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영어학교 - 알파벳 읽기 - 느려도 쉬어가도 포기하지 않는
하니티처 지음 / 길벗이지톡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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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늦깎이 거북이들의 세상을 열어주는 『거북이 영어학교: 알파벳 읽기』. 저자 하니티처는 영어를 배우는 행위를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있는 세상을 넓히는 일"이라 정의합니다.


20살 대학 시절, 우연히 접한 영국 밴드의 음악에 매료되어 영어 문외한에서 해외 아티스트 전담 통역사로 거듭난 서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강남의 대형 어학원 등 소위 영어 교육의 메카에서 비즈니스 회화와 문법을 가르치던 저자가 왜 가장 기초적인 알파벳으로 시선을 돌렸을까요?


그 답은 할머니에게 있었습니다. 영어를 읽을 수만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할머니의 고백은 세련된 영어 교육 콘텐츠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의 갈증을 대변합니다.


손녀의 마음으로 할머니를 직접 가르치며 어른들이 영어를 받아들이는 특유의 속도와 호흡을 체득했습니다. 복잡한 문법 이론을 걷어내고, 학습자의 눈높이에서 본질만 남긴 왕기초 영어책입니다.


전반부는 알파벳이라는 기호와 뇌가 친해지는 과정을 다룹니다. 알파벳 26자. 대문자와 소문자의 괴리, 필기체의 굴곡 앞에서 초보자들은 길을 잃기 마련입니다.





대문자와 소문자를 나란히 배치하여 짝을 맞춰주는 구성은 뇌의 연상 작용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필기체 써보기도 은근 실용적입니다. 해외 브랜드 로고나 멋스러운 간판은 정자체보다 필기체에 가깝습니다. 좀더 눈에 익게 만듭니다.


A부터 Z까지 각 글자가 입 밖으로 나올 때 어떤 파동을 만드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저자의 전문성이 빛을 발합니다. '려운 용어 배제 원칙 아래, 혀의 위치나 입술의 모양을 직관적으로 설명합니다. 3글자, 4글자 단어를 스스로 조합해 보는 단계에 이르면 성취감은 더 높아집니다. 이쯤되면 자신의 이름도 영어로 드디어 쓸 수 있게 됩니다.


영어가 어려운 이유는 글자 하나가 하나의 소리로만 고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중모음과 이중자음이라는 벽을 직관적인 덩어리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a_e`, `i_e` 처럼 떨어져 있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음의 관계는 복잡한 음운론적 규칙으로 설명하지 않고, 하나의 약속으로 정의합니다. Cake나 Time 같은 일상 단어 속의 숨은 규칙을 발견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ee`, `ea`, `ou`, `ow` 등 딱 붙어 다니는 모음 덩어리들을 다루는 파트에서는 시각적 각인 효과를 활용합니다. 영어를 처음 접하는 어르신들에게 `igh`가 '아이'라고 발음된다는 사실은 마치 마법과 같습니다.





`sh`, `ch`, `th` 같은 덩어리들은 한국어에 없는 발음이 많아 고비가 되기 쉽습니다. 저자는 '슈', '츄', '쓰' 등 한글 표기법을 적절히 활용하되, 그 미묘한 차이를 40강의 동영상 강의를 통해 보완합니다. 소리의 생동감을 QR코드로 찍으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인 `er`, `ir`, `ur`, `ar`, `or` 시리즈는 영어 특유의 굴리는 소리에 대해 재밌게 풀어냅니다. "얼~", "아알~" 같은 직관적인 의성어 표현은 공부를 즐거운 놀이로 바꿔놓습니다.


『거북이 영어학교: 알파벳 읽기』는 끝내 결승점에 도달하는 거북이의 우직함처럼 차근차근 진행합니다. 어려운 것을 아이도 알아듣게 설명하는 것은 사실 전문가라고 불리는 분들도 잘 못하는 일입니다. 하니티처의 설명법은 복잡한 문법 용어의 함정에서 구출해 냅니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어 메뉴를 읽고 마트에서 SALE 문구를 보고 반가워하는 일상의 소소한 성취감입니다. 영어를 읽지 못해 위축되었던 시니어들의 어깨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당당히 펴져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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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쉬워지는 최소한의 수학 - 인공지능 문해력을 키우는 수학적 사고법의 힘 최소한의 지식 3
이동준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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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알고리즘의 블랙박스를 여는 마법의 열쇠 『AI가 쉬워지는 최소한의 수학』. 챗GPT가 시를 쓰고, 인공지능이 자율주행을 하며, 넷플릭스가 내 마음을 읽는 세상. "와, 신기하다!"에서 끝나지 않고 "도대체 저 기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라며 무대 뒤를 궁금해하는 탐구자라면 이 책을 펼쳐보세요.


