ‘종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개체들이 어디부터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된다는 문제―을 비판한다. 도킨스는 더 나아가 자연 선택을 유도하는 주체가 ‘개체’가 아닌 ‘개체의 몸-운반체’를 빌린 유전자라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유전자는 의식적 존재가 아니고 유전자 풀에서 자신의 사본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퍼뜨리는 방향으로 운반체의 진화 양상을 유도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논점이다. 물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꽤나 설득력이 있지만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확장된 표현형을 다루는 마지막 장에서는 석연치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거의 과학 논픽션에 가깝다는 기분이 들었다)도 있었다. 어떠한 과학적 진리라도 반증 가능성이 성립해야 한다는 포퍼의 지적이나 과학자-인간의 ‘확증편향’이라는 경향성을 굳이 예로 들지 않고서라도 말이다.  


여러 생물체들은 일견 합목적성과 의식을 지니고 때로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은데, ‘이기적 유전자’ 가설은 어떤 법칙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자칫 독자가 오독할까봐 도킨스가 우려하는 바를 강조하자면, 유전자의 이기적 경향은 의식적인 게 아니라 기능적인 성향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유전자들이 증식을 경쟁하는 유전자 풀에서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생명의 진화를 주도한 유전자들은, 자연 선택에 의해서 살아남은 것이지 유전자의 운반체일 뿐인 생명체 개체가 의도적으로 이기적 행동을 일삼는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즉, 이기적 전략을 짜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성공한 유전자의 운반체들이 후세에 유전자 사본을 전달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유전자의 운반체들은 반드시 이기적일 필요는 없고,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모순적 진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 가설이 경제학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킨스는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인기 있는 이론인 ‘게임 이론’을 빌어 이기적 유전자들의 생존 경쟁을 설명한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 가설을 역설하기 위해 메이나드 스미스와 액셀로드 같은 학자들의 이론을 빌어 서술하는 데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매파와 비둘기파간의 싸움에서 시작하여 세대 간 경쟁, 성(性) 간 경쟁이 게임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같은 비영합 게임(non-zero sum game),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까지 면밀히 소개하면서 이타적으로 보이는 개체들의 행동이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전략’에서 비롯하였음을 논증한다.  


죄수의 딜레마가 1회성 게임이라면 상대가 어떤 전략을 펼치든 나의 우월 전략(dominated strategy)은 무조건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다. 만약 나는 협력(예 : 나는 내 부리로 진드기가 붙은 동료의 머리에서 진드기를 떼어준다)하는데 상대는 나를 배신(예 : 동료는 내 머리에 진드기가 붙었을 때 방관한다)하면 최악의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협력하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나는 상대가 내게 협력할지 배신할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죄수의 딜레마가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반복되는 게임이어도 무조건 상대를 배신하는 게 우월 전략일까? 한번 만나면 끝인 관계가 아니라 집단을 이뤄 살아가며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또 만나고 긴 시간동안 매일 만나는 관계끼리도 늘 배신하는 게 우월 전략은 아닐 것이다.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살펴보면, 액셀로드의 유명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에서도 수백 회 반복되는 게임을 시도했더니 다양한 전략을 수행하는 개체들 중에서 대체로 협력(단, 배신자는 기억해뒀다가 다음에 만나면 배신으로 응징한다)하는 전략인 ‘tit fot tat(당하면 갚는다)’ 전략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게임 이론이 생명체의 이타적 행동과 생존 전략에 있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이타적 행동이나, 천적의 출현을 알리지만 정작 본인은 위험에 노출시키는 경계음을 내는 조류의 이타적 행동도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유전자의 이기적 발로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타적 행동을 하는 개체들의 입장에서 벗어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특정한 유전자는 꼭 그 개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특히 근친도가 가까운 개체(부모자식, 형제자매 등)는 자신의 유전자를 상당수 지니고 있다.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근친도가 높은 개체의 이득과 해당 유전자를 포함한 운반체(즉, 해당 개체의 몸)의 이득을 종합적으로 계산했을 때 자신의 유전자가 더 널리 보존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게끔 개체의 생존 양식과 패턴을 진화시킨다는 말이다. 이것을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이라고 한다.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개체들의 이타적 성향과 더 나아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 세계에서 우리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해야 할 행동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임승차(상대가 협력할 때 이익을 얻으면서 나는 배신하는 전략)를 하는 개체가 무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무리는 절멸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성향을 지닌 무리는 자연 선택에 의해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유구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생명체들은 무임승차의 전략이 당장은 이득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봤을 때 근시안적 전략이라는 교훈을 얻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나니, 세계를 바라보는 경제학적 사고가 투영된 진화생물학의 논증을 따라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여행하고 긴 여정을 겨우 마친 기분이다. 경제학은 선택에 대한 학문이며, 주류 경제학은 합리적 인간관을 기본으로 한다. 경제학에는 인간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소의 노력으로 최적의 효과를 얻으려 한다는 제레미 벤담 식의 공리주의식 사고가 투영되어 있다. 사실상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인간의 ‘합리적’ 성격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기적’ 성격이 아닌가? 반대로 ‘이기적’ 유전자를 ‘합리적’ 유전자라고 기술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어쩌면 도킨스 식의 진화생물학은 경제학적 세계관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론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결국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눈이라는 도구로 세계를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로웠고 설득력도 있었지만 도킨스의 단정적 어조가 시종일관 불편하게 느껴진 구석도 없잖아 있었는데, 책을 덮으며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세계를 바라보는 편리한 도구인 경제학이 비판을 허용하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에서 도그마가 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쳐 섬뜩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하나의 편리한 도구일 뿐, 기실 불완전한 학문이다. 경제학 이론이 모든 현상에 적용될 수 없는 비일관적인 이론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유전자가 이기적이어서 인간이라는 종도 합리적(또는 ‘이기적’)인 경제적 인간으로 진화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투영되어 이기적 유전자관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일 뿐, 다른 해석 포인트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결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고찰하는 즐거운 사변에 빠져들기도 했다. 


