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돌님의 댓글(2005.3.25)

분노가 강력한 자기장으로 머리를 치고 가슴을 옭죄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또 사람의 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것이 또 인생인 거지, 변명하다가도 너무나 작고 하챦은 일에 자주 분노하는 절 보면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니까 달라이라마의 말씀은 역지사지의 입장과 비슷한 거겠군요. 그나저나 달라이라마가 정말 오신답니까? 존경과 사랑으로 기다리는 분이 오신다니, 축하드릴 일이군요. 글고 이누아님, 저 아함경 몇 주전에 구입했습니다. 옴마나! 깜딱 놀랐습니다!! 책이!! 손바닥만해요! 손바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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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수행하지 않으면 자비심을 잃게 된다"라는 달라이라마의 말씀을 늘 생각합니다. 자비나 평온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합니다. 내가 아프고, 고통스럽고, 억울한데 누구를 돌아보겠습니까. 그러나 인욕이란 무조건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라고 달라이라마는 말씀하셨습니다. 부당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 평정심을 유지한 채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 것 같았습니다. 무조건 참는다면 화병이 되거나 언젠가 폭발하게 되겠지만 자기 나름의 수행을 통해 평온 속에서 상황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면 삶에 크게 유익할 것입니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만 술이나 담배 같은 생존과 관계없는 물건을 멀리하는 데도 수없이 시도하고, 괴로워하는데 일생을 함께 한 분노나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을 멀리 하는 데야 오죽 하겠습니까? 어떤 이들에게는 담배와 같고, 어떤 이들에게는 도벽과 같을 이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지니고 산다면 건강을 해치는 정도의 해를 입기도 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정과 자신의 생을 모두 잃을 정도의 해를 입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행이란 사람마다 그 형태가 다르다고 봅니다. 경을 읽고, 염불을 하고, 주의 기도를 올리고, 통성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봉사와 헌신, 소외된 사람들과의 공감, 이웃에 대한 친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노래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꾸준히만 할 수 있다면 모두 기도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제게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주 감정의 노예가 되어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이지, 내가 왜 노예처럼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 나 자신을 놓아 두는 것인지... 미친 코끼리처럼 날뛰는 마음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아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는 4월에 일본에 오십니다. 그분을 뵙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는 친구와 함께 일본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불교논서 중에 나가르주나(용수)의 [중론] 이라는 책으로 이틀 간 한국인을 위한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한국에 오실 수가 없으니 한국인을 위한 법문을 다른 나라에서 하시는 겁니다. 한국인을 위한 법문은 벌써 세 번째입니다. 사실, 잠깐이지만 이렇게 외국에 나가는 일이 여간 마음을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가까이 오셔서 법문을 하신다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2년 반 쯤 전에 동화사에서 링린포체의 법문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법문은 다 아는 너무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그저 자비심을 잃지 말고 선하게 살라는 정도의 말씀이셨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제 안에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 이후로 그 느낌은 떠올리기만 하면 그대로 재생이 되는 듯합니다. 지금도 그분이 그때 가르쳐주신 만트라를 아직도 외고 있습니다. 그분은 일본에 사신다니 이번에 그분도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을 뵐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큰 행운입니다.

불교입문서적은 굉장히 많은데 대개가 교과서처럼 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자연스레 불교의 사상과 익숙해질 수 있는 경전으로 아함경을 생각했습니다. 작은 경전시리즈는 책이 작아서 들고 다니면서 언제나 읽을 수 있어 좋은 반면 앉아서 조용히 읽을 때는 떡 펼쳐놓고 볼 수가 없어서 불편하기도 합니다. 좋은 점을 생각하시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불교사상의 핵심을 말하라면 연기법입니다. 부처는 "연기를 보는 자는 나를 본 자이다"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러한 연기사상을 대승의 공사상으로 이어간 책이 [중론]일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우리네 선승들과 달리 한번에 딱 깨치는 깨달음보다 분석과 사색, 그것을 생활에 적용시키는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만물에 자성이 없음을 바로 느낄 수가 있다고 하십니다. 진리가 무엇이건 그것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심장 속에서 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함경]에도 이러한 진리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딱히 종교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복돌님이 지향하는 곳으로  자신과 삶을 이끄는 데 거름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너무 멀고 막연한 이야기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가 부정적인 감정들을 멀리하고, 평온이 생활이 되고, 자비가 인생이 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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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2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아..이누아 보살님! 가엾은 이 중생..힘이 됩니다, 위로가 됩니다, 말씀에 적극 동화됩니다. 사실 요즘 든 생각이지만 나이 사십으로 치달으면서 인간적인 어떤 완성감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타인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노리고선 감정을 쏟아버리거나 춤추는 기분에 따라 철부지처럼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특히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제 자신을 볼 때면 정말 나이 헛먹었다는 생각이 들곤 하더라구요. 조바심이나 분노란 감정도 객관화시켜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데 어렵지만 여러방면으로 수행을 해야 할 듯 싶습니다. 넉넉하고 좋은 어른이, 노인이 되고 싶습니다. 아..아함경은 요즘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제게 도움이 많이 되는 구절, 과거를 돌이켜 반성케 하는 구절을 읽을 땐 눈두덩이가 따겁습니다. 고마운 조언, 좋은 책, 들려주시고 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드무비 2005-03-27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방황이나 분노는 나이하고 별로 상관없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돌처럼 굳어지는 마음은 경계해야겠지만...
전 도리어 모든 걸 체념한 사람의 고요함이 무서운걸요.
타인하고든 자신하고든 화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두 분 글 읽고 저도 한자 끄적여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