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제목의 문장은 카프카가 한 말이다. 나는 애초부터 내가 나 이상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가름나진 않았지만 여튼 카프카는 좋은 뜻에서 한 말이겠지, '휘어진 그림자를 원망하면 안된다. 휘어진 내 몸을 펴야만 한다'고도 했으니까. 어느덧 올해 첫달도 다 지나간다. 말일에 명절 연휴가 있으니 그전에 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첫문장을 못 쓰는 슬럼프에 빠졌다. 시간의 텀으로 나는 점점 가라앉는다. 더 깊이 가라앉으면 떠오르는 시간도 더 길어질 걸 알면서도 뭍으로 올라와야 한다는 걸 자주 잊는다. 귀찮아졌고 지루해졌고 동기부여가 사라졌고 책과 TV는 재미있다. 굳이 적자면 책 몇 권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영상으로 옮긴 다큐를 보았다. 생전 처음으로 스크립터가 되어보았다. 읽어야 할 책을 못 읽어 써야할 리뷰 기한을 넘긴 걸 까먹을 만큼 하얀 여백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얼른 검은 글씨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늘 말하지 못해 안달하고 쓰지 못해 애태우는 애였는데. 간혹 극장과 집을 오가며 텔레비전과 씨름하면서도 나는 잘 살아갈 것이다. 책과 그림, 술과 사람으로 더 풍성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걸 아는 것과는 별개로. 이럴 땐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열정에 바친 예술가들이 부러워진다. 

 

'내 영화, 그림, 표면만 봐라.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던 워홀은 돈을 버는 것, 일하는 것, 사업을 잘하는 것 모두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림은 돈이 되기 어렵지만 건축은 곧 돈이고, 책은 팔려야만 돈이 되고, 영화는 티켓을 파는 걸로, 방송은 광고를 통한 소비욕 자극으로 돈을 번다. 워홀은 상업 예술가, 나아가 사업 예술가를 꿈꿨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 부모 밑에서 유일하게 대학 교육을 받은 그가 뉴욕으로 건너간 건 1949년이었다. 그곳에서 스물 다섯의 동성애 작가인 트루먼 카포티에게 반한다(사랑으로서인지 우정으로서인지 팬으로서인지는 몰라도). 큰 틀에서 보면 예술사에 획을 긋거나 혁신한 건 없지만 그는 24시간 파티장, 히피문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예술패턴이 확연하게 달라지던 역사적 순간에 서 있었다. 워홀의 도전정신은 약간의 발상 전환만으로도 누구나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고흐 생전 유일하게 400프랑(당시 우유 한 잔이 1프랑)에 팔린 <아를의 붉은 포도밭 [Red Vineyards at Arles, 1888]>은 파리의 안개에서 벗어나 프로방스를 거쳐 빛을 향해 남쪽으로 향하던 고흐가 아를의 론 강 근처 작은 마을에서 고갱과 함께 생활하던 중 그린 그림이다. 고흐는 평생 꿈꿨고 가난에 시달렸다. 산만한 사색가였던 그는 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다. 본인이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의 짧은 생애에는 불행의 요소가 많았다. 반면 워홀은 나중보다 현재의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가 돈을 벌 수밖에 없던 이유다.

 

 

*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 -앤디 워홀

 

* "내가 지금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나는 나중에도 가치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사람들이 나에게서 어떤 가치를 찾는다면 나는 지금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이름 모르는 풀잎으로 여겨질지 몰라도 밀은 밀인 것이다."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보다 더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가슴이 시키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죽음이 두려우세요?

"외로움보다는 덜 무서워."

기도를 하세요?

"그럼, 난 사랑을 믿거든."

일을 하시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요?

"매번 무대 커튼이 올라갈 때마다."

여자로서 가장 좋은 기억은요?

"첫 키스."

밤을 좋아하세요?

"그래, 많은 불빛과 함께라면."

새벽은요?

"피아노와 친구들이 있으면 좋지."

저녁은요?

"그건 우리에겐 새벽이거든."

여성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시겠어요?