아직 의문이 다 풀리지는 않았다. 인간은 왜 존재할까? 인간은 왜 의식을 지니게 된 것일까?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의식을 지닌 인간의 행위―앞서도 서술했듯이 ‘일견 반자연적으로 보이는 행위’ ―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의식’을 ‘실행상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기계가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된다고 하는 진화 경향의 극치’라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진화 과정에서 왜 이런 경향의 극치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비정상적으로 큰 뇌를 지니고 괴상한 생존 양식을 지녀 ‘문화’라는 것을 발전시키며 존재해 왔을까? 도킨스는 유전자(gene)가 아닌 밈(meme)이라는 새로운 자기 복제자를 제시한다. 감각 지각-상황대처(운동)의 연계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발생한 기관인 뇌가 인간의 경우 특수하게 커지며 ‘밈’이라는 자기 복제자가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밈은 인간의 문화와 영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창조적 원동력이 되어 왔다. 그래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밈의 복제를 통해 영원을 꿈꾸게 되고, 그래서 시간 속에 스러져가는 초라한 존재인 자기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우리는 그래서 또다시 문화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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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읽은 도서 목록

1.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사 (4th reading)
2.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버틀런트 러셀/사회평론
3. 마담 보바리/귀스타브 플로베르/민음사
4. 시선은 권력이다/박정자/기파랑
5. 삼월은 붉은 구렁을/온다 리쿠/북폴리오
6.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레디앙미디어
7. 흑과 다의 환상 (상) (하) /온다 리쿠/북폴리오
8. 불한당들의 세계사/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민음사
9.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민음사
10. 인간문제/강경애/문학과지성사
11. 페미니즘/제인 프리드먼/이후
12.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민음사
13. 변신 이야기 2/오비디우스/민음사
14. 스키니 비치/로리 프리드먼 · 킴 바누인/디자인하우스
15. 도살장/게일 A. 아이스니츠/시공사
16. 촘스키의 아나키즘/노암 촘스키/해토
17.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
18. 2008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김애란 외/해토
19. 스타일/백영옥/위즈덤하우스
20. 아름다움의 과학/울리히 렌츠/프로네시스 
21.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유시민/돌베개
22.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이태진 김재호 외/푸른역사
23.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해냄
24. 소비의 사회/장 보드리야르/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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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문제 - 강경애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7
강경애 지음, 최원식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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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만에 장자 첨지는 관가에 고소장을 들여 이 근처 농민들을 모두 잡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무수한 악형을 하고 혹은 죽이고 그나마는 멀리 쫓아버렸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혹은 아들딸을 잃어버린 이 동네 노인이며 어린 것들은 목이 터지도록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혹은 아들과 딸을 찾으며 장자 첨지네 마당가를 떠나지 않고 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고 울고 또 울어서 그 눈물이 고이고 고이어서 마침내는 장자 첨지네 고래 잔등 같은 기와집이 하룻밤 새에 큰 못으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그 못이 즉 내려다보이는 저 푸른 못이다.-8-9쪽

신철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차서 대답도 못 하였다. 그리고 자꾸 꺼꾸러지려고만 하였다. 외눈까풀이는 뒤에서 벽돌을 받들어주었다. 신철이는 그만 이 짐을 벗어던지고 달아나고 싶었다.

