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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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터키)의 에르도안 독재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쓴 2008년 출간되었던 <마지막 섬>. 권위주의와 무관심이 공동체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유토피아와 같은 섬에서 펼쳐지는 정치 우화 소설입니다. 


쥴퓌 리바넬리 작가는 70년대 사상범으로 군 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하면서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튀르키예(터키) 현대사는 우리나라와도 꽤 닮아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민주화 운동 사례를 꼽을 때 대만 반정부 시위, 홍콩 민주화 운동, 미얀마 민주화 운동 등과 함께 튀르키예 게지 공원 시위 사건도 입에 오르내립니다. 소설이 출간되고 5년 후 2013년 봄, 튀르키예 이스탄불 게지 공원 철거 반대 시위가 부패 정권을 몰아내고자 하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었는데, 소설이 이 사건을 예고한 것처럼 닮아있습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독립된 외딴섬. 지상 낙원의 평온함 그 자체인 섬입니다. 1호부터 40호까지 40가구가 섬 주민의 전부입니다. 그 섬은 그들에게 마지막 은신처이자 마지막 남은 인간적 자투리땅입니다. 암묵적으로 비밀준수하며 섬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평온하게 살아온 섬 주민들. 그곳에 '그'가 나타납니다. 쿠데타로 장기 집권 후 재집권에 실패한 전직 대통령. 그저 조용한 은퇴 생활을 누리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주민들은 우호적으로 그를 환영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곳을 무질서하고 혼돈, 혼란 상태에 익숙한 나태한 곳으로 여깁니다. 말끝마다 "여러분? 맞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하면서 반사적으로 대답을 유도하는 노련한 선동가입니다. 생각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민주적으로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자고도 합니다. 그렇게 전 대통령은 섬 주민의 삶에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각인시킵니다. 그동안 평온한 삶을 살았던 주민들은 정신적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 있다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항의나 저항을 하지 못한 채 별생각 없이 분위기에 순응합니다. 섬에 생긴 새로운 계급 구조에 편승합니다. 편한 반바지 차림으로 자유롭게 지내던 주민들 중 누군가는 이제 긴 바지를 차려입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7호에 사는 소설가는 그가 올 때부터 경계합니다. 주민 모두의 삶이 더 편안하고 굳건해진다는 의도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주민들 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전 대통령에게 반대 입장을 펼치는 인물입니다. 섬 주민들은 정치에 있어서는 수동적인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대부분은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으로 선동적인 연설에 그저 끌려갑니다. 조금씩 주민 서로 간에 신뢰가 사라지고 우울, 불신이 싹틉니다. 





"사람은 평등하지 않거든.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고, 삶은 이들 사이의 투쟁이라네." - 책 속에서


섬 주민들이 괴물이 되어버린 건 갈매기 퇴치 사건으로 본격화됩니다. 이 섬은 갈매기들의 낙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섬 주민과 갈매기의 관계는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오고부터 갈매기는 섬의 적이 되었습니다. 섬은 점점 파국으로 향합니다. 소설가의 입바른 소리는 지식인의 헛소리 정도로 취급당할 뿐입니다. 논리적 사고가 공포와 증오 앞에서 상실되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딘가에 악이 존재한다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조금씩의 책임이 있는 거야." - 책 속에서


육지에서의 골치 아픈 일을 뒤로하고 섬으로 들어왔던 그들은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자신만의 평온함에 매몰되어 공동체의 안녕을 소홀히 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저항하지 못했던 원죄를 후회하는 '나'처럼 <마지막 섬>은 일상에서의 작은 굴복들이 만들어낸 저항 정신의 부재를 꼬집습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내리는 <마지막 섬>. 비판적 사고와 실천적 행동의 중요성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화 형식으로 끌고 나가는 방식이 매력적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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