"사랑."

젊은 여성들에게는요?

"사랑."

어린이들에게는요?

"사랑."

누구 옷을 뜨시는 거죠?

"내 스웨터를 입을 사람."

 

초등학교 중퇴, 키 142센티미터, 부랑의 미혼모,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이브 몽탕, 장 콕토,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 테오 사라포. 가난 속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자란 그녀는 남자(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건네는 모든 조언이 '사랑'에 치중될만큼. 그녀는 <장미빛 인생(원제:프랑스어: La môme, 영어: La Vie en rose)>의 주인공 에디트 피아프이다. 노래와 사랑에 모든 영혼을 바친 여자. 장 콕토는 에디트 피아프에 대해 '나는 피아프보다 영혼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 "사랑은 경이롭고 신비한 거야. 사랑은 나에게 있어 노래를 부르게 해주는 힘이지. 노래 없는 사랑과 사랑 없는 노래는 존재하지 않아." -에디트 피아프

 

 

또다른 여성작가 한 명을 보자.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가 다른 큰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마치 야수와 함께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신경쇠약에 걸리고 전염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뒤 정신질환 증세마저 더해져 자살을 시도한다. 나중에 언니의 권유로 아버지가 같은 남매 넷이 따로 나와 살다가 블룸즈버리 그룹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여기서 포스트, 케인스, 러셀, 헉슬리, 엘리엇, 미술가 프라이 등과 만나고, 역시 블룸즈버리 그룹에 속해 있던 남편과 결혼한다. 그녀가 결혼 후 1차대전이 일어나기 한해 전 <출항>을 탈고한 후 자살을 재시도한 것이나 전쟁의 도가니 속에 미쳐가던 59세에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서 주머니에 돌을 넣고 물속으로 걸어들어가 끝내 자살에 성공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늘 정신이상이 도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강박증에 시달린 울프가 남긴 유서에는 '저는 생명을 잉태해본 적이 없지만 모성적 부드러움으로 이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지금 온 세계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의 역할을 여기서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저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라고 쓰여있었고, 그녀의 시신은 3주 후 강물 위로 떠올랐다.

 

 

 

"당신은 왜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나요?"

"내가 그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리게 될 거야."

 

반면 가톨릭의 보수적인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란 19세 여인. 이탈리아 출신으로 리보르노, 피렌체, 베네치아를 거쳐 파리로 터전을 옮긴 이후 장 콕토, 피카소, 마티스를 만나지만 아방가르드 미술은 물론 어느 화풍에도 가담하지 않고 고독 속에서 독특한 예술실험을 해나간 남성. 그가 결핵성 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림 <자살>을 남기고 9개월의 둘째 아이를 간직한 채 5층 아파트에서 몸을 날린 여자는 베개 밑에 면도칼을 품고 자던, 사랑밖에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22세의 여자였다. 남자와 여자는 20세기 파리 데카당스 청춘들의 한중심에 있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이다. 생전 연인이 나눈 대화는 눈동자를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문이라고 여긴 모딜리아니와 사랑에 모든것을 걸었던 에뷔테른의 잔잔한 행복과 슬픈 아름다움을 그대로 그려놓은 듯하다. 가난한 유대인 화가와 딸의 결혼을 끈질기게 반대한 여자 부모의 고집에도 불구하고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합장된 그들의 묘비명은 이러하다.

 

-이제 막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모든것을 모딜리아니에게 바친 반려

 

 