…(중략)…

신철이는 외눈까풀이를 잃어버리고 한참이나 찾다가 그만 나와버렸다. 그는 수없이 깜박이는 저 전등을 바라보며 잉여노동의 착취! 하고 생각하였다. 그가 책상에서 『자본론』을 통하여 읽던 잉여노동의 착취보다 오늘의 직접 당하는 잉여노동의 착취가 얼마나 무섭고 또 근중이 있는가를 깨달았다.-276-277쪽

그도 모르게 그는 소리를 지르고 나서 우뚝 섰다. 그의 앞은 아득해지며 어떤 암흑한 낭 아래로 채여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려서부터 그리워하던 이 선비! 한번 만나보려니…… 하던 이 선비, 이 선비가 인전 저렇게 죽지 않았는가! 찰나에 그의 머리에는 아까 철수에게서 들었던 말이 번개같이 떠오른다.
"돈 많은 계집을 얻구, 취직을 하구……."
그렇다! 신철이는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그로 하여금 전향을 하게 한 게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가? 과거와 같이,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현재와 같이 아무러한 여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철이는 길이 많다. 신철이와 나와 다른 것이란 여기 있었구나!
-389쪽

이렇게 생각한 첫째는 눈을 부릅뜨고 선비를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사모하던 저 선비! 아내로 맞아 아들딸 낳고 살아보려던 선비! 한번 만나 이야기도 못 해본 그가 결국은 시체가 되어 바로 눈앞에 놓이지 않았는가!
이제야 죽은 선비를 옜다 받아라! 하고 던져주지 않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첫째의 눈에서는 불덩이가 펄펄 나는 듯하였다.
그리고 불불 떨었다. 이렇게 무섭게 첫째 앞에 나타나 보이는 선비의 시체는 차츰 시커먼 뭉치가 되어 그의 앞에 칵 가로질리는 것을 그는 눈이 뚫어져라 하고 바라보았다.
이 시커먼 뭉치! 이 뭉치는 점점 크게 확대되어가지고 그의 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아니, 인간이 걸어가는 앞길에 가로질리는 이 뭉치…… 시커먼 뭉치, 이 뭉치야말로 인간 문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위하여 몇 천만 년을 두고 싸워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 큰 문제를 풀어나갈 인간이 누굴까?-389-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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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보르헤스 전집 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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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읽었던 소설 중에서 베스트 3 안에 들며 그 중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작품중 하나가 보르헤스의 《픽션들》이었다. 《픽션들》만 몇 번이고 읽다가 보르헤스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서 기대를 갖고《불한당들의 세계사》를 도서관에서 빌려 와서 단숨에 다 읽었다(두께도 매우 얇다).

솔직히 말하자면 《픽션들》만한 작품집이라고 기대하고 읽었는지라 좀 많이 실망했다.  〈바벨의 도서관〉,〈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끝없이 두 개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기억의 천재, 푸네스〉, 〈비밀의 기적〉등등 《픽션들》에서는 한 작품도 버릴 작품이 없이 충격과 흥분을 자아냈었는데 말이다. 역자가 작품해설에서 밝히고 있듯이 상호 텍스트성, 다시 쓰기와 같은 보르헤스 작품의 특성이 서서히 태동하는 첫 작품집이라 아마도 미숙함이 있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기타 등등〉에서 천일야화를 새롭게 고쳐쓴 이야기 같은 것은 재미있었다. 이 작품집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기존에 있었던 작품들을 현대의 언어로 다시 고쳐 썼을 뿐이라고 한다(〈장밋빛 모퉁이의 남자〉를 제외하고) . 각 작품마다 참고해서 쓴 문헌들이 참고문헌이라고 맨 뒤에 실려 있다.

이 작품집에서는 노예 상인, 사기꾼, 해적, 사무라이와 같은 불한당들이 등장해서 이와 같은 제목이 붙었다고 한다. 각 작품의 주인공들의 일대기는 역사서처럼 건조하게 서술되어 있다. 기존의 텍스트를 다시 썼다는 의미에, 문학은 어차피 동어반복적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절망감이 숨어 있다, 고 작품 해설에서는 말하고 있다. 만약에 내가 기존의 원전 텍스트들을 알고 나서 이 텍스트들을 읽었더라면 그것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느꼈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별 감흥없이 이 작품집을 읽어야만 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이 작품집에서 묻어나는 고민을 발전시킨 작품이 아마도 《픽션들》의〈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작품일 것이다. 그 작품은 삐에르 메나르가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한 자도 빠짐없이 고쳐썼지만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다는 충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르헤스가 세계 각국 불한당들의 이야기 원전을 현대의 언어로 새로이 고쳐쓰면서, 과거의 언어와는 사회역사정치적 맥락에서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창조했듯이 말이다.

