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진 이를 보며
기슭아, 네게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노트북 옆에 이가 있어. 두 녀석 중 누구의 이일까? 벌써 어금니가 세 개나 빠진 작은애 걸까? 이제 큰애도 어금니가 빠지기 시작한 걸까? 어쩌다 빠진 이가 노트북 옆에 있는 걸 보니 나 몰래 컴퓨터를 켜고 뭘 봤나 봐. 귀여운 것들.
입안에 있을 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지만 빠진 이는 이렇게 아무렇게나 둬도 되지. 예전에 지붕에 던지기도 했다지만 이 이는 헌 이고, 헌 이가 빠져야 새 이가 나는 거지. 그러니까 제때 빠져주지 않으면 치과에 가서라도 빼야 하는 거지.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애착 형성이야. 영유아검사를 했는데 큰애가 엄마와의 애착이 100%가 아니라는 거야. 애착 관계는 100%가 정상이라고 해. 나와 아이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거지.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도 하고, 이런저런 조언들도 듣고... 어쨌든 좋아졌어.
이제 아이는 열한 살이고, 몇 년 있으면 사춘기를 겪겠지. 그때 가장 중요한 건 독립일 거야. 애착과 독립 사이가 생각보다 짧은 것 같아. 독립을 원하는 몸과 정신 위에 미성숙한 뇌와 부모의 지붕이 놓여 있는 몇 년을 잘 견뎌야 할 테지. 그 시기가 지나면 정말 독립해야 할 사람은 아이라기보다 엄마인 나라고 생각해. 기껏 힘껏 애착을 위해 노력했건만 이제 애착을 버리려고 애써야 하는 거지. 그렇게 잘 관리하려고 아침저녁으로 닦고 몇 달마다 검진을 받았던 이지만 빠져야 할 때 빠져야 건강한 것처럼.
제때 이가 빠지지 않으면 새로 나는 이가 가로로 누워 버리고, 덧니가 되기도 한다고. 누가 아이의 이가 그렇게 자라길 바라겠어. 봄에는 봄의 일이 있고, 여름엔 여름의 일이 있듯이 가을과 겨울도 다 제때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지. 계절처럼 아이들은 금세 변하고, 작년에 산 옷은 이제 더 입을 수도 없는데 그 작은 옷을 억지로 입힐 수는 없지.
아이가 무심히 뺀 이를 보고 네게 하려던 말은 다 잊고 이 이야기다. 그래도 아이들은 새로 이가 나니까 좋겠다. 새로 새로 새록새록 자라는 아이들을 빨리 자라라고 잡아당기지 않고, 머무르라고 눌러 앉히지도 않고 그냥 헌 이가 툭 빠지듯 때 맞춰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나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시간 다 보내면서, 그래도 엄마라고 작은 일에도 늘 아이 생각이다.
도마뱀
_자크 프레베르
사랑의 도마뱀이
다시 또 달아나면서
내 손가락 사이에 꼬리만 남겨두었네
자업자득이지
내 입장만 생각하며 그것을 꼭 붙잡아두려 했으니까
-자크 프레베르,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문학판, 2017),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