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할수록 불행해지는 사람들 - 과도한 책임감과 인정 욕구에서 빠져나오는 불안 관리 플랜
테리 콜 지음, 박선령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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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일 잘하고, 눈치 빠르고, 주변 사람 챙기는 것도 빈틈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만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번아웃, 감정노동, 착한아이 콤플렉스 같은 키워드로 숱하게 다뤄진 주제 같지만, 30년간 심리치료사로 일한 테리 콜은 조금 다른 이름을 붙입니다. 바로 고기능 공의존(HFC, High-Functioning Codependency)입니다.


열심히 살면 살수록 행복해지기는커녕 피로와 원망, 불안에 짓눌린다면 성취 뒤에 숨은 고기능 공의존의 사슬을 끊어내는 감정 분리 법칙 『노력할수록 불행해지는 사람들』을 읽어보세요.


30여 년간 주요 매체와 심리 치료 현장에서 수많은 내담자를 돌봐온 저자는 겉으로는 유능하고 완벽하게 기능하지만, 내적으로는 타인의 감정과 문제를 해결하느라 자신을 소진하는 사람들의 패턴을 고기능 공의존으로 정의합니다 .


단순히 완벽주의를 내려놓으라는 식의 조언이 아니라, 유능함과 이타심이라는 긍정적인 가면 뒤에 숨어 있는 통제 욕구와 존재 증명의 불안을 짚어냅니다.


과도한 배려와 도움이 상대방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는 불안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매일 바쁘게 지내면서 긴장감에 시달리고, 일을 제대로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고기능 공의존자는 타인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야만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겁니다.





상대가 겪는 불편함이나 갈등을 참지 못해 먼저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존재로서의 효능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패턴의 뿌리를 짚어가면 어린 시절의 비위를 맞추던 아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의 성격을 명확히 구별하게 해주는 사례들이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배려심 있는 사람은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 혹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본 후 적절히 도움을 줍니다. 반면 공의존적인 성향의 사람은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테리 콜 저자는 해리엇 러너 박사의 견해를 인용하며 사회가 특히 여성이나 돌봄 제공자에게 감정의 주유소 역할을 강요한다고 짚어줍니다. 타인의 요구를 거절할 때 죄책감을 느끼도록 학습된 개인은 성인이 되어 타인의 감정을 정화해 주는 인간 주유소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연료통이 바닥났을 때 돌아오는 것은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라는 원망과 불안뿐입니다. 결국 과도한 책임감은 삶의 생동감을 갉아먹고, 나 자신은 빠져 있는 껍데기뿐인 삶을 만들고 맙니다.


『노력할수록 불행해지는 사람들』은 감정 분리부터 경계 설정까지, 단계별 회복 솔루션을 소개합니다. 심리치료 현장에서 쓰이는 35가지 자기 돌봄 워크시트가 수록되어 있어, 이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다양한 실천법을 만나게 됩니다.


1부에서 자신이 고기능 공의존자임을 자각하고, 어린 시절 형성된 공의존 청사진과 트라우마, 그리고 나르시시스트와의 역기능적 관계 패턴을 다각도로 파헤치고, 2부에서는 정서적 회복 탄력성을 높이고, 나를 지키는 감정적 경계를 바로 세우며, 마침내 타인을 통제하려는 손을 내려놓는 평화를 안내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타인과의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부탁을 거절하거나 승낙할 권리가 있다, 나는 실수를 하거나 방향을 수정하거나 생각을 바꿀 권리가 있다, 나는 나의 기호, 욕구, 필요를 위해 협상할 권리가 있다 등 경계를 그을 때 참고할 권리 장전은 수동적 순응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꽤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48시간 유예 법칙을 소개합니다. 긴급 상황은 제외하고 48시간 동안은 어떤 것에도 즉각 반응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데 집중해보라고 합니다. 전화, 문자, 메일, DM에 바로 답하지 않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그리고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떠오르는지 관찰하는 겁니다.


