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햇살이 거실에 들어와 있다 돌아갔어. 햇살을 따라 아이들은 신천에서 잠시 자전거를 타고 왔어.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너무 오래 집에만 있어서 아이들도 지치고, 아무래도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아 보냈어. 아무 데도 들르지 말고, 운동기구도 만지지 말고, 자전거만 타다 오라고 당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인사보다 먼저 30초 손 씻기부터 하라고 말하게 돼.

 

예전에 서당 선생님이 무사(無事)가 행복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 특별히 좋은 일이, 기쁜 일이 있는 게 행복한 게 아니고 아무 일 없는 일상이 행복이라는 걸 대구에 있는 사람이라면 다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대구 사람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안 되고, 간다고 해도 모두 밀어내지. 누가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고, 바이러스로 취급당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대구 안에서도 일 때문이 아니라면 아무도 만나지 않아. 어제는 언니가 반찬을 해서 집 앞에 두고 가고, 오늘은 친구가 빵 사러 나왔다가 내 것까지 샀다고 현관에서 건네주고 갔어.

 

서로를 피하는 게 서로를 위하는 일이 되었어. 병을 얻을까 걱정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병을 옮길 수 있어 더 조심하게 돼. 서로를 피해야 하는 오늘에서야 우리가 얼마나 접촉하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어우리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모두 우리와 닿아 있어. 우리 중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돼.

 

이렇게 2월이 다 가네. 3월이 와도 이 비상(非常)한 시간이 계속되겠지만 좀 더 부드러워진 햇살과 바람이 창을 두드리겠지. 우리가 문을 열고 나가서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으로선 기대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나저나 우선 수요일에 오겠다던 택배가 오늘 늦게라도 현관문 앞에 있었으면.

 

 

 

흐림

_배연수

 

 

어제 쨍한 햇볕에 나를 말리고

오늘 흐린 날씨에 젖어버린다

 

옥상에 올라가면 눈을 막는 산

좋을 때 나는 눈물이 흐른다

 

지금 안전해 보이는 이 생활도

풀린 올 하나 때문에 변형되는 옷처럼

작은 틈으로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 질문은 바람이 어디로 부는가를 묻는 것 같다

바람이 제 가는 곳을 알려고 하지 않듯이

너무 크게 울지는 말자

 

사랑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가족, 친구, 그와 그녀들

서로 얼굴도 모르는 먼 사람들

 

두 시간 먼저 비가 내린다

 

이 걸음도 언젠가 멈추겠지만

여기까지 온 가장 적당한 말이 뭐냐고

누가 물어준다면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배연수, 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시인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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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27 1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이누아 2020-02-27 19:3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