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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쓰, 웁쓰 - 비움을 시작합니다
미깡 외 지음 / 에피케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다섯 명의 창작자가 일상의 구석에서 끌어올린 음식물 쓰레기 주제를 중심으로 엮은 앤솔로지 『음쓰, 웁쓰 - 비움을 시작합니다』.
단순히 환경 문제나 소비 습관의 개선을 요구하는 캠페인성 텍스트가 아닙니다. 만화가, 에세이스트, 사진가, 브랜드 마케터, 에디터라는 서로 다른 직업적 배경을 가진 저자들은 음식의 시작과 끝, 나눔과 버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파동을 기록합니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봉투에 담아 내놓는 음식물 쓰레기 속에서 버려진 음식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존심, 후회, 애착, 나아가 관계의 흔적까지 마주하게 됩니다.

『음쓰, 웁쓰 - 비움을 시작합니다』는 음식물처리기 가전 브랜드 미닉스와 에피케의 협업으로 시작된 에세이입니다. 일반적인 환경도서나 제로 웨이스트 가이드북과 다른 점은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개인의 감정과 경험이라는 렌즈로 재해석했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통계나 무거운 경고 대신,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발견하는 의미와 깨달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웹툰 《술꾼도시처녀들》로 대중적 공감을 얻은 만화가 미깡 저자는 「지금, 분쇄 중입니다」에서 음식과 인간의 관계를 독특한 언어 감각으로 드러냅니다.
"그럼 너는 음식이 귀해서 〈먹어 치운다〉고 표현하냐? 너 그냥 쓰레기통 비우기 싫어서 억지로 꾸역꾸역 먹는 거잖아."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무의식적으로 '먹어 치우는' 행위를 해왔던 것 같거든요.
우리가 음식과 맺는 관계가 얼마나 소비와 폐기의 관점에 갇혀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음식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끝내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행위조차도 실은 쓰레기 처리의 귀찮음을 피하기 위한 자기 위안일 수 있다는 사실, 이 아이러니는 우리의 식습관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미깡 저자의 서사는 음식이 인간의 욕망과 게으름, 자기 합리화와 얽혀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 덕분에 전혀 무겁지 않습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살아가는 손현 작가는 「네가 변해야 모든 게 변한다」에서 자신의 삶을 음식물 쓰레기와 연결시킵니다. 과거에는 모터사이클과 자유로운 일기를 쓰던 사람이 이제는 아이가 남긴 음식을 자신의 몫으로 삼고, 육아일기를 씁니다.
주 양육자가 된 변화를 통해 음식물 처리기의 분쇄처럼 에고의 분쇄를 담담히 들려줍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는 행위가 곧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는 과정과도 연결됨을 보여줍니다. 음식의 순환은 곧 삶의 순환이며, 남은 음식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결국 인간관계와 자기 성장의 비유로 읽힙니다.
사진작가이자 브랜드 수파클링레모네이드의 대표 임수민 저자는 「정서적 <비움>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에서 비움은 단순히 버림의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과정과 맞닿아 있음을 들려줍니다.
"내 소유욕의 실체를 들여다보니 그 감정은 내가 만들어 낸 이상과 희망을 대상에 입히고 있었다."라고 고백하며 비움은 새로운 균형을 찾는 과정임을 일깨워 줍니다. 일하는 표류자로서 프리랜서의 삶을 채움과 비움의 균형이라 정의하는 대목은, 음식물 쓰레기를 통해 일상에서 '균형'을 다시 묻는 이 책의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자는 삶에서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 것인지 묻습니다.

휴먼스오브서울의 편집장이자 브랜드 마케터 정두현 저자는 「버리는 마음」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순간의 불쾌함을 솔직하게 기록합니다.
"요리를 할 때는 하나하나가 소중했지만 지금은 최대한 빨리 눈앞에서 치우고 싶은 존재들이다. … 불과 30분 전까지 날 설레게 했던 냄새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며 음식의 찬란한 순간과 버려지는 순간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줍니다.
사람 관계는 음식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서둘러 잊고 싶었던 인간관계들을 음식물 쓰레기와 연결해 들려주기도 합니다. 그의 글은 버림을 통한 단절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예쁘게 버리는 법에 대한 제안으로 끝을 맺습니다.
20년 차 에디터이자 라이프스타일 작가 이민경 저자는 레시피에 무엇을 더 넣을까가 아니라 한정된 재료로 어떻게 더 맛있게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론을 넘어 음식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재료를 아끼는 태도에서 시작해 음식을 존중하는 법을 삶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우리 곁의 좋은 물건, 좋은 사람을 아끼는 것처럼 음식을 소중히 대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까라고 말입니다. 오늘의 한 끼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태도의 총합임을 일깨워 줍니다.

『음쓰, 웁쓰 - 비움을 시작합니다』는 음식물 쓰레기라는 일상적인 주제를 통해 욕망, 관계, 성장, 태도라는 본질적 문제를 탐구합니다. 버려진 음식은 결국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감정과 맞닿아 있고, 비움은 곧 자기 성찰과 연결됩니다.
다섯 명의 창작자가 보여주는 다양한 시선은 냉장고 속 남은 반찬을 다시 보게 만들고, 동시에 우리의 자세까지 점검하게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버려야 할 찌꺼기가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가 담긴 흔적으로 보입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보며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드는, 의외로 철학적인 에세이집입니다. 환경, 삶, 관계, 그리고 마음의 비움까지. 일상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쉽게 잊히는 문제를 새로운 감각으로 조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