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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컬렉션 - 호암에서 리움까지, 삼성가의 수집과 국보 탄생기
이종선 지음 / 김영사 / 2016년 1월
평점 :
저마다 수집 취향은 있을 거예요. 수집 물품도 소박한 것, 기상천외한 것... 참 다양할 텐데요, 개인이 수집한 것으로 박물관을 열 정도의 수집 마니아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삼성가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다 보니 그 스케일이 장난 아니더군요.
<리 컬렉션>은 삼성가 2대 이병철, 이건희 부자의 명품 컬렉션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삼성문화재단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명품을 초이스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이종선 박물관장이 직접 겪은 에피소드와 다양한 썰~을 풀어놓는데 꽤 재밌게 읽었어요.
박물관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개인이 수집을 통해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것은 순수한 개인의 열망이 담긴 최고점이 아닐까 싶네요. 1982년 이병철 회장이 세운 호암 미술관, 2004년 이건희 회장이 세운 리움 미술관은 우리나라 문화예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죠.


이병철 회장이 미술품을 수집하게 된 동기도 여느 수집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뭔가에 꽂힌다는 건 순식간이잖아요. 어쩌다 몇 번 다루어보면서 고서화, 도자기 골동품, 현대 미술 등 저마다 특색에 매력 느끼며 한 마디로 꽂힌 거죠. 재미가 붙으니 날개 달린 듯 일사천리로 수집 마니아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수집으로 시작해 박물관 운영으로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사립 박물관은 간송 미술관, 호림 미술관인데 국보급 문화재를 갖춘 양이 삼성가는 역시 대단하긴 하더군요. 현재 삼성가가 가진 국보급은 국보 37건, 보물 115건이라고 해요.
교과서에서나 보던 것도 나와서 헉소리 날 만하던걸요. 명품을 알아보는 눈, 정보력 등은 역시... 삼성이네 싶더라고요. 손에 넣기까지 우여곡절 에피소드도 참 많았습니다. <백자달항아리>는 이건희 회장 출근을 막아서서 결재 처리한 도자기라고 해요. 달항아리의 미스코리아쯤 된다고 합니다. 구매 후 국보로 지정된 도자기입니다. 이종선 박물관장은 이후 중국과 수교가 되기도 전에 중국 국보 전시를 호암에서 진행한 문화외교의 선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강아지 그림이 귀여워서 기억하는 작품도 삼성가 컬렉션에 있는 거군요.
이암 <화조구자도>는 자칫 김일성 컬렉션이 될 뻔한 작품이라는데, 일본에서 북한으로 당시 문화재가 많이 들어갔었다고 합니다. 이암의 강아지 작품 <모견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양이가 나오는 <화조묘구도>는 평양박물관에 소장 중이라네요.
일본으로 넘어간 문화재를 다시 들여오기 위한 노력은 완전 007작전이었어요. 고려 불화가 일본 박물관에서 경매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너무 비싸 사지 못할듯하니 이병철 회장에게 개인 자격으로라도 사들여줬으면 했다는군요. 그런데 일본 측에서 한국에는 팔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미국으로 먼저 빼돌린 다음 역수입하는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 얘기가 나오면 우리 문화재 반출과 관련해 속 쓰린 이야기가 가득 나오죠. 특히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꼭 우리나라로 되돌아 왔으면 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병철 회장이 소중하게 아꼈다는 <청자진사주전자>는 정말 멋지네요. 이 주전자는 백지수표라는 썰이 있긴 하더라고요. 가야 금관, 고구려 반가상처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문화재도 많습니다.
<고구려 반가상>에 얽힌 에피소드도 인상 깊었어요. 우리나라 불상의 족보를 제대로 세우는 불상으로 우리나라 반가사유상 중 제일 오래된 유물로 평가받는다는군요. 이걸 일본인에게 들키지 않은 채 지켜내고, 전쟁 때 월남 후 쪼들리는 생활에도 처분하지 않고 한평생 지킨 골동품상 출신 김동현 씨로부터 양도받기까지. 우리 문화재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알려준 에피소드였습니다.
"비록 하나의 유물이지만, 그 유물 하나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는 이처럼 엄청날 수 있다. 수집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역사를 온몸으로 품은 것 같은 희열과 영구히 보존한다는 뿌듯함." - 책 속에서

그저 보기 힘든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요즘은 갤러리 기능 등이 더해져 문화예술의 장으로 넓어진 박물관. 소통을 전제로 하는 공개와 상업적인 판단이 배제된 윤리가 더해진 박물관의 건립은 공공화를 의미합니다. 수집의 사회 환원이라는 형태입니다.
아무래도 문화재는 도굴, 밀반출 등으로 제자리에 있지 못한 것들이 많은데요, 문화재 수집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간송 전형필 이야기도 언급하고 있네요. 수집을 개인 차원에서 공공차원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수집가로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 했던 정말 고마운 인물입니다.
<리 컬렉션>은 단순히 삼성가의 돈자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박물관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 문화재를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함께하네요. 그나저나 이재용 부회장은 어떤 수집벽이 있을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