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보현선원 선방. 팔십 넘은 노보살이 칠십 먹은 보살에게 젊다고 한다. 일어나 앉을 때도 끙 소리가 나야 할 분들이 하루에 다섯 시간 단정히 앉아 있다. 내게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일찍 이런 데 관심이 있었냐고 부럽다고 하신다.

선방치고는 비교적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곳이라 나는 주로 오후에 가서 앉아 있다. 1시간이 채 못되어 다리가 아프다. 다리를 바꾸어 앉는다. 바꾸어 앉을 때는 소리가 난다. 이상한 일이다. 다들 다리가 아플텐데 다른 이들이 다리 바꿔 앉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다른 요령이 있는 것일까? 노보살들은 이렇게 앉아 있지 않아도 다리가 아플텐데 어떻게 앉아 있을까? 이런 망상이 문득 일어난다.

꺼꾸러지면서도 "아이고, 화두 놓칠뻔 했네"라고 한 어떤 스님이 떠오른다. 가만히 앉아서도 화두를 놓치고 있으니...

선방에 오면 망상이 더 이는 듯하다. 아직 사흘밖에 선방에 앉지 않아도 그런가? [천로역정]에서 본 구절이 생각난다. 청소를 하려면 쌓인 먼지를 떨어야 하고, 그러면 청소하지 않을 때보다 먼지가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그렇다고 청소해서 먼지가 더 나니 청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먼지가 뽀얗게 이는 그런 청소 초기였으면 한다. 또 망상이다.

생각은 구름처럼 바람에 몰려 다니다 화두를 들면 순식간에 흩어진다. 악한 생각도 생각이며, 선한 생각도 생각이며, 부처에 대한 생각도 생각이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은 선가에서 절실한 말이다.

선방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보살 한 분이 걸어가신다. 곧은 자세다. 나도 저렇게 늙어갈 수 있을까? 내가 젊은 나이에 선방에 왔다고 부러워하시는 그분들이 나도 부럽다. 늙어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쉬임없이 정진하기를! ---------이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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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3-13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현선원이라... 어디있는 곳인가요?

이누아 2004-03-13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를 좀 아시는 분이신가요? 팔공산 동화사 말사 중 하나인 보현사라는 절에 있는 선방입니다. 대구 중심가인 반월당에 있구요. 다른 선방과 달리 시간이 자유롭고, 집에서 다닐 수 있을 뿐더러 교통도 편리합니다. 동안거와 하안거를 제외하고 그 사이에 산철결제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기간입니다.

비발~* 2004-03-21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대구쪽 보현선원이군요 -- 헉 그렇다고 아는 건 아니고요. 혹시 가까운 데 있음 가볼까... 하고 검색해봤드니 전국 곳곳에 무척 많더라고요.ㅜㅜ 여긴 서울입니다.

이누아 2004-03-2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달 이상을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인천 용화선원엘 가보세요. 거기에는 송담 스님이라는 선지식이 계십니다. 선지식이 있는 곳에서 지도를 받으며 공부하는 건 하늘이 내린 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비발~* 2004-03-2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고맙습니다. 인천이라면 언제라도 갈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