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RAIN) - 자연.문화.역사로 보는 비의 연대기
신시아 바넷 지음, 오수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환경 사학 전공 출신 저널리스트 신시아 바넷 저자의 책 <비>는 비에 관한 한 편의 러브스토리입니다.
웬만큼 애정을 들이지 않은 이상 이처럼 방대한 '비' 스토리가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자연 에세이를 좋아하거나 환경 문제에 관심 많은 분이라면 소장해야 할 책입니다.

 

우리는 대기라는 바다 밑바닥에 잠겨 살고 있다.
-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나는 데 기여한 지구 최초의 비를 시작으로 비와 인류의 역사는 다사다난한 일로 가득 채워집니다. 지옥같이 뜨거운 지구를 식혀 준 태초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비는 생명 그리고 그 이상을 의미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한 비. 우리는 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걸까요. 빗방울의 실제 모양은 낯설기만 하고, 여전히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비정상적 패턴은 예측하지 못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급격한 기후변화와 맥을 함께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14세기 대재앙인 흑사병은 대재앙이 시작된 첫날 개구리와 뱀, 도마뱀, 전갈 같은 것들이 빗속에서 떨어진 일화로 시작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닥치며 대기근이 흑사병을 악화시키고, 설치류의 이동을 유발했으리라 추정합니다.

 

설화와 종교에서는 비를 신의 축복과 분노로 바라봤고, 재난을 설명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바치고 마녀사냥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 시대엔 신세계 기후가 고약한 탓에 동식물과 원주민이 기형화됐다고 믿었습니다.

 

신시아 바넷 저자는 현대에 이르러 우리가 얼마나 비에 의존하는 취약한 존재인지 둔감해지고 있다는 걸 지적합니다. 인간 진화가 적자생존만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적응이 뛰어났던 존재들이 생존한 결과임에도 말입니다.

 

기상예보 체계가 자리 잡은 이후에는 자연과 비까지도 정복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만 사례가 넘쳐났습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으로 기후와 물과 땅이 형성해놓은 시스템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은 홍수로 만들어진 범람원에 정착하고, 초원의 풀을 제거하고 삼림을 베어버리고, 높은 제방을 쌓게 해 재난의 강도를 상상 이상의 수준으로 높여놓았습니다.

 

 

 

우울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비와 관련한 알쓸신잡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인류 역사와 비의 관계 속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최초의 비옷과 우산이 탄생한 스토리는 방수 처리법의 발달과 연결되어 있었고, 건축과 관련해 빗물을 막는 지붕의 역사도 소개합니다. 체계적인 강우량 측정이 시작된 사례로 무려 세종대왕의 측우기가 등장하기도 해 반가웠습니다. 과학적 기상예보가 실체를 갖추기까지의 역사에는 유능한 기상예보관들과 협잡꾼의 사기꾼들이 고루 등장합니다.

 

 

 

비와 문학, 예술과의 관계에서도 방대한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빗소리를 연상시키는 음악에서부터 문학 작품 속 비의 의미, 비와 관련한 영화 등 '비'에 담긴 예술 문화가 총망라되어 있어 신시아 바넷의 정보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어요. <비 RAIN> 책을 보면서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한가득 늘어나버렸네요.

 

비와 관련한 어휘는 기상천외했습니다. 개와 고양이가 떨어지듯 억수로 쏟아지는 비, 노파와 지팡이처럼 쏟아지는 비, 두꺼비 턱수염처럼 오는 비. 그 외에도 폭우를 묘사하는 다양한 형용사는 신선 그 자체였어요. 과학 혁명기에 기상학자들이 비 표현을 너무나도 삭막하게 했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지구 기온이 상승해 이제는 극단적인 홍수와 가뭄이라는 재앙의 형태로 나타나는 비.
비를 기원하고 숭배하던 것에서 나아가 이제는 비를 장악하려고 합니다. 인공강우 초기 실험에서 비를 무기로 이용해 폭우를 내려 베트남전에서 이기려고 했던 것처럼 전쟁무기화될 수도 있을 만큼 비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신시아 바넷 저자는 최고 다우 지역인 인도에서 몬순을 경험하고자 했습니다. 빗속의 로맨스를 누릴 수 있었던 몬순이 이제는 한차례 사납게 쏟아지고 잦아드는 비 수준으로 전락해 혹서만 경험하고 왔습니다.

 

인간이 유발한 온난화로 극심한 기후변화인 폭우와 가뭄이 이어지는 이 시대. 막강한 자연의 힘에 인간의 욕망이 얹어져 어긋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지구 역시 고삐 풀린 온실 효과로 금성처럼 될 운명은 아닌지. 생명의 물과 양분의 원천인 비가 폭우와 극심한 가뭄이라는 재난의 형태로 보여주는 상황에서 이제는 물을 아끼는 수준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바탕으로 한 실천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제기합니다.

 

<비 : 자연 문화 역사로 보는 비의 연대기>는 인간중심주의적 생태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방대한 사례를 모조리 뽑아내는 방식인 저널리스트 특성이 빛을 발휘합니다. 중간중간 치고 들어오는 알쓸신잡이 많아 혼란스러울 지경이긴 하지만, 꼼꼼히 읽다 보면 신시아 바넷의 명료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체와 흥미진진한 사례들로 어느새 푹 빠져 읽게 될 거라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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