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천상병
 
 
나는 아침 다섯 시가 되면
산으로 간다.
서울 북부인 이 고장은
지극한 변두리다.
산이 아니라
계곡이라고 해야겠다.
새벽 일찍이라
자연스레 노래를 부른다.


내같이 노래를 못 부르는 내가
목청껏 목을 뽑는다
바위들도 그 묵직한 바위들도
춤을 추는 양하고
산등성이가 몸을 움직이는 양하고
새소리들도 내게 음악을 주고
나무들도 속삭이는 것 같다
나는 노래한다 나는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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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랜만에 오래도록 잠을 잤습니다. 왼쪽 눈에 다래끼가 나고, 얼굴이 부어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이런 몰골이 오랜만에 거울에 비치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겠습니다만 저만치 달려가는 마음은 조금도 아프지 않고, 조금도 울지 않고 이 길을 갈 수 있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앓고 난 후엔 이렇게 편지가 쓰고 싶어집니다. 건강하고 힘차던 많은 날들을 두고 이렇듯 앓고 난 뒤에야 편지를 쓰는 것은, 앓고 난 후가 주는 그 허전함 때문입니다.

이제 되었는가 싶어, 한숨을 돌리려고 하면 다시 발 아래 깨어지는 엷은 얼음에 놀라 뒤걸음질 칩니다. 봄이 되면 꽃이 피는 줄만 알았지, 발 아래 얼음이 녹는 것도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이럴 때 누가 제게 30방을 친다면 정신을 차릴까요? 아마도 전 달아날 겁니다. 있는 힘껏 달아나 볼 겁니다. 그 몽둥이가 얼마나 매섭고 아픈데 30방을 다 맞고 앉아 있겠습니까? 30방을 다 맞고도 그 자리에 앉았다면 또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오늘은 선생님의 한 말씀이 간절합니다. 혹 그것이 몽둥이일지라도 오늘은 맞을 수 있을 듯합니다. 맞으며 고함이라도 치고픈 날입니다.

그제는 선요를 읽다 선요의 내용과 상관 없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뵈었던 선생님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내가 빚을 갚으리라 하는. 그렇게 하고서 바로 앓게 되니 그 결심이 어디에 갔는지 다시 찾아야 했습니다. 빚 생각은 어디 가고, 앓는 데 온통 마음이 뺏겨 겨우 화두 하나도 놓쳤다 들었다 하니...원숭이 같이 들락날락 거리며, 미친 코끼리처럼 위험천만한 마음입니다.

이제 쉼호흡을 하고 앉습니다.   

20년이 지나면 선생님이 아니라 두 손을 맞잡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분과 이야기 나누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사이 가슴을 나누었던 선생님들이 아니라 또 그 20년 전의 당신께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간 잘못 살았던 걸까요? 한발짝도 내딛지 못한 것일까요? 그래도 돌아보지 않으렵니다. 당한 일보다 당한 일에 대한 생각이 자신을 괴롭힌다더니 잠시 앓고나서 앓은 것보다 더 조각조각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손 잡고 싶은 날입니다. 그런 날도 있는 게지요. 20년 전처럼 안부도 묻지 않습니다. 그때처럼 이 편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이곳에 매달립니다. 이 편지 한 장 부칠 곳을 몰라 여기에 걸어두니 더욱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그런 날도 있는 게지요. 쉼호흡 한번이면 이렇게 평온해지는 것을...하고픈 말도 제대로 아니하고 이렇게 문득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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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2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노을에 부친 편지가
괜히 저의 가슴도 물들입니다.
_()_

이누아 2007-03-2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혜덕화 2007-03-2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도 봄처럼 몸으로 꽃샘추위를 겪으셨나봐요. 저도 요즘 너무 힘들고 바빠서 '평상심이 도다'는 말을 자꾸자꾸 자신에게 되뇌이며 보냅니다. 앓고 난 후의 말간 평온, 앓는 것이 반가운 것은 아니지만 앓고 난 후의 순순한 평온이 그립긴 하네요. 바쁘고 힘든 시기 지나면, 저도 글 올릴게요. 올해 내게 온 인연 중에 일당백을 하는 아이가 있어, 더 더욱 시간 내기가 어렵네요. 집에 오면 뻗어버릴 정도이니......잘 지내세요._()_

이누아 2007-03-2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당백 하는 아이, 모른 척하지 않고 그 아이에게 시간을 내고 계시니 뭉클합니다. 선생님들은 3월에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는 님의 서재에서 예전에 읽었던 글들을 다시 읽고 나왔습니다. 잘 지내셨습니다. 제 보기엔. 오늘도 그날들처럼 잘 지내세요. 맑은 날들입니다.
 

여기서 마침표를 찍고 다시 시작한다 해도

그런 식으로는 이 고리를 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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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일 Vol.1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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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坐中에 最易得力하리니 初坐時에 抖擻精神하야 放敎身體로 端正이언정 不可背曲이니라 頭腦를 卓竪하고 眼皮를 不動하야 平常開眼호리니 眼睛이 不動하면 則身心이 俱靜하리니 靜而然後에사 定이리라.


좌중(坐中)에 득력(得力)하기가 가장 쉬우리니, 처음 앉을 때에 정신을 차려 몸을 쭉 펴고 단정히 할지언정 등을 굽히지 말지니라. 머리를 우뚝이 세우고 눈시울을 움직이지 아니하야 눈을 보통으로 뜨리니, 눈동자가 움직이지 아니하면 곧 몸과 마음이 함께 고요해지리니 고요한 뒤에사 정(定)에 들게 되리라.

                                                                                       -몽산법어(선학간행회 역)*, pp.34-35.

 

 

일전에 "당신의 스트레스 조절능력"이라는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님께서 무슨 원리가 이 그림에 숨어 있을까 하셨는데 그때 제가 "眼靜이면 心靜"이라는 글을 몽산법어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몽산법어를 꺼내 읽다 보니 아마도 위 구절을 보고 제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뜻이야 통하지만은 기왕에 읽다가 눈에 띈 것이라 여기에 옮겨 적어 전의 잘못을 바로 잡습니다.

 

오직 모를 뿐인 공부에 일념정진하시길,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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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몽산법어가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저는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인천 용화사 용화선원(ww.yonghwasunwon.or.kr)에서 나온 것입니다. 가지고 다니기 편하고 실참자가 읽기 쉽게 된 것으로, 시중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용화사에서 전화주문해서 구입가능합니다. 같은 곳에서 판매하는 선가귀감 역시 실참자가 보기에 무척 유익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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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15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고맙습니다.
님께서도 마음 더욱 밝아져 부처님 전에 복많이 짓기를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