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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리의 만돌린 - 할인행사
존 매든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Nicolas Cage)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땅이 울렁거렸다. 광활한 대지는 삼켰던 것들을 모조리 토해내고 있었다. 겨우 전쟁이 지나간 곳에 평화가 찾아오기 무섭게 다시 이 땅을 흔들어댔다. 마치 신의 목소리라도 들은냥 그렇게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그와 그녀가 만나기로 한 땅은 폐허로 남았다. 남아있던 여자는 뒤돌아섰다. 다시 일어서서 제 집을 지어야 했다. 그리움, 후회, 애틋함, 아쉬움 같은 감정은 멋모를 때의 것으로 치부하고 잊으려 했다, 아니 묻으려 했다. 묻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뒤돌아서니 그가 돌아왔다. 그가, 생사조차 알 수 없던 그가 돌아왔다. 코렐리는 거짓말처럼 펠라기아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와 그녀는 전쟁도 지나가고 지진도 지나간 이 섬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끝맺으면 좋겠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대체 섬은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울까. 온종일 생각했다. 독일 연합군이 된 이탈리아군은 변방의 섬에서 적군의 명목 대신 보호국으로서 그리스를 지켜주길 원하지만 전쟁의 상황이란 녹록치 않은 현실 뿐이다. 처음에 펠라기아에게는 만데라스라는 정혼자가 있었다. 전쟁이 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가 없는 섬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보며 100통도 넘는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다. 사랑은 힘이 없고 현실은 힘이 세다. 만데라스가 없는 동안 만난 이탈리아 대위 코렐리는 전쟁통에 만돌린을 연주하거나 해변에서 병사들과 함께 여자를 끼고 즐긴다. 펠라기아의 눈에는 비정상적 상황 천지다. 전쟁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어야 할까. 코렐리는 옳았다. 펠라기아의 눈에 무모하게만 보이던 코렐리가 점점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 둘은 처음으로 서로의 몸을 껴안던 날 더없는 행복을 느낀다.
전쟁이 잦아들고 승리의 소식을 안고서 펠라기아의 정혼자 만데라스가 돌아온다. 그녀가 보낸 편지를 한껏 안고 돌아와 그녀의 추궁에, 난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 라고 대답하는 그는 처음에는 펠라기아가 다시 돌아올 줄로 믿지만 나중에는 코렐리를 살리고 둘의 사랑을 이뤄주는데에 큰 공헌을 한다. 읽고 쓰는 법 대신 멋진 남자의 뒷모습으로 펠라기아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만데라스는 섬의 모닥불과 함께 연주되던 만돌린의 음악보다 훨씬 시리고 멋졌다. 모두를 취하게 한 연주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
살기 위해 섬을 떠났지만 오랫동안 서로의 가슴에 남아있던 코렐리와 펠라기아의 사랑은 그가 보낸 만돌린의 음반 속 곡들처럼 아름답고 아련하게 울려퍼졌다. 전쟁 중의 사랑. 극한의 사랑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애틋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훈훈함은 코렐리가 연주하는 만돌린의 은은한 선율에서 찾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섬은 다시 섬이고, 그곳에서 다시 그들이 살아갈 것이다. 폐허를 딪고 일어선 희망처럼, 다시 찾아온 사랑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은 축복처럼 그렇게. 모든 것에 이유가 있듯, 그들이 살아남은 데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