학창 시절 "이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지?"라며 한숨 쉬었던 수학 개념들이 어떻게 인공지능의 신경이자 심장이 되었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포항공대 수학과와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거쳐, 현재는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정보를 동시에 가르치는 이동준 저자는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수학적 사고법을 내세웁니다.


챗GPT는 내 말을 알아듣고 답해주는 걸까? 넷플릭스는 내 취향을 어떻게 알고 추천을 해줄까? 자율주행차가 도로에서 행인을 찾아내는 방법은? 등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를 고등학교 수학의 언어로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AI는 사과와 배, 자동차와 버스를 어떻게 구별할까요? 단어를 좌표 공간 위의 점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언어를 해석합니다. 인간에게 단어는 정서와 기억이 결합된 상징이지만, 인공지능에게 단어는 거리와 각도로 구성된 수치적 객체입니다.





인공지능에게 단어는 이름표가 아니라 주소인 셈입니다. 사과와 배는 비슷한 동네에 살고, 자동차는 아주 먼 동네에 사는 겁니다. 인공지능은 단어들이 어디쯤 사는지 좌표를 보고 "아, 이 단어들이 서로 친하구나!"라고 눈치를 채는 거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챗GPT의 대답이 마술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임을 체감하게 됩니다. 놀라운 점은 이 복잡한 과정이 고등학교 수학의 벡터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인공지능이 학습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인공지능이 정답에 가까워지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과정을 손실함수와 경사하강법으로 설명합니다. 인공지능에게 학습이란, 마치 산 정상에서 안개 낀 골짜기 아래(최솟값)로 가장 가파른 길을 찾아 내려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예측이 틀릴수록, 인공지능은 더 많이 수정합니다. 오답노트를 쓰는 것처럼 인간의 학습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이쯤되면 수학이 정해진 답을 내는 기계적인 학문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최적의 도구를 선택하는 전략적 사고의 영역임을 깨닫게 됩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내가 무엇을 보고 싶어 할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많은 사용자와 콘텐츠라는 거대한 데이터 표 안에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잠재 요인들이 숨어 있습니다.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SF도 좋아할 확률을 계산하고, 유사도라는 개념으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나 비슷한 특성을 가진 영화들을 찾아냅니다. 행렬 분해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취향 요소를 발견하고, 군집화로는 비슷한 사용자끼리 자연스럽게 그룹화합니다. 각각의 방법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가 취향이라고 부르는 모호한 감각은 알고 보면 거대한 행렬 데이터가 쪼개지고 다시 합쳐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치적 경향성입니다.


인공지능이 대출 승인을 거절하거나 질병을 진단할 때, 그 판단 근거는 무엇일까요? 데이터를 분류하는 알고리즘인 SVM(서포트 벡터 머신) 등을 다루며 수학이 어떻게 공정한 판단의 기준선을 긋는지 보여줍니다.






딥러닝의 핵심인 인공신경망에 대해서는 활성화함수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수많은 함수가 서로 연결되어 결과값을 전달하는 과정은 마치 인간의 뇌가 자극을 처리하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저자는 인공신경망의 발전을 단순히 기술적 성취가 아닌, 수학적 난제를 하나씩 극복해온 역전의 드라마로 묘사합니다.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수학 개념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해서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인공지능이 해내는 일들이 마법이 아니라 원리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되니 AI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마법사에게 휘둘리는 관객이 아니라, 마술의 트릭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스마트한 관찰자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자율주행차가 눈앞의 보행자를 인식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합니다. 이미지를 숫자로 이루어진 행렬로 변환하고, 그 위를 필터라는 돋보기가 훑고 지나가며 특징을 추출하는 합성곱 연산의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뇌로 판단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가 인공지능에게는 거대한 수치 연산의 집합체라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수학은 인공지능에게 시각을 부여하는 빛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생성형 AI를 다룹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그림을 그려내고 문장을 창조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뜻밖에도 통계였습니다.