이 연습은 기존의 반응 패턴과 항상 연락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우선시하도록 이끌어줄 거라고 합니다. 타인의 요청이나 문제에 즉각 뛰어들어 해결하려던 행동을 딱 48시간만 멈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의 문제와 나 자신의 감정을 분리하는 정서적 시차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준다고해서 그 사람을 진정으로 구원할 수는 없으며, 나 자신의 가치 또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배려는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영역을 존중하고 물러나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은 오직 하나, 나 자신의 행복과 평안뿐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타인의 기대와 인정이라는 타이트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를 우선순위에 두는 삶을 소망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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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트렌드 노트 - AI 시대, 나를 지키는 조건 ㅣ 트렌드 노트
박현영 외 지음 / 북스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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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생활변화관측소의 박현영 소장을 비롯해 데이터 엔지니어 김종민, 라이프스타일 리서처 신수정, 사회 관찰 연구원 김정구, 공간 전략가 이원희 등 5명의 전문가가 공저한 『2027 트렌드 노트』.


이 책은 AI가 얼마나 발전할지를 예측하는 기술서가 아닙니다. AI가 인간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뒤 사람들이 무엇을 불안해하고, 무엇에서 안도감을 얻으며, 어떤 소비와 관계와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 시작하는지를 데이터로 관찰한 책입니다. 유행보다 오래가는 인간의 욕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결과물이 쉬워졌다고 삶의 의미까지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직접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 완성한 결과와 AI가 몇 초 만에 만들어준 결과가 똑같이 보인다면,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확인해야 할까요?


『2027 트렌드 노트』는 이 질문을 통제감과 성취감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취감이라는 단어의 온라인 언급량 변화입니다. 2020년까지 연간 약 10만 건 정도 언급되던 성취감이 2025년에는 100만 건에 육박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감정을 확인해야 할 이유가 훨씬 커졌다는 점입니다. 결과물이 너무 쉽게 나오다 보니, 그 안에 내 노동과 고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상실감이 찾아온 것입니다.





기술에 의존할수록 자신의 일상과 삶에 대한 통제 권한을 잃어버린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됩니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최근 사람들이 펠트, 자수, 뜨개질, 필사, 런닝, 직관 등 직접 몸을 움직여 느린 속도로 물리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활동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과정을 온전히 내가 통제하고 지휘했다는 실감, 즉 내가 해냈다는 자각이 AI 시대의 희귀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비즈니스 역시 단순히 모든 것을 알아서 대신해 주는 편리함만 제공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과정에 개입하여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AI를 활용하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실력이나 스펙의 변별력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제 타인과 브랜드, 서비스를 평가하는 진짜 기준은 태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관계가 느슨해지고 네트워크가 확장될수록, 상대방이 약속을 이행하는 방식, 타인을 배려하는 말투, 커뮤니케이션의 정직함이 그 사람의 신용을 결정합니다. 브랜드 역시 매력적인 마케팅 언어 뒤에 숨은 진정성과 고객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1020세대가 집안일이나 자신의 노동을 시급으로 객관화하고, 확실한 근로계약서를 통해 관계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려는 경향도 같은 맥락입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내가 확실히 보장받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려는 합리적인 생존 태도인 셈입니다.


AI는 무수한 데이터를 학습해 가장 평균적인 보편성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시장에서 진짜 열광을 끌어내는 것은 매끄러운 보편성이 아니라,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굴곡진 개인의 서사입니다.


전형적인 20대 여성 중심의 뷰티·라이프스타일 콘텐츠 시장에서, 중년 남성인 추성훈의 일상이나 정갈한 도쿄 라이프를 담은 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현상에 주목합니다. AI로 누구나 정보를 다량 생산할 수 있는 시대에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소개)보다 누가 어떤 맥락과 서사를 거쳐 그것을 말하고 있는가(깊이)가 훨씬 중요해집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축적된 서사를 가진 개인과 브랜드만이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됩니다.


