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 모두의 반려질병 보고서
강영아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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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적당히'라는 단어에는 체념이나 무기력 대신 스스로를 탓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씩씩하게'는 반려질병과의 동거 안에서 발견한 명랑한 생존의 기술과도 같습니다.


<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는 워킹맘 11인이 들려주는 반려질병과의 동거 보고서입니다. 저자들은 모두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여성들입니다. 이력은 다채롭지만, 이들의 고통은 공통된 질문으로 모입니다. "왜 아픈데 아프다 말을 못하니?"


사회적 습관으로 굳어진 침묵이 어떻게 우리를 더 아프게 만드는지를 다룹니다. 질염, 임파선염, 삼차신경통, 신장이식 같은 이야기가 단지 병명 나열이 아닙니다. 여성 질환이나 내밀한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렸던 과거와 달리, 이 책은 병을 말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삼차신경통이라는 생소한 질환의 이름을 얻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에피소드도 공감백배입니다. 동네병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숱하게 돌아다녀도 병명이 나오지 않았던 시간들. 의료진의 의견을 존중하고 믿었기에, 오히려 통증에 붙잡혔던 나날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병명을 모를 때와 알 때의 차이는 무척 큽니다. 그 통증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면, 그제야 자기 이해의 출발이 시작됩니다.


일과 병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내적 혼란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도 가득합니다. 열심히 일한 것이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은 대상포진, 갱년기 조기 진입, 혹은 암이었습니다.


질병을 마주하면서도 여전히 보고서를 쓰고, 회의에 참석하고, 아이를 등원시켜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병이 주는 역설적 자유를 마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병을 계기로 삶을 재정렬합니다. 그렇게 병은 고통인 동시에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이제 병을 '반려'라는 이름으로 품습니다. 질병은 언제든 재방문할 손님이며, 어쩌면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일 수 있습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허리디스크, 비염, 노화 같은 익숙한 질환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질병을 기피하지 않고, 조련하듯 다루며  삶의 리듬을 맞춰가는 그들의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는 아픔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에서 용기와 유머, 그리고 연대를 길어올립니다. 열한 명의 저자들은 환자로서, 엄마로서, 인간으로서 살아낸 경험을 풀어놓습니다.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이해로, 자기혐오가 아니라 자기연민으로 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병을 혼자 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열한 명의 엄마들이 병과 공존하며 배운 생존의 기술은 중년 여성들에게만 필요한 지혜가 아닙니다.


모두가 언젠가는 병을 맞이할 것이고, 병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는 우리의 내일에 대한 매뉴얼이자 치유의 동료가 되어주는 책입니다.


저도 매일 아침 손가락 마디를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눈을 뜹니다. 기름칠 안 된 것처럼 뻣뻣하면 오늘은 타이핑 작업을 덜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습니다. 매일 아침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시는 분, 만성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분이라면, 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가는 중년 여성들의 유쾌한 고백에 귀 기울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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