인공지능은 히스토그램으로 데이터의 분포를 파악하고, 정규분포로 그 특징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오토인코더로 핵심 패턴을 압축하고, VAE로 잠재 공간을 정돈하고, 디퓨전 모델로 노이즈에서 선명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각 단계가 모두 데이터 속 패턴을 찾아서 새로운 것을 생성한다는 원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성 인공지능은 무작정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통계로 철저하게 설계된 메커니즘을 따릅니다. 창의성조차 수학적 확률과 통계의 영역 안에서 정교하게 설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인공지능 발전사는 수학 문제를 해결해온 역사라고 합니다. 『AI가 쉬워지는 최소한의 수학』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산을 정복하기 위해 챙겨야 할 개념적 장비입니다. 인공지능의 원리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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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 AI - 매일매일 쓰는 챗GPT 영상 생성 AI 매일매일 AI 시리즈 3
박범희 외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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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숏츠를 볼 때면 "이 영상은 진짜인가, AI인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소라 2는 단순히 그럴듯한 그림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물리적 법칙을 이해하고, 빛의 산란과 중력의 법칙을 영상 속에 녹여냅니다.


넥슨, 게임빌, 스마트스터디 등 콘텐츠 산업의 최전선에서 캐릭터와 3D 리소스를 제작해 온 박범희 저자의 실무 경험, 그리고 교과서·이러닝 콘텐츠를 제작해 온 앤미디어의 교육 콘텐츠 노하우가 결합된 『소라 2 AI』. 콘텐츠 제작자의 사고 구조를 AI에 이식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요즘 영상 생성 공식은 챗GPT+소라 2 구조입니다. 촬영 장비와 편집 툴 중심이 아니라, 언어와 기획 중심의 공식으로 재편되었음을 뜻합니다. 『소라 2 AI』는 소라 2를 스토리보드, 카메라 구도, 사운드까지 통합하는 종합 제작 파트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물리적 현실성입니다. 소라 2의 영상은 인물의 걷는 속도, 그림자의 방향, 옷자락의 흔들림 같은 요소를 자연스럽게 반영합니다. 단순히 그래픽 품질이 좋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상이 관객의 인지 법칙을 속이지 않고 설득한다는 차원입니다.





기존 AI 영상의 고질적 문제였던 캐릭터의 일관성 붕괴를 카메오 기능으로 돌파했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가상의 인물을 고정값으로 설정하고, 모든 장면에서 동일한 얼굴을 유지한다는 것. 영상 제작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리믹스 기능은 무한한 변주를 허용합니다. 기존의 AI 영상을 기반으로 "이 장면을 사이버펑크 스타일로 바꿔줘" 혹은 "주인공의 의상을 르네상스 시대로 변경해 줘"라는 명령 하나로 새로운 결과물이 나옵니다. 창작의 노동을 선택과 조합으로 바꿉니다. 단순히 "멋진 영상을 만들어줘"라고 입력하는 것은 AI에 대한 실례입니다. 영상의 목적과 콘셉트를 정리하고, 장면별 시각적 대본을 구체화하는 피드백 루프를 강조합니다.


카메라 워킹에 대한 프롬프트 구성도 로우 앵글, 하이 앵글, 더치 앵글 같은 전문 영화 용어를 프롬프트에 어떻게 녹여내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퀄리티가 갈립니다. 챗GPT 내에서 포토샵 기능을 호출하여 이미지를 세밀하게 편집하고, 이를 다시 소라 2의 소스로 활용하는 워크플로우도 유용합니다. 


얼굴 노출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자신만의 아바타를 생성하고, 그 아바타가 매번 일관된 모습으로 등장하여 일상을 공유하는 영상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소라 2 AI』에서는 스토리보드 기능을 활용해 영상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전체 기획 하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숏폼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카메오와 스토리보드로 구축하는 나만의 유니버스를 만들어보세요.





영상에 사운드가 빠지면 맹맹하죠. 수노(Suno) AI를 소라 2의 파트너로 챙깁니다. 챗GPT로 가사를 쓰고, 수노 AI로 곡을 뽑아낸 뒤, 그 리듬에 맞춰 소라 2의 영상을 스티칭하는 과정까지 이어집니다. 요즘 유행하는 챌린지 영상 제작도 따라해볼 수 있습니다. 이제 누구나 영화 같은 순간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AI 영상 기술이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떻게 돈이 되는 가치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숏폼 광고, 드라마틱한 제품 홍보, 가상 강사를 활용한 교육 콘텐츠 등 실무에서 활용하기 좋습니다.