삶의 주기를 바라보는 프레임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은퇴는 이제 모든 일을 마치고 쉬는 종착역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재설계하는 제3성인기의 시작입니다.





예전에는 50대 이후를 단순히 시니어, 노인이라는 일차원적 프레임에 가두었다면, 이제는 60대 이후에도 스스로의 리듬을 지키며 활력 있게 살아가는 개별 주체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와 맞물려 웰니스의 개념도 거창한 건강 관리나 휴양이 아닌, 매일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컨디션 관리로 세분화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위로 비즈니스입니다. 과거 앱의 시대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높이 성장할 것인가를 다루었다면, AI의 시대는 어떻게 하면 밑바닥으로 무너지지 않고 나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가가 화두가 됩니다.


인간의 불안을 부추겨 소비를 유도하는 마케팅은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장은 우리는 고객을 어떤 기분과 상태로 만들어주는가라는 질문에 진정성 있게 답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거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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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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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오늘은 몇 개의 문장, 몇 개의 이미지가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오랫동안 머물렀던가요? 빠른 스크롤과 초 단위로 소비되는 숏폼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늘 방문할 뿐 어디에도 제대로 체류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시인 나태주의 시와 윈도 페인팅 및 <롱롱타임플라워> 연작으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아티스트 나난의 미술이 만났습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은 언어가 가진 정서적 여백과 시각 예술이 지닌 치유적 힘이 어떻게 삶의 멈춤에 스며드는지 잘 보여줍니다.





대표작 「풀꽃」처럼 나태주 시인의 시는 어렵지 않고 소담스럽게 다가옵니다. 일상의 아주 작은 존재나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순간을 붙잡아 따뜻한 여백으로 만들어냅니다.


아티스트 나난은 한국 최초의 윈도 페인팅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를 공부하며 예술의 치유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가입니다. 캔버스라는 틀을 넘어 자연과 사람, 공간과 마음을 잇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나난 작가의 작업 노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태주 선생님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짧고 담백한 말들 속에는 오래 머물러도 좋을 만큼 따뜻한 여백이 있었습니다. 그 여백은 저를 조용히 쉬게 했고, 제 안의 마음을 오래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그 곁에 제 그림을 놓게 된다면, 그림이 시보다 앞서거나 더 많은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저 시인님의 시가 독자의 마음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제 그림이 조용히 곁을 지키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 「작업 노트」 중에서


나난 작가의 말처럼 『오래 머무는 마음』에서 그림은 시가 던진 언어의 잔향 주변에 은은한 색채의 풍경을 깔아주어 그림 위에서 시선을, 그리고 마음을 오래 머물게 만듭니다.


1장은 길가에 무심히 피어난 풀꽃이나 계절의 변화처럼 소소한 풍경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긍정하는 시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봄이 오니 / 화를 냈던 일 / 부끄러워진다 / 슬퍼했던 일 / 미안해진다 / 꽃이 피니 / 미워했던 일 / 뉘우쳐진다 / 짜증 냈던 일 / 속상해진다 / 나도 분명 꽃인데 / 나만 그걸 / 몰랐던 거다 / 봄이다 이제 / 너도 꽃을 피워라." — 「꽃을 피우자」 중에서


"너도 꽃을 피워라"라는 다정한 당부는 단단한 위로로 다가옵니다. 국민 시로 널리 알려진 「풀꽃」이나 「봄밤」, 「새봄의 전갈」 같은 시들이 나난 작가의 따뜻한 색감과 어우러지며 세상의 모든 작고 외로운 존재들을 따뜻하게 품어냅니다.


2장은 타인과의 관계, 그중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닌 복합적인 레이어를 다룹니다. 나태주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낭만적 열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왜 나는 너를 만나고 싶고 / 너를 안아주고 싶은 걸까? / 그건 네가 그동안 오래 잃어버린 / 나 자신이기 때문 아닐까! / 그렇다면 너를 안아주는 일은 / 너를 안아주는 게 아니라 / 결국 / 나를 안아주는 게 아닐까! / 모르겠다 / 얼른 너를 만나 / 너를 안아주고 싶다." — 「포옹」 중에서


타인을 안아주는 행위는 결국 내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과거의 나 자신 혹은 내 안의 결핍을 안아주는 성찰적 행위로 확장됩니다.


