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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이어령.정형모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지의 최전선은 예언하는 게 아니다. 피투성이로 싸우는 게다."
디지로그 주창자,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21세기 지식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볼 수 있는 책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고품격 문화 스타일 <S매거진> 정형모 기자가 매주 한 차례씩 6개월여간 일대일 족집게 과외를 받으며 연재했던 글을 지금 시점에 맞춰 재정리한 글이라고 하네요. 마주앉아 대화하듯 진행하는 글이어서 실감 나더라고요.

이어령 교수의 서재에는 촉각을 곤두세운 일곱 마리 고양이가 있다는데, 바로 컴퓨터를 가리키는 거였어요. Computer Aided Thinking 앞글자를 딴 CAT. 컴퓨터가 내 사고를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노학자의 컴퓨터 활용법은 저보다도 훨 낫네요. 마인드젯으로 정리하고 에버노트, 드롭박스 연계해 여러 대 컴퓨터가 호환 가능하고 동시 작업 가능한 클라우딩 컴퓨팅. 스마트펜을 이용해 쓰고 녹음하면서 이미 10년 전 쓴 책 <디지로그>에서처럼 아날로그를 결합하는 디지로그 활용을 실감했어요. 그의 고양이들은 지의 전투가 격렬하게 진행되는 최전선이었습니다.
그의 서재만큼이나 활발하게 지의 격전이 진행되는 곳, 와이어드 전자판 사이트도 언급하는데, 책은 이미 10년 전에 나온 생각들로 쓰인 것들이 허다한 상황이지만, 이곳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같이 생각해보는 현장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언론이나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정보는 다루지 않고, 쓸데없는 것에 낭비하고 있음을 꼬집습니다. 중요한 건 죄다 놓치고, 다가오는 문명을 제대로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고요.
지의 최전선 중 하나인 3D프린팅의 사례를 드는데, 주문하면 거실 3D프린터가 작동해 순식간에 물건이 생기는 드론 배송과는 비교하지 못할 빛의 속도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D프린팅 활용에 소극적이다 못해 뒤처져있죠. 이어령 교수님은 3D프린팅을 이용해 한국의 전통주택인 초가집을 살리려는 계획을 세우셨더라고요.

지정학의 중요성도 일깨워줍니다. 단순히 식민지 쟁탈전이 아닌 해양 대륙 간의 싸움 속에 담긴 숨은 의미를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아주 중요하게 드러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대륙국가인가 해양국가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우리는 반도국가로, 대륙과 해양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한반도의 힘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죠.
아시아라는 단어 기원과 의미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놀라웠어요. 동남아라고 우리가 말하는 동남아 지역은 말 그대로 동남쪽으로 가면 그 나라 안 나온다는 것을 언급하며 중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말뚝처럼 서 있지 마. 역사는 강물처럼 흐르는데 우리는 강기슭에서 탄식해야겠어?"
바이러스와 문명의 관계도 흥미로웠어요. 바이러스 전염병은 역학이라기보다는 언어의 소통문제라고 합니다.
광우병 사례를 이야기하는데요. 스코틀랜드 농민들이 붙인 이름인 광우병 이름이 주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죠. BSE 라는 공식명칭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에서조차 앞다퉈 광우병으로 불렀습니다.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 쓸데없는 공포심, 혼란을 최소화해야 사회적 부담, 정치적 갈등이 감소할 텐데 언어 소통에 실패했던 사례라고요.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에서는 우리만 강 건너 불구경인 사례가 많이 소개하고 있답니다.
외국에선 난리인데도 우리 신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는 것들을 언급하며 우리는 지의 후방 전선에서 놀고 있는가 하며 안타까워합니다.
3D프린터로 바이러스도 찍어내는 세상이란 거 아세요? 노학자의 지식정보력은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생물학자도 의학자도 아닌 컴퓨터소프트웨어 회사에서 IT 전공자들이 이런 걸 해내는 세상입니다.
에디슨만 배우는 게 아니라 에디슨이 테슬라를 이기지 못한 이유를 알려줘야 하는 게 교육이라고 하고요.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모든 지적 프로세스는 관심, 관찰, 관계라고 해요.
그의 최전선은 검색을 통해 과거를 Thought 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Thinking 하는 살아있는 인문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 언어의 어원을 파고들어 개념을 끄집어내고 하이퍼텍스트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하네요. 유선, 무선 이야기가 해양 세력, 대륙 세력 지정학 문제로 나아가는... <지의 최전선>에서 그가 풀어내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하이퍼텍스트라고 합니다.

한국적 사고의 화두가 되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는데,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와 한국인의 거시기 머시기를 비교합니다. 말이나 논리로는 콕 찍어낼 수 없는 세상에서 포용적 단어의 유리함과 그것을 찾는 것이 창조적 삶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공감되더라고요. 좌우지간에... 라는 말을 잘 쓰는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 오히려 장점이 될 근거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어령 교수가 이미 10년 전에 <디지로그>에서 말한 내용을 되짚어보면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변한 게 없긴 하네요. '거대한 문명을 읽는 섬세한 더듬이'라고 정형모 기자는 말하는데 노학자가 검색으로 다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을 왜 우리는 못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운 지의 담론을 보여주는 책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