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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은 매우 짧다. 그런데도 아주 심오해서 반야심경에 관한 책은 엄청나다. 짧지만 말하자면 긴 이 경전에 대한 강의인데 겨우 테잎 4개다. 아무래도 혜국 스님이 시간에 쫓겨가며 강의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
불교철학과 교리가 곳곳에 숨어 있어 역시 쉽게 강의가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쉽게 해보려고 하시지만 기본적인 용어인 오온과 연기 등에 관한 설명은 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쉽게 설명하시려고 애쓰시다 보니 강의가 좀 매끄럽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스님은 글로만 경전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읽으신다는 느낌이 든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를 해석하신 것은 이제까지 읽었던 해석들과는 달랐다. 時를 앞 문장에 붙여서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로 주로 해석을 했는데 스님은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셨다. 이때에"로 해석을 하셨다. 즉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때에 오온이 공함을 비추신 것이 아니고, 행하는 행위는 이미 완성되었고, 그리고 때에 오온이 공함을...로 보신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이 심경강의의 결론 역시 화두참선이다.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증득하는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이르면 수행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화가 나는 걸 참기가 쉽지 않고, 억울한 일을 잊어버리고 싶은데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기도나 참선은 하는 동안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참아지고 잊어버려진다. 한번은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 있었는데 집에 와서 "옴마니반메훔"을 만 번을 하고 나니,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던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한 적이 있다. 평소 같으면 적어도 일주일은 끙끙거릴 일이었는데 말이다.
짧고 읽기 좋으며, 공부를 하자고 보면 무궁무진한 이 경전을 수행수단 삼아도 좋으리라. 언젠가 매일 반야심경 100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컵이 깨져도 이유가 있게 느껴져서 마음이 상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법문 감사합니다. 혜국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