시 「괜찮아」는 삶의 불완전함과 서툼을 결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품어 안는 따뜻한 자가 치유의 시입니다. "괜찮아 서툴러도 괜찮아 / 서툰 것이 인생이란다"라며 완벽주의적 긴장을 내려놓게 만드는 다정한 위로를 건넵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살자 / 틀려도 괜찮아 / 조금쯤 서툴러도 괜찮아"라고 건네는 당부 덕분에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정서적 안식을 받게 됩니다.





3장은 이별, 그리움,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는 시들이 등장합니다. 원망이나 미련 대신 "다만 사랑해서 좋았단다"라는 담담한 한 마디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지나간 사랑과 시간에 대한 가장 품위 있는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좋았어 좋았어 / 참 좋았어 / 이별의 인사는 여러 번 / 사랑해 사랑해 / 정말 사랑해 / 사랑의 고백도 여러 번 // 이별의 아픔과 / 사랑의 아쉬움이 / 마음에 남지 않을 때까지 / 끝내 이별을 할 때는 / 가볍게 가볍게 / 손을 흔들며 / 호숩게 호숩게 / 안녕 안녕 / 다만 사랑해서 좋았단다." — 「낙엽처럼」 중에서


시 「멀리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는 존재의 안녕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마음이 평온을 선사합니다. 이 시를 오래 바라보다 보니 "나 여기 여전히 숨 잘 쉬고 있어요"라는 말이 타인을 넘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며 격려를 건네는 나 자신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온 시입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은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여백 그 자체를 느끼게 해줍니다. 이 시화집에 담긴 시와 그림은 빠르게 지나쳐버린 하루, 언젠가 놓쳐버린 사람의 손길, 창가로 떨어지던 햇살의 온도 같은 평범한 순간들을 다시 불러냅니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묻혀 있던 사적인 기억과 감정을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조용히 판을 깔아줍니다. 책장을 펼치고 시 한 편을 읽은 뒤 그림을 바라보는 그 몇 분의 시간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감성적 안식처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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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 코딩 주식 자동매매 with 파이썬 - 오류 없이 돌아가는 AI 투자 자동화
천인국.천명준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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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코딩이 머릿속에 욱여넣고 한 땀 한 땀 코드를 짜 내려가는 노동이었다면, 최근 부상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은 자연어 대화를 통해 AI와 협업하며 아이디어를 즉시 구현해 내는 창작에 가깝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알아서 구조를 잡고 코드를 작성하며 오류를 고쳐나갑니다.


천인국, 천명준 교수의 『바이브 코딩 주식 자동매매 with 파이썬』은 바이브 코딩을 주식 투자라는 가장 실전적이고 까다로운 영역에 접목한 책입니다. AI 에이전트에게 어떤 도구를 제공하고, 어떻게 자율적인 생각의 고리를 만들어줄 것인지 그 설계 원리를 꼼꼼히 짚어줍니다. 나만의 AI 투자 비서를 만나보세요.


챗봇과의 대화만으로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의구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책은 Claude Code, Cursor 등 최신 에이전트형 개발 도구를 활용하여 사용자가 자연어로 목표를 제시하면 AI가 스스로 파일과 환경을 제어하도록 유도합니다.





핵심은 에이전트 루프(Agent Loop)의 이해입니다. 단순한 LLM 챗봇은 사용자의 질문에 한 번 답변하고 끝나지만, 에이전트는 생각(Think), 행동(Act), 관찰(Observe), 반복(Repeat)의 4단계를 거치며 목표를 자율적으로 달성해 나갑니다.