대가는 도와주고 믿어주는 이가 적지 않은 걸로 이미 대가가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 말미에 덧붙여진 '작가의 말'에서 김영하 작가는 백수 작가지망생 아들의 책상 위에 놓인 재떨이를 매일 비워준 아버지 덕분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썼다. 물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더 좋은 작가가 되겠다고도 썼다. 그렇다면 프로이트 역시 아버지께 자신의 모든 업적과 영광을 돌려야 할 듯하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아들의 발가락이 내 머리보다 영리하다'고 했다. 사람들을 이를 두고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표현한다. 다윈의 진화론과 괴테의 자연론에 영향을 받아 의학을 선택한 프로이트는 '이 작품은 내가 운 좋게 발견한 것들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물들을 담게 될 것이다'라고 자신했던 <꿈의 해석>을 2년간 351부밖에 팔지 못했다. 제1차대전 즈음 독일군을 대상으로 정신병학을 연구했다는 명목으로 나치정권은 그의 서적을 불태웠고,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면서 게슈타포의 위협을 받게 되자 루즈벨트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82세에 영국으로 망명한다. 프로이트의 생도 알고있던 것보다는 훨씬 파란만장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깊숙이 마음을 뚫고 들어온 말은 피카소의 입을 통해서 왔다. 다이어리에 뭔가를 한줄 끄적였다. 그리고 비로소 첫문장을 시작한다. 나쁘지 않게, 더 늦지 않게, 최선을 다하여. 대가들의 짧은 문장 안에서 인생을 대표하는 삶의 자세와 표정을 본다. 나는 자주 어떤 문장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희망을 발견하고 열망을 키운다.

 

* "착상은 출발점일 뿐이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 -파블로 피카소

 

* "세상이 지나치게 좁든지, 아니면 우리들이 엄청나게 크든지, 어쨌든 우리는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프란츠 카프카

 

*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못참을 게 없다는 것이다." -아르튀르 랭보

 

 

하루종일 비맞은 대지가 축축한 물기를 머금었다. 날이 어두웠고, 하늘이 가라앉았고, 나는 무기력했다. 최소한의 말귀가 통하지 않는 어떤 사람 때문에 뜻하지 않게 욕설이 오고가는 싸움을 해야 했다. 집안일이다. 동생이 자진해서 갔지만 동생의 급하고 독한 성격을 알기에 싸움터에 보낸 기분은 편치 않다. 욕은 하되, 손은 대지 마, 말했지만 흥분에 들뜬 동생은 금방 내 말과 내가 말했다는 사실마저 잊을 게 뻔하다. 돌아와서 내가 저사람을 때릴까봐 경찰을 불렀다고 말했으니까. 이제 우리가족은 내가 지킨다며 두주먹 불끈쥐고 나서는 저애가 어릴때부터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며 식구들을 불안에 빠뜨리던 그애가 맞나. 지구대를 거쳐 경찰서까지 갔다 돌아와서도 의기양양하다. 그래, 저애는 웬만해선 기죽는 법이 없지, 그게 자주 나를 미치게 했고, 가끔은 든든했지만. 낮엔 피자를 시켜줬고, 늦게 일어난 내게 피자 데워먹고 있으라고는 싸움터에 갔다. 불안의 오후가 지나고, 장녀인 나보다 더 장남같은 동생의 비행담을 줄줄이 생각해보면서 피식거린다. 저애는 온 삶이 반짝이는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이 불합리한 세상을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뜨거운 자만의 흔적이랄까. 불안하고 초조하고 우려스러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역시 든든하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悲歌를 읽는다. 비가 그쳤는지 밖에 나가볼 생각이다.

 

...

다만 많은 것들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삶 속에 있는

모든 것. 사라져 가는 것이 우리에겐 필요하며

이상하게도 우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쉽사리 사라지는 우리와,

한 번, 모든 것은 단 한 번 존재할 뿐, 한 번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는다.

우리도 한 번 존재하노니 결코 다시 시작되는 법이 없다, 하지만

한 번 이렇게 존재했다는 사실은 되물릴 수 없으리라.

...

대지여, 사랑하는 그대여, 내 바라노라, 오오 믿어라, 이제

그대의 많은 봄 필요치 않으리, 나를 그대에게 이끌기 위해 - 하나의 봄,

아아, 한 번의 봄만으로도 내 피엔 너무 많노니,

이름도 없이 나 그대에게 가려하노라, 오래 전부터,

그대는 늘 옳았노라, 그대의 성스러운 착상은

허물없는 죽임이니.

...

