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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빠가 혼자 끼니 챙기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싫었다. 홀로 쌀을 씻고 밥을 짓고 장을 보러 가서 사온 김치, 생선은 물론 텃밭에 심은 잘 익은 채소로 만든 찌개나 반찬도 아빠가 직접 요리한다는 게 오랫동안 짠했고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도 않다. 할머니는 매번 아빠가 굶거나 못 드실까봐 걱정하셨지만 명절이나 휴일날 한번씩 뵙는 아빠는 오히려 살이 오를 정도로 얼굴이 더 좋아지셨다. 할머니를 비롯한 친척과 지인들이 다들 한마디씩 해도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아빠의 도시생활이 꽤 고달팠고, 좋아하는 재료를 구해서 좋아하는 음식을 해먹는 일-그게 혼자일지라도-을 꽤 좋아하셨거나 적어도 거부감이 없었다는 거다. 만약 아니었다면 엄마가 매주 9첩 반상을 택배로 보내거나 1주에 한 번은 반찬이나 집안일 해주러 가시지 않았을까. 일류 주방장 요리사는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많고 세상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즐겁고 편하다는 아빠가 혼자 감당하는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이 가끔은 속상하다. 천성적으로 우리 가족은 혼자서도 잘하고 혼자를 더 편하다고 여기는 성향의 집단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 다니러가면서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파릇한 배추로 김치를 담그고 집에 있던 소금 절인 갈치, 짱아치, 멸치볶음, 매실액기스 등을 쌌지만 내가 9첩 반상 준비하라고 하자 좀 비어 있어야 아빠가 심심할 때 장보러 가는 재미가 있다고 하셨다. 아니면 매일 그집에서 혼자 뭐하겠냐고. 정작 아빠는 하루하루가 예전보다 더 바쁘다고 하셨는데. 우리도 집에서 세 끼 챙겨먹다 하루 가는 걸 보면서 간혹 느끼는 총알같은 시간 아니 인생무상 아니었나. 때로는 먹으려고 사는지 살려고 먹는지 헷갈리던 존재의 답보상태. 그런데 엄마가 평생 챙겨야 할 동반자 대신 나와 동생에게 밥을 더 많이 해주고 우리의 반찬투정과 요구사항을 더 많이 듣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결혼을 늦게 하는 건 내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나이인만큼 왠지 모르게 집안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엄마의 기회를 박탈한 듯한 이상야릇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하여간 요리 잘 하는 남자친구 만나서 스무살 때부터 많이 얻어 먹지만, 자기가 먹은 과자 봉지도 제 손으로 안 치우는 (친)동생만 빼고는 대부분의 남자가 부엌일을 하는 게 어쩐지 좀 짠하고 안쓰럽다. 내가 해줘야 하는데, 내가 해야 하는데, 내 일인데, 라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지만.

 

아마 보통 사람들 마음이 다 그런 편이라서 남자의 나이듦이 여자의 나이듦보다 더 서글프고 특별한 일이 아닌지 반문한 게 아닐까. 여성은 나이 들수록 자녀양육, 집안대소사에서 벗어나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가 돈독해지고 친밀해지는 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고 직장을 관두면 친구, 가족, 꿈, 희망 심지어 자기자신마저 잃고 주위(관계)와 단절됨으로서 홀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필 '왜 남자'인지는 <독신의 오후>가 어느 정도 증명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중국을 급속도로 관통하고 있는 사회문제-고령화-를 정점에서 혹은 미리 탐색하는 독신 사회학 보고서에 가깝다. 술술 잘 읽히면서도 꽤 실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리 대단해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도 결국 언젠간 우리 모두 늙고 병들어 혼자가 되는 때가 온다. 독신은 비혼, 이혼, 사별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독신의 필수조건으로 경제 자립, 정신 자립, 생활 자립을 들 수 있는데, 여성의 경우 대체로 정신 자립과 생활 자립을 갖추고 혼자가 되는 반면, 남성의 경우 차 한 잔 끓여먹을 줄 모르거나 속옷 한 장 찾아입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 비추어, 경제 자립이 완전하더라도 여성에 비해 남성의 독신이 훨씬 더 어렵고 고달프게 평가될 때가 많다. 혼자 사는 남성의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풀어내면서도 가장 중점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바로 남자의 나이듦이다. 질병이나 고령으로 자립이 힘들거나 어려운 남자들에게 자립도의 측정과정을 통하여 여러가지 조언과 위로를 모색하고 있다.

