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하다고 이름나신 분들을 찾아뵈도 별 느낌이 없었던 터라 내 업장이 두터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링린포체를 뵙고는 변화를 느꼈다. 무엇이든 끈기있게 잘 하지 못했던 내가 그분이 가르쳐주신 만트라를 아직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분을 생각만 해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인연이란 게 있나 보다. 내가 뵈었던 다른 분들이 훌륭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인연 있는 분을 만나면 느낌이 더 강한가 보다. 무여 스님을 가까이서 친견했을 때도 어떤 근심 하나를 없애버린 느낌이었다. 그분들을 만나고 나면 더 쉽고, 자연스럽게 불법에 다가갔다.

나는 달라이라마께는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링린포체 때문에 링린포체에 대한 책을 구해볼 수 없었던 터라 하는수없이 달라이라마의 책을 읽었다. 철저하게 공부하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글을 읽으며 이상하게 공부보다는 더 순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친구가 일본에 오신 스님을 뵈러 가고 싶다고 했다. 왜 안 되는가? 가자!

그렇게해서 4월 15일에서 18일의 일정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지방인 탓에 거의 14일에서 19일의 일정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넓고 큰 장소에서 뵙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공간에서 친견했을 때의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고보니 무여 스님도 법당에서 뵈었을 때와 스님의 방에서 뵈었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무 기대도 없이 나는 멀찍이 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내 몸이 전율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 의식은 아무 변화가 없는데 내 안에 무의식이 떨고 있었던 것일까? 티벳에 가고 싶다는 스님의 말에 모두 숙연해졌을 때 티벳에 별 관심이 없던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떨며, 뜨거워지는가? 사람이 자신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고, 다른 이의 입장과 다른 이의 유익을 생각하는 것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너와 나라는 테두리 없이 그 느낌이 전달될 수 있는 것일까? [이연혜연선사발원문]의 "내모양을 보는 이나 내이름을 듣는 이는 보리마음 절로 나고.."하는 구절이 떠올랐다. 정말 저절로 보리마음이 일었다.

어느 나라에 태어나고 싶냐는 질문에 "중생계가 다하고 허공계가 다하도록 고통이 있는 곳에 태어나 그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셨다. 농담으로 "그럼, 북한에 태어나야 겠다"고 덧붙이셨다. 북한이 가장 고통받는 곳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고통 있는 곳에 태어나고 싶다...나라 잃은 정치지도자로서의 고통이 지금도 진행중인데 더 고통 있는 곳에...

전에 나는 책에서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아무 망설임없이 "예"라고 대답하셨고, "당신도 외로운 적이 있지요?"라는 정신과의사의 질문에 "아닙니다. 거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신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친견 후에 그 대답이 꾸밈없는 사실임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닮고 싶었다. 이 분처럼 행복하다고 그게 아주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하고 싶었다. 고통은 늘상 있는 것이다. 그분의 처지에서 행복이라니 싶은데, 행복은 조건이 아님을 그분을 통해 본다. 나도 그분처럼 행복하고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고통 있는 곳에 태어나고 싶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사실, 나는 고통이 무섭다. 매일 수행하지 않으면 자비심을 잃게 된다는 그분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매일 수행함으로써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없앨 수 있으리라.  

달라이라마께서는 언제나 나는 그저 공부하는 사람이지, 깨달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철저하게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과 선배수행자들의 논장을 공부하라고 하신다. 감동만으로 부처님의 자식(불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강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꼭 공부를 제대로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에게 쉴 때 함께 달람살라에 가자고 했다. 내가 그분을 다시 뵈러 인도에 가기 전에 그분이 한국에 오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 선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우리나라가 거부하다니...부끄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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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5-0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안 들어와본 사이에 페이퍼가.. 그나저나 드뎌..일본에 다녀오셨군요. 존경하는 분, 만나뵙고..정말 잘 됐어요! 저도 사실 고통이 두렵긴 한데, 요즘엔 고통이 주는 일정한 질서에 순응해야겠단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예를 들면 저보단 좀 더 빨리 다가올 어머니의 죽음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당신 스스로가 천천히 생을 정리해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이 주는 고통이나 슬픔보다는 어머니가 무척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라는 인간에 대한 재발견같은 거요. 그래두..여전히 생은 고통스럽고 외로울 거 같아 두렵습니다. 참내! 도사같은 소리만 합니다, 그려..흘..

이누아 2005-05-05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이라마는 고통은 늘상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눈만 마주치면 웃고 있고, 인간이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신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 봅니다. 그에게 가능한 일이라면 우리에게도 가능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거의 3년이 되어서야 아버지 이야기를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라는 단어만 입에 담아도 눈물이 났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아프고 늙고 죽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며 제게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슬픔이 너무 커서 복돌님처럼 아버지의 매력이나 존재에 대해 생각할 겨를을 갖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좀더 성숙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복돌님의 어머님이 그렇게 위중하신지 몰랐네요. 순응은 순응이고, 어머님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셔서 복돌님과 좋은 시간 가지시기를 기원합니다.

비로그인 2005-05-0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흑..감솨요, 이누아님! 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