예를 들어 AI는 "삼성전자랑 SK하이닉스 중 어디가 지금 더 좋아?"라는 모호한 질문을 받더라도 내부적으로 스스로 필요한 도구를 순차적으로 호출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합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AI에게 주어지는 도구 설명서의 중요성을 짚어줍니다. AI는 마법사가 아니기에, 오늘 날짜를 구하는 도구나 특정 기간의 주가를 가져오는 도구처럼 명확한 도구를 쥐여줄 때 비로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저도 그동안 간과했던 부분이 있는데 AI가 '지금 이 순간의 날짜'를 모른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LLM은 실시간 세계에 자동 연결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이라는 개념도 도구로 알려 줘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의 AI 모델에게 데이터 수집, 기술적 지표 계산, 매매 신호 포착, 리포트 작성, 실계좌 주문까지 모든 책임을 지우면 맥락을 놓치거나 환각 현상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역할을 철저히 분리하는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 패턴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투자 자동매매를 꿈꾸는 입문자들이 빠지는 대표적인 함정은 지표 몇 개를 조합했더니 수익률이 무려 100%가 나왔다는 착각입니다. 백테스팅 파트에서 이 위험성에 대해 짚어줍니다.


과적합의 위험성과 더불어, 상장 폐지된 종목이 누락되어 성과가 부풀려지는 생존자 편향, 그리고 미래의 주가 정보를 미리 알고 매매하는 미래 데이터 참조 문제 등 실전 백테스팅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핵심 개념들을 가르쳐 줍니다. 결과 속에 숨겨진 논리적 오류를 검증하는 눈은 결국 인간 투자자에게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프로그램이 아무리 완벽하게 작동하더라도, 실제 돈이 오가는 실전에 접어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한국투자증권(KIS) API를 활용해 실제 계좌와 연동하는 기술적 연동법은 물론이고, 리스크 관리와 투자 원칙을 소개합니다.


-5% 자동 손절 로직, 익절 목표가 설정, 포지션 사이징(자산 분배), 재진입 쿨다운 타임 설정 등 시스템이 통제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 규칙을 AI에게 사전에 주입하는 법을 강조합니다. AI 투자 자동화의 목적은 무조건 돈을 버는 마법의 열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가지는 감정적 오류를 차단하고 규율 있는 투자를 집행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대화형 바이브 코딩 기법을 통해 나만의 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는 『바이브 코딩 주식 자동매매 with 파이썬』. AI에게 투자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투자 원칙을 AI가 실행하게 하는 겁니다. 단계별 실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시스템 하나쯤은 완성해 볼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동시에 AI에게 얼마나 위임하고 얼마나 직접 판단할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투자 철학의 숙제도 함께 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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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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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을 필두로 시각인류학자 제니퍼 데거, 환경인류학자 올더 켈러먼 색세나, 건축가이자 시각 디자이너 페이페이 저우가 함께 펴낸 『패치 인류세 (원제 Field Guide to the Patchy Anthropocene)』. 초학제적 프로젝트인 페럴 아틀라스(Feral Atlas)의 학문적, 예술적 성과를 담아낸 현장 안내서이자 21세기 새로운 자연사입니다.


곳곳에 수록된 다이어그램과 도판들은 페럴 아틀라스 프로젝트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 시각 자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오수, 미생물, 인프라, 이탈적 생물들의 얽힘을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는 인간이 지구의 생태적, 지질학적 역사를 완전히 바꿔버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상징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그동안은 인류세라는 단어를 접할 때 지구 전체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온난화되고 있다는 식의 거시적 평준화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지구의 위기가 모든 장소에서 균일하게 터져 나오고 있는지, 연구실 모니터로 보는 자연과학자들의 통계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를 묻습니다.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매일 접하면서도 정작 우리 동네의 하천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거대한 담론을 많이 안다고 해서 주변 환경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진짜 현장, 즉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프라와 자연이 부딪히는 사각지대로 걸어 들어갑니다.


