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좌선을 거른 지 좀 되었다 싶어 좌복을 깔고 앉았더니 기침이 좀 난다. 따뜻한 걸 마실 생각으로 거실로 나왔더니 하늘, 구름이 보인다. 마실 것은 잊고 거실에 앉는다. 가만히 본다, 구름.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들. 저기 저렇게 있는데, 저기 가면 안개처럼 느껴지겠지. 헤세...구름을 사랑했던 사람. "구름을 나보다 잘 알고,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다오"라고 했던 페터가 떠오른다. 헤세의 [페터 카멘치트]...지금 내겐 그 책이 없군. 페터의 구름 예찬이 듣고 싶어진다. 아니, 이렇게 구름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

가만히 본다. 가만히 보는 것은 얼마나 미세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냐. 구름이 움직인다.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 흰 빛이었다가 검은 빛으로, 위는 희고 아래는 검게...조금도 가만 있지 않고 조금씩 움직인다. 숨쉬는 것만 같아. 햇살 때문에 조금 윗쪽의 구름들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저 구름들이 사라질 때까지 이렇게 앉아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다.

안녕, 구름들. 그러나 구름은 날 쳐다 보지 않는다. 그런 무심함이 좋아. 무심해도 구름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 같아. 가만히 가만히 보는 구름에게서 신성을 느껴. 모든 것들에게 그것이 있다더니 가만히 보지 않아서 보지 못했던 걸까? 구름. 구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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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9-24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아침에 왔다가 다시 들렀어요. 님의 글이 참 좋네요.
모든 것에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님처럼 마음의 눈으로 구름을 볼 수 시간이 내게도 올 수 있을른지..

불쑥 댓글 달고 가옵니다.

이누아 2006-09-2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신성이 어떤 건지는 몰라요. 그런데 신성이란 게 있다면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 구름이었어요. 어제는 정말 내내 구름을 봤어요.

파란여우 2006-09-2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하면 낙엽과 구름의 시인이죠.
이누아님은 구름 보고 이리 멋진 글을 써 주시니
저는 헤세처럼 낙엽을 모아 낙엽타는 냄새를 맡고 싶어집니다.

이누아 2006-09-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양이 부족한가 봐요. 헤세는 낯익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헤세와 낙엽에 대해 떠오르는 게 없네요. 아마 전 파란여우와 낙엽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님의 댓글이 아주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