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구나

 

 

작은애가 들어오면서

학교 텔레비전에 형 나왔어.”

?”

상 받던데

무슨 상?”

몰라

     

웬만하면 모르고야 마는 작은애라 그러려니 했어. 잠시 후 친한 마을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

우리 애가 그러던데 큰애 상 받았다며?”

아직 안 왔어. 무슨 상 받았대?”

안 그래도 물어봤더니, 잘 모르겠다면서 그냥 이하동문이라고 하더래.”

, 이하동문. 그러니까 앞에 상 받은 애랑 같은 상을 받았나 보네. 근데 그게 무슨 상인지는 모르고.”

 

작은애의 말을 전해주며 둘이 한참 웃었어. 남자애들이 다 이런 건지 우리들 애들만 이런 건지, 도대체 매사에 관심이 없어. 화면에 아는 애 얼굴 나오니까 잠깐 관심 가졌더니 들리는 말이 이하동문뿐이었던 거지.

 

알고 보니 아람단에서 주는 표창장이었는데 6학년이 먼저 받고 뒤에 받으면서 이하동문이라는 말을 들었나 봐. 친구가 기왕 주는 거 내용을 다 읽어주지, 하길래 그건 받는 사람 마음이지, 받는 걸 구경하는 아이들에겐 얼마나 지겹겠냐고 했어. 그러니까 청중에게 제일 좋은 상은 이하동문 상인 거지.

 

덕분에 작은애가 모른다고 하는 건 정말 모르는 거구나, 싶. 진짜로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는 것 같아. 옆에서 보면 가끔 한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딱히 자기 몸 움직여야 할 일 아닌 것에는 관심 두지 않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한때는 게임하고 노는 것 외에 아무것도 관심 없는 것처럼 너무 나가 논다 싶어도, 친구도 안 만나고 집에만 있다 싶어도 다 마음이 쓰였는데 돌아보니 나는 우리 아이들보다 더 집에 붙어 있었고, 친구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지 않았어. 그래도 크게 후회스러운 건 없어. 차라리 억지로 뭘 해야 했던 상황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스무 살 넘으면서 감당 못하게 하고 싶은 일이 쏟아지더라고.

 

형제들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친했던 오빠는 각자 결혼을 하니 아무래도 연락을 덜 하게 되고, 나한테 부모님 급이라 멀게 느껴졌던 언니는 오히려 이것저것 의논하는 친구처럼 되고... 우리 애들도 이렇게 무심하게 지내도 어느 시기가 되면 좀 진한 사이가 되겠지.

 

친구 아들 덕에 한바탕 웃고 나니 너한테도 이하동문 상 얘기 들려주고 싶어 서재에 들렀어.  이제 운동갈 시간이야. 무심한 세 남자와 무심히 걷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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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e 2019-05-2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었습니다 ㅎㅎ 귀여워요 아이들!
이누아님 말씀대로 ‘이하동문‘ 상도 좋습니다 ㅎㅎ

이누아 2019-05-23 22:45   좋아요 0 | URL
작은애가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데 자기에게 필요한 생각은 합니다. 그저께 둘이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제가 ˝무슨 생각해?˝ 하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게임 생각˝ 그러데요. 막막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