『패치 인류세』의 핵심 개념은 패치 인류세(Patchy Anthropocene)와 이탈성(Feral)입니다. 패치 인류세는 인류세의 영향이 지구 전체에 동일한 밀도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댐, 운하, 단일 경작 플랜테이션, 하수도망 같은 특정 인공 인프라가 설치된 장소들을 중심으로 조각보(Patch)처럼 얼룩덜룩하게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조각난 현장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존재들이 폭발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이를 야생화 혹은 이탈(Feral)이라 부릅니다. 인간이 효율성과 통제를 위해 구축한 인프라가 역설적으로 특정 생물이나 무생물(방사능, 온실가스 등)에게 최적의 번식장이 되어주면서, 그들이 인간의 의도를 비웃듯 제멋대로 팽창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소설보다 더 기막힌 역사적 사실들이 펼쳐집니다. 19세기 프랑스는 베트남 하노이를 식민 지배하며 자신들의 우월한 문명을 자랑하기 위해 첨단 현대식 하수도망을 건설했습니다. 백인 거주지에 청결한 화장실과 목욕탕을 만들어 격조 높은 삶을 누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인프라는 누구에게 가장 유용한 공간이었을까요? 바로 쥐들이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정복했다는 자만심은 인프라를 구축할수록 뒤통수를 맞습니다. 아름다운 관상용 식물로 전 세계 식물원과 박람회를 수놓았던 부레옥잠의 역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관리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부레옥잠이 번식하자, 부레옥잠을 걷어내 식물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칠리웅강에 대량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유럽 제국주의의 정원 가꾸기 욕망이 흘려보낸 부레옥잠은 수로를 막아버리고 산소를 고갈시키는 유독한 생태 공학자로 변신했습니다.


쥐는 인간이 만든 환경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자신의 생존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인프라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자연은 그 장치를 인간이 예상한 방식으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데이터는 현실의 섬뜩함을 가려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들이 빅데이터의 신화를 깨뜨리고 구체적인 패치를 관찰하자고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식용으로 들여온 황소개구리가 토종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후쿠시마의 방사능 물질이 바람을 타고 핀란드까지 날아가 진균류와 인간의 몸에 흡수되는 현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비극의 출발점에는 자연을 마음대로 재배치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역사라는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되묻습니다. 그동안 인간은 자신들만의 사건과 정치, 전쟁만을 역사라고 기록해왔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을 역사 없는 타자로 치부해버린 제국주의적 정착민 식민주의의 유산을 비판합니다. 누가 이 땅을 점령했는가뿐 아니라 무엇이 함께 이동했는가라고 물어야 했다고 말입니다.


인류세를 인간이 자연에 영향을 미친 시대라고만 정의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만든 변화가 다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움직이는 과정까지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세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 시대라는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만든 세계에 인간이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시대입니다.


개발도상국에 탄소 배출의 짐을 떠넘기는 선진국의 폭력을 비판했던 볼리비아의 원주민 담론처럼, 지구의 위기는 정치적 역사적 불평등과 완벽히 얽혀 있습니다. 인간이 지구의 역사를 독점하려 했던 세월 동안, 정작 역사의 고삐는 방사능과 변종 미생물, 바이러스, 그리고 이탈한 외래종들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미쳐가는 지구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패치 인류세』는 건축가 라카통과 바살의 철학을 인용하며 대안을 제시합니다. '허물기'와 '짓지 않기'입니다.


새로운 녹색 인프라를 또다시 짓고 개발하는 기술지향적 착각에서 벗어나, 저자는 서로 다른 지식 체계와 생명체들의 삶을 겹쳐 읽는 포개 쌓기(Overlapping)의 태도를 주문합니다. 내 눈앞의 작은 현장, 즉 패치를 유심히 관찰하고, 인간 외 존재들이 보내는 경고에 귀를 기울이며, 인간의 무분별한 개입을 정지시키는 것. 그것만이 인류세라는 대재앙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인류학, 생태학, 건축, 시각 예술이 결합한 독창적인 현장 보고서 『패치 인류세』. 세계를 바라보는 틀 자체를 뒤흔드는 감각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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