 

-릴케, <두이노의 비가> 제9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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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6 0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4-01-2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 워홀의 말이 재미있어요. 일단 유명해지라는 말도 그렇고, 내 영화, 그림, 표면만 보라는 말도 그렇고요. 그렇다고 사람들 박수 받으면서 똥을 싸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아무것도 없다던 그 '뒤'에 보이는 속셈은 한 번 뒤집어보고 싶기도..

그나저나 님에겐 참 든든한 문장들, 아니, 동생이 있군요. 부럽습니다.

아이리시스 2014-01-27 20:22   좋아요 0 | URL
포핀스님, 저는 확실히 워홀 스타일 쪽은 아닌것 같아요. 유명해지면 돈을 많이 벌고 명성도 얻겠지만 일단 유명해지라는 말에 동조할만큼 제가 성공지향형 인간은 아닌 듯해요, 슬프지만. 아닌건 아닌거죠, 저는 저니까요^^

따로살더니 엄마밥 못먹어서 덩치가 커진, '자주' 짜증나게 하지만 '가끔' 든든한, 피자,자장면,탕수육,순대국 이런거 같이 먹는 아직 같이 사는 동생이 있습니다.. 그제,오늘은 좀 든든합니다. 일년에 이틀 정도만..

2014-01-2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문장도 아이님 글 맥락에 놓이니 다르게 읽히네요. (더 의미 있어져요.)
근데 "세상이 너무 좁거나 우리가 너무 크다. 세상은 자신으로 꽉 차 있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사실 오늘 전 그 정반대를 느꼈어요. 세상은 아주 큰데 우리는 너무 작죠. 작은 몸에 걸맞게 좁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아무래도 저 너른 산맥과는 달리... 오늘 남부에서 로마 오는 기차에서 느낀 거예요. 근데 첫문장이 안 써진다는 건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건데요.?! 아마 소설 아닐까요? 맞죠? :)

아이리시스 2014-01-27 20:17   좋아요 0 | URL
거기 좋아요, 섬님? ^-^bb

친구신청 받아줘서 고마워요. 사진 틈틈이 잘 볼게요!
맞아요, 서글프기도 하지만 세상은 아주 큰데 우리는 너무 작죠. 커지려고 애쓸 뿐이죠. 음, 생각해봤는데요, 첫문장이 안 써진다는 건, 저걸 쓰던 시점부터 지금까지는 '계획한 일과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너무 하기가 싫어' 의 뜻이었던 것 같아요. 징징댄 거죠. 그래서 사실은 그날 다이어리에 초딩계획표 닮은 몇 개월 계획표 짰어요. (소설을 쓰는 건, 소설을 써서 유명한 작가가 되어 (책이든 글이든)잘 팔리고 돈을 많이 버는, 그래서 그돈으로 진짜 마음속에 가득찬 꿈을 이루는 것보다는 아주 쉬운 일이에요, 섬님^^)

남부 어디일까 막 궁금해요, 소렌토,나폴리,아말피,카프리,포지타노,베네치아,피렌체,하하, 마지막 두개는 남부도시에 속하는지는 모르겠네요. 제기억에 의하면 로마보다는 남쪽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 이제 로마에 계세요? :)

안그래도 소식 기다리고 있었는데, 반가웠어요! 남은 시간 즐겁게, 안좋은 일은 당하지 마시고 행운만 가득하시길! (진심-빨리와요, 배아파,부러워,나도가고싶어,어서와요,빨리오세요,빨리)

아이리시스 2014-01-28 01:54   좋아요 0 | URL
으하하, 뭔가 촉이 와서 제가 지금 막 이탈리아 지도 검색했더니 저 도시들중에 로마가 제일 남쪽.. 이걸로 제 방향감각이 제로인 건 증명되고...( '')
그러니까 저는 제가 이동한 순서가 남에서 북으로, 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남쪽에서 사니까. 어쨌거나 섬님이 로마에 계신건 안변하니까 으하하하

사진들 좀 보고 잘게요!

2014-01-28 0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30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9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30 0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30 0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07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3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3 0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4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6 0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