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달팽이 > 12865..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브레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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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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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국에 눈이 자꾸 나려 덮여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 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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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이성복
 
내 마음은 골짜기 깊어 그늘져 어두운 골짜기마다
새들과 짐승들이 몸을 숨겼습니다 그 동안 나는 밝은
곳만 찾아왔지요 더 이상 밝은 곳을 찾지 않았을 때
내 마음은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온갖 새소리, 짐승
우짖는 소리 들려 나는 잠을 깼습니다 당신은 언제
이곳에 들어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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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과의 인연으로 만난 몽산법어집..
하루에 조금씩 잘 읽고 있습니다.
세상엔 나의 잠을 깨우는 많은 고마운 이들이 있습니다. _()_

이누아 2007-04-0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의 페이퍼를 읽고 오는 길입니다. 세상일이야 둘째치고라도 몸이라도 좋아져야 할텐데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님도 황사와 꽃샘바람을 뚫고 건강하시길, 수행 여여하시길. _()_
 

그리스도 폴의 江

                  -具     常-

 

그리스도 폴!
나도 당신처럼 강을
회심의 일터로 삼습니다.
허지만 나는 당신처럼
사람들을 등에 업어서
물을 건네주기는커녕
나룻배를 만들어 저을
힘도 재주도 없고
당신처럼 그렇듯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위하여 시중을 들
지향도 정침도 못 가졌습니다.

또한 나는 강에 나거서도
당신처럼 제상 일체를 끊어 버리기는커녕
속정의 밧줄에 칭칭 휘감겨 있어
꼭두각시 모양 줄이 잡아당기는 대로
쪼르르, 쪼르르 되돌아서곤 합니다.

그리스도 폴!
이런 내가 당신을 따라
강에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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