현실 세계의 장소에 가상의 거대 오브제를 합성하는 VFX 기반의 가상 옥외 광고 기법도 맛볼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복잡한 3D 툴이나 거대 예산 없이, 오직 창의적인 프롬프트와 전략적인 도구 활용만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AI와 협업하여 나만의 세계관을 시각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소라 2 AI』. 아이디어만으로 완성하는 AI 영상 제작 실전 가이드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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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 위기의 문학 - 모더니즘 입문서 테리 이글턴 컬렉션
테리 이글턴 지음, 도원우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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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계의 전설적인 석좌 교수이자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의 거장 테리 이글턴의 노련한 통찰이 집약된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 우리가 모던하다고 할 때 떠올리는 세련됨이나 깔끔함은 잊어주세요. 테리 이글턴이 말하는 모더니즘은 세련된 카페의 인테리어가 아니라, 전통적 가치가 붕괴하고 언어가 제 기능을 상실한 위기 그 자체입니다.


그에게 모더니즘은 새로운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왜 기존의 언어와 세계 인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의 산물입니다. 원제 A Literature in Crisis는 곧 위기의 문학입니다. 모더니즘은 위기를 장식하는 예술이 아니라, 위기를 사고하는 문학입니다.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화려한 몰락이자 혁명이었던 모더니즘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먼저 모더니즘과 모더니티의 미묘한 차이를 짚어줍니다. 모더니티가 기차, 비행기, 전기가 가져온 물리적 변화라면, 모더니즘은 그 변화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 정신의 몸부림입니다. 모더니즘이 단순히 새것을 찬양하는 사조는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라는 배경이 있을 때만 현대성을 인지합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그 과거를 지워버림으로써 영원한 현재에 갇히고자 합니다. 테리 이글턴은 이를 망각의 형식이라고 부릅니다. 역사적 위기를 은폐하거나 혹은 그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한 형식적 전략이었음을 분석합니다. 리얼리즘이 세계를 거울처럼 비추려 했다면, 모더니즘은 그 거울을 깨뜨려 파편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 파편화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진실이라는 겁니다.


이어서 모더니즘의 핵심 문제인 언어의 위기를 다룹니다. 모더니즘 작가들에게 언어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모더니즘이 왜 그토록 난해하고 추상적인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대상(사물)과 그것을 지칭하는 이름(말) 사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현실이 사실은 언어에 의해 조작된 구성물임을 깨닫는 순간, 작가들은 새로운 언어, 혹은 감정이 배제된 정직하고 메마른 0도의 글쓰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저자는 아도르노의 부정 미학을 끌어옵니다. 예술이 대중문화의 소모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무용(無用)해지기를 선택했다는 분석입니다. 모더니즘 예술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난해한 성벽 안에 가둡니다. 독자 대중과의 불화를 자처함으로써 오히려 예술의 자율성을 지켜내려 했습니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에서는 모더니즘의 흐름 안에서도 특히 공격적이었던 아방가르드 운동을 조명합니다.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이 계보에서 예술은 삶을 변혁하는 폭탄이 됩니다. 이성이 지배하던 근대 사회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파국을 맞이했을 때, 예술가들이 느꼈던 환멸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성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항해 광기와 우연을 처방전으로 내놓았습니다.


변기를 전시장으로 가져온 뒤샹의 시도는 장난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제도의 권위를 해체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던 겁니다. 테리 이글턴은 아방가르드의 시도가 예술의 죽음을 선언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예술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려 했음을 짚어줍니다.





모더니즘과 정치적 보수주의의 기묘한 결합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엘리엇, 파운드, 예이츠 같은 모더니즘의 거장들이 왜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거나 심지어 파시즘에 경도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자는 이 모순을 보수 혁명가로 표현합니다. 사라져가는 전통과 질서를 그리워하며(보수), 그것을 지키기 위해 가장 파격적인 형식적 파괴(혁명)를 단행했습니다.


테리 이글턴은 모더니즘이 지닌 위기의 감각을 오늘날의 기후 위기, 디지털 파편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맥락으로 끌어옵니다. "모더니즘은 기존의 지배적 합리성이 재앙적으로 실패한 시대에 대안적 합리성을 모색하는 시도"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불안과 허무,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탈진실의 시대야말로 모더니즘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이글턴은 맹목적인 낙관을 경계하면서도, 위기 속에서 형식을 찾아내려 했던 모더니스트들의 노력을 변증법적 희망이라 부릅니다.


말이 어려워 보이지만, 뜻을 풀면 꽤 현실적인 개념입니다. 변증법은 모순과 충돌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테리 이글턴이 말하는 변증법적 희망이란 모더니즘이 실패했고, 세계는 위기에 빠졌지만 그 실패와 위기 자체가 새로운 사고와 실천의 조건이 된다는 뜻입니다.