 

저자가 일본 여성 사회학자인만큼 다루는 사례 대다수가 일본의 경우를 보여주지만 우리나라의 성비와 출산율, 고령화 현황이 일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에서 번역 출간이 결정된 것이다. 늙어서 장을 보러갈 수도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된다면, 몸이 아파서 누군가의 보살핌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 대처법은 주로 돈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식사를 혼자 준비하는 데 서툰 남성에게는 편의점 도시락의 왕국인 일본이니 문제 없고 성욕은 타인과의 적극적인 관계 맺기로 충분히 해결가능하며, 고독과 외로움의 문제는 혼자 산다는 것을 고립되었다고 느끼기 보다 즐기면 된다는 해결법은 다소 피상적인 구석이 있다. 생활 즉, 먹는 문제는 요리에 소질이 없거나 몸이 아파 밥을 못 해먹는 데 있다기보다 배달음식이나 도시락 등 매끼를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먹을 경제력의 유무에 있을 수밖에 없고, 경제력이 탄탄한데 몸이 불편한 경우라면 애초 시설 좋은 요양원이나 양로원행을 택할 것 같다. 자발적으로 혼자가 된 사람과 비자발적-사고나 불운-으로 혼자가 된 사람의 경우는 처음부터 독신의 생활에 대한 사고와 대처가 다를 수 밖에 없고, 문제는 배우자를 잃고 혼자가 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가 되었는데 몸이 아픈 사람에게서 나타나며, 질병은 혼자든 둘이든 서서히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파괴한다. 어느 정도 아니 어쩌면 사회적 보장과 제도가 가장 탄탄해야 노인과 병든 사람을 홀로 방안에서 죽어가지 않게 할 수 있다. 저자 역시도 흔히들 말하는 고독사와 홀로 죽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보살펴주는 이 하나 없어 어쩔 수 없이 혼자 죽어간 경우가 전자라면, 후자는 인간은 누구나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는 데 중점을 둔다.

 

논점이 꽤 많은 책이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독신의 유형, 질병으로 인한 간병-배우자 간병과 자식의 간병, 연애와 재혼, 식생활부터 섹스까지 독신의 어려움들, 재활시설-요양원이 나은가 자식이 모시는 게 나은가의 문제, 나이듦, 고독사, 이 모든 것들의 사회적 문제화까지.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여러가지 이유로 혼자가 된 사람들의 재사회화 혹은 타인과의 관계맺기다. 나로선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혼자가 되는 것도 혼자가 되어버리는 것도 아직 잘 와닿진 않지만 그럴 경우 마음에 담고 있으면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과 원칙이 나열되어 있어 유용하다. 역시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오로지 나로서,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다. 누구나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원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은 무턱대고 혼자가 되면 더 괴롭고 외로워 불행하다. 반대로 도시에서 인간관계나 일적인 스트레스로 상처가 컸던 사람은 오히려 혼자가 되어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본인을 파악하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첫 번째가 되어야 하며, 젊은 사람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혹은 고령화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대처할 것인가를, 나이든 사람은 주어진 삶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내다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세상이 달라진 만큼 혼자이기 위해 혼자가 된 사람들을 자신과 다르다고 태클 걸거나 깎아내리려 혈안이 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남의 삶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다들 왜 자신과 다른 남의 삶을 자기랑 똑같이 만드려고 할까. 그 관심병 선거철 투표, 평소 정치인 견제, 소외된 이웃한테로만 좀 가도 좋을텐데, 이 나라는 뭔 관심이 연예인 사생활 아니면 미혼 혹은 비혼인 사람들한테만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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