보르헤스의 고쳐쓰기 작업엔 소설은 늘 동어반복적일뿐 새로운 메시지나 이야기를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절망적인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발달(그러고 보니 보르헤스가〈끝없이 두 개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하이퍼텍스트를 예견했다고 하는데, 쩝…)로 텍스트들과 재생산된 텍스트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이 시대에 과연 소설을 쓴다는 작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억원짜리 칙릿과 같은 작품이 넘쳐나고, 무릎을 칠 만한 현재의 읽을거리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과거회귀적이 되는 것일까. 오늘도 고전을 찾아 헤매다, 보르헤스가 던지는 메시지에 착잡한 심정이 되어 나는 오늘도 절망적이면서도 착잡한 의문에 빠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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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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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뭔가 신비스러운 제목을 붙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황혼녘 백합의 뼈》등등등.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는 제목들은 작가가 좋아한다는 미스터리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당분간 현대 일본 소설은 읽지 않기로 한 터에 대형 서점을 어슬렁 거릴 때마다 이 책의 예쁜 표지가 나를 살살 유혹하는 걸 보고도 지나쳤었는데,《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작품을 선물받아 읽고 나서 온다 리쿠라는 작가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그 작품 4부에서 《흑과 다의 환상》을 예고하기에 호기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매우 재미있어서 두 권을 한 자리에 앉아 단숨에 읽어버렸다.

대학 동창인 네 친구 리에코, 아키히코, 마키오, 쎄쓰코가 사십을 앞두고 Y섬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이 작가 특유의 이야기 풀어내는 방식이 작품마다 비슷하여 흥미롭다. 《밤의 피크닉》도 성장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년 소녀들간의 관계에서 뭔가 알듯 모를듯한 비밀들이 야간 보행제를 통해 밝혀지는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하다. 온다 리쿠 작품은 《밤의 피크닉》,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세 편을 읽어 보았는데,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각 장에서도 그렇고 (나는 ‘미스터리 장르’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른다) 등장인물들과의 관계, 그들을 어우르는 제 3의 인물의 정체, 추리로 인한 사건의 전말 같은 게 조금씩 밝혀진다.

……라고 정의를 내리니 뭔가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나는 온다 리쿠의 작품에 ‘미스터리 장르’라고 이름 붙이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읽었던 작품들에 한해) 온다 리쿠의 작품에는 추리 소설처럼 탐정이 등장하지도 않고, 뭔가 극적인 (해결되어야만 하는) 사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의 시놉시스 비슷한 것들을 읽고 나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과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주인공들은 평범한 인물들일 뿐이다. 다만 우리의 삶 자체가 미스터리라며 미스터리를 예찬하는 아키히코의 말처럼, 연애와 애증, 한 인간의 중요한 가치나 성격, 그를 둘러싼 인간 관계, 행동을 야기한 원인 같이 보편적 인간 삶에 숨어있는 의미나 이유를 끊임없이 탐색할 뿐이다. 온다 리쿠는 복잡한 관계에서 벌어진 일과 인물간의 심리들을 퍼즐처럼 치밀하게 플롯을 짜놓아 작품이 진행되면 될수록 톱니바퀴처럼 그것을 들어맞게 만든다. 여기에 굳이 ‘미스터리 장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난 뭔가 못마땅한 것이다.

리에코의 시점, 아키히코의 시점, 마키오의 시점, 쎄쓰코의 시점으로 번갈아서 소설은 진행된다. 각 시점에서 관찰된 인물들과 관찰되었던 인물들의 입으로 나레이션이 나올 때 같은 사람도 있고 이질적인 사람도 있다. 차분하고 신중한 리에코는 관찰된 모습과 본인의 나레이션이 거의 일치하는 인물이라면, 명랑한 쎄쓰코는 나름의 지옥과 신중함을 안고 사는 인물로 관찰된 모습과 본인의 시점에서 부조화가 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론 그것까지 계산해 놓은 설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디스트적 성격이 다분한 마키오(와 같은 인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의 시점으로 쓴 3부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음……. 별 세개, 별 네 개, 별 세 개, 하고 고민하다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라서 별 네 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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