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문제 - 강경애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7
강경애 지음, 최원식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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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만에 장자 첨지는 관가에 고소장을 들여 이 근처 농민들을 모두 잡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무수한 악형을 하고 혹은 죽이고 그나마는 멀리 쫓아버렸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혹은 아들딸을 잃어버린 이 동네 노인이며 어린 것들은 목이 터지도록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혹은 아들과 딸을 찾으며 장자 첨지네 마당가를 떠나지 않고 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고 울고 또 울어서 그 눈물이 고이고 고이어서 마침내는 장자 첨지네 고래 잔등 같은 기와집이 하룻밤 새에 큰 못으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그 못이 즉 내려다보이는 저 푸른 못이다.-8-9쪽

신철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차서 대답도 못 하였다. 그리고 자꾸 꺼꾸러지려고만 하였다. 외눈까풀이는 뒤에서 벽돌을 받들어주었다. 신철이는 그만 이 짐을 벗어던지고 달아나고 싶었다.

…(중략)…

신철이는 외눈까풀이를 잃어버리고 한참이나 찾다가 그만 나와버렸다. 그는 수없이 깜박이는 저 전등을 바라보며 잉여노동의 착취! 하고 생각하였다. 그가 책상에서 『자본론』을 통하여 읽던 잉여노동의 착취보다 오늘의 직접 당하는 잉여노동의 착취가 얼마나 무섭고 또 근중이 있는가를 깨달았다.-276-277쪽

그도 모르게 그는 소리를 지르고 나서 우뚝 섰다. 그의 앞은 아득해지며 어떤 암흑한 낭 아래로 채여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려서부터 그리워하던 이 선비! 한번 만나보려니…… 하던 이 선비, 이 선비가 인전 저렇게 죽지 않았는가! 찰나에 그의 머리에는 아까 철수에게서 들었던 말이 번개같이 떠오른다.
"돈 많은 계집을 얻구, 취직을 하구……."
그렇다! 신철이는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그로 하여금 전향을 하게 한 게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가? 과거와 같이,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현재와 같이 아무러한 여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철이는 길이 많다. 신철이와 나와 다른 것이란 여기 있었구나!
-389쪽

이렇게 생각한 첫째는 눈을 부릅뜨고 선비를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사모하던 저 선비! 아내로 맞아 아들딸 낳고 살아보려던 선비! 한번 만나 이야기도 못 해본 그가 결국은 시체가 되어 바로 눈앞에 놓이지 않았는가!
이제야 죽은 선비를 옜다 받아라! 하고 던져주지 않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첫째의 눈에서는 불덩이가 펄펄 나는 듯하였다.
그리고 불불 떨었다. 이렇게 무섭게 첫째 앞에 나타나 보이는 선비의 시체는 차츰 시커먼 뭉치가 되어 그의 앞에 칵 가로질리는 것을 그는 눈이 뚫어져라 하고 바라보았다.
이 시커먼 뭉치! 이 뭉치는 점점 크게 확대되어가지고 그의 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아니, 인간이 걸어가는 앞길에 가로질리는 이 뭉치…… 시커먼 뭉치, 이 뭉치야말로 인간 문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위하여 몇 천만 년을 두고 싸워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 큰 문제를 풀어나갈 인간이 누굴까?-389-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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