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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4년 9월
평점 :
지금까지 내가 읽은 달라이라마의 책들은 달라이라마 그분이 직접 강의하신 내용들이었지만 이 책은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빅터 챈이라는 그분의 친구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정리된 것이다. 그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인다.
내 생각의 틀을 넘어선,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티벳의 한 소년이 중국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중국장교가 쇠몽둥이로 그 아이를 때렸다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달라이라마는 처음엔 그 장교에게 화가 났지만 곧 연민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과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그 자리에 있고, 총이 있었다면 그 장교를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빅터 챈도 나와 같았던 모양이다. 불교수행을 했는데도 말입니까? 하고 묻는다. 달라이라마는 "가능하죠. 그런 긴장된 상황에서라면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때로는 행동이 먼저 앞서고 생각은 나중에 따라오지요"라고 대답한다.
나는 자비롭고, 존경스러운 많은 이야기들 중에 이 이야기를 말한다. 이 이야기는 언뜻 보면 모든 생명체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을 잃지 않는 그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가능하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분이 내내 강조하시는 연기(상호의존성)의 입장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없다. 모든 일은 가능하다. 심지어 살인까지도 말이다. 그런 잘못을 저지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정되고, 자신만만한 자아를 여의고, 인류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악이 자신이 행위할 수 있는 모든 선악이 되는 것이다. 인류와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을 때, 그것이 비록 살인자의 행위일지라도 자신과 분리시키지 않을 때 연민과 자비가 저절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장교의 행위와 (만약 장교를 죽인다면) 장교에 대한 살인 모두 피해야 할 고통이며, 비난받아야 할 행위가 될 것이지만 그것들이 나와 동떨어진 어떤 옛날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조건과 상황이 다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나는 자주 분노 속에 놓여 있다. 그 장교도 그랬을 것이다. 부하를 죽인 적의 아들에 대한 분노. 달라이라마는 그 자리에서 살인을 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100%란 없다. 고정되고 확실한 자아가 없는 것처럼.
그러나 저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책을 읽고 기뻤으며, 그분을 만나고 싶고, 닮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정말 그분을 뵙는다. 일본으로 그분이 오셔서 그중에 이틀을 한국인을 위해 할애하신다. 바로 지척인데도 우리나라에서 그분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서이다. 아무도 해칠 생각이 없는 사람의 방문을 거절하는 이웃이 된 것이 아쉽지만 일본에라도 오신다니 내게는 감사한 일이다. 그 시간을 그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