모더니즘은 완전한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예술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합리성은 재앙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이 모든 부정과 붕괴를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다른 합리성, 다른 언어, 다른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지만, 그 희망은 위기를 직시한 뒤에만 생기는 희망입니다. 희망은 현실을 외면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끝까지 밀어붙여 생각할 때 생긴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은 우리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견뎌낼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루카치, 아도르노, 앤더슨, 제임슨을 가로지르며 모더니즘 비평사를 재구성하고, 그 끝에서 테리 이글턴은 변증법적 희망을 제시합니다.


한국어판 서문이 주목할 만합니다. 테리 이글턴은 모더니즘을 서구 전유물로 보는 시각을 거부하고, 한국을 포함한 비서구 사회의 모더니즘을 인정합니다. 식민지와 반식민지 국가에서 모더니즘은 서구와는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전통과 근대, 민족과 세계, 저항과 협력 사이의 긴장 속에서 독특한 형태의 모더니즘이 발전했습니다.


한국의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 일본의 신감각파, 중국의 5·4 운동기 문학은 모두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역사적 맥락에서 재해석했습니다. 모더니즘이 보편적 문학사조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위기에 대한 다양한 응답들의 집합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왜 모더니즘을 읽어야 할까요? 모더니즘이 직면했던 위기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현실의 괴리, 경험의 파편화, 의미의 상실, 전통적 가치의 붕괴. 이 모든 것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SNS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경험을 무수한 조각으로 쪼개고, 뉴스 피드는 맥락 없는 정보의 홍수를 쏟아냅니다. 우리는 접속되어 있지만 고립되어 있고, 정보는 넘쳐나지만 의미는 결핍되어 있습니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그려낸 파편화된 현대 도시의 풍경과 닮아 있습니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은 모더니즘의 실험과 실패, 성취와 한계를 분석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계승임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거울로서의 모더니즘사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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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
알콩달콩 뚱딴지네 지음 / 좋은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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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양보다 더 평양 같은 K-직장? 북한 엘리트 스파이가 목격한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기괴한 민낯 『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


설정부터 재밌습니다. 북한의 최정예 스파이가 남한의 공공기관에 위장 취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긴박한 총격전이나 고도의 심리전을 예상하셨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습니다. 소설 『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가 조준하는 타깃은 바로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부조리극이기 때문입니다.


저자 알콩달콩 뚱딴지네는 실제로 공공기관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가 해고당한 실전 경험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펜을 든 이유는 단 하나였을 겁니다. 본인이 겪은 그 비현실적인 현실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겁니다. 북한 엘리트 해커 '서파이'의 눈을 빌려, 우리 사회의 꼰대 문화를 정면으로 마주해 봅니다.


소설의 서막을 여는 려명거리는 주인공 서파이가 남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그립니다. 그는 첨단 기술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자유의 땅을 꿈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자는 환상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기괴한 기시감을 묘사합니다.





서파이가 발령받은 공공기관은 겉으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내부적으로는 낡은 관습과 부패가 퇴적물처럼 쌓여 있습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신입사원들에게 강요하는 장기 자랑, 소위 재롱잔치. 단체 구호, 집단 동작, 강요되는 웃음과 박수. 이 장면은 북한의 집단 공연 아리랑과 남한의 기업 연수를 겹쳐 놓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 소설의 블랙코미디는 웃기기 위해 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난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개성을 말살하고 조직의 부속품으로 길들이는 이 과정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간판 뒤에 숨겨진 전체주의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동원되는 각종 의전은 북한의 수령 우상화 작업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습니다.


북한말로 된 목차도 재밌습니다. 게으름을 뜻하는 '농태기' 편에서는 일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중견 간부들을 꼬집습니다. 업무의 본질보다는 보여주기식 행정에 매몰된 조직의 모습은 요즘 세대들이 가장 혐오하는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직업동맹' 편에서는 실제 노동조합을 설립했던 저자의 경험이 가장 진하게 녹아 있습니다. 소설 속 노조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집단이 아니라, 또 하나의 권력 기관으로 묘사됩니다. 공정을 외치는 사회에서 가장 불공정한 일이 벌어지는 현장을 목격한 스파이의 시선은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개인의 약점을 들추어내어 공격하는 북한 말 '뼈다구 파내기' 편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전형적인 수법들이 등장합니다. 『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는 북한 스파이라는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K-직장 문화의 민낯을 낯설게 보게 만드는 사회 심리극입니다.


우리는 조직 안에서 이방인입니다. 조직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어 당황하고, 부조리한 관행에 분노하지만, 결국 순응하거나 떠나야 하는 존재들. 오늘 하루도 까리하게 버티며 된방 맞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았던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합니다. 조직이라는 이름의 풍경을 솔직하게 그린 블랙코미디 보고서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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