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정치적 동물의 길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명제의 하나인 이 말보다 이후 세네카가 번역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에 더 익숙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이라고 했을 땐 나랏일 하는 정치에만 국한해서 생각하게 되어 의미가 완전히 다른 줄 알았는데, 정치의 의미를 되짚어보니 이보다 더 적확한 단어가 어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사람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타인과 더불어 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이고요. 그렇기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인 겁니다.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공부란 무엇인가> 등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 김영민 교수는 신간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을 사랑하려면 정치로 매일의 삶을 가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문제이며, 정치는 그에 대한 응답이다." - 책 속에서 


산다는 것은 고단함을 집요하게 견디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세상에 그냥 잘 되는 건 없습니다. 뭔가를 위해 고민하는 데 무엇이든 하려는 데 정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태어났으면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정치라고 성토합니다.


그런데 그저 집단생활만 한다고 정치적 동물이 될 순 없습니다. 보다 '잘' 살기 위해서는 눈을 떠야 합니다. 김영민 교수의 멸망 시나리오 중 한 가지가 재미있습니다. 귀찮아서 멸망한다는 거죠. 이 세계가 유지되려면 담담하게 욕심 없는 상태에선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욕망이 필요합니다. 개개인마다 이 욕망의 대상은 다를 테지만, 어쨌든 욕망은 귀찮음을 이깁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무임승차가 많습니다. 정치는 진저리 난다며 외면하고 익명으로 숨기 좋은 시대여서 조용히 숨어 지냅니다.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살고 싶어 합니다. 김영민 교수는 인생에 책임을 지려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 내야 하고, 그러려면 타인과 함께하지 않고는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고, 타인과 함께 하려면 결국 정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는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는 어디에 있는지, 정치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동안 정치인의 일이라 생각하며 나 몰라라 했던 정치의 본질을 깨닫고, 반성된 삶과 숙고된 정치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허구는 삶의 필요가 요청한 믿음의 대상이다." - 책 속에서


인간 사회는 허구의 신화로 작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키워드인 허구. 허구를 꾸며내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 공통의 종교적 신화, 국가 신화, 법 신화 등이 인간 사회의 바탕이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는 국민주권이라는 허구로 정치적 소외감을 덜어줍니다. 선거로 소수의 대표를 뽑아 자신이 통치 받는 게 아니라 대리인을 통해 통치를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허구이지만, 허구를 사실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국민을 앞세운 정치 게임 때문입니다. 저자는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픽션은 무엇인지, 그 픽션은 어떤 정치적 픽션을 대체한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이 사회의 정치적 픽션은 무엇인지를요.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큰 변화를 겪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때, 그러나 포기할 수 없을 때, 변신은 발생한다고 합니다. 김영민 교수는 의미심장한 변화 한 가지를 짚어줍니다. 대통령 선거 투표일 당일 발생하는 '정치적 변신'입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어도 공약마저도 온전히 지켜지지 않을 텐데, 지지자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말 텐데도 투표장으로 갑니다. 투표로 말미암아 국민이 재탄생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날에도 우리는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할 겁니다.


최승자의 시 세계에서 인간은 종종 개에 비유된다고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고 조용히 되물은 최승자의 시 정신을 이어받아 예술가 이불은 밖으로 뛰쳐나가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당혹스러운 반응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개입했습니다. 예술의 힘을 빌려 인간을 깨우려 든 겁니다. 


더러운 세속의 정치를 외면하고 싶겠지만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세속의 삶 자체를 부인하는 거라고 합니다. 쿠데타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도 세속의 정치는 하루아침에 개선되지 않기에 더더욱 정치란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하고, 정치의 쓸모를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에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을 향해 생각하고 질문하기를 종용합니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생각의 공화국”을 지향합니다.


<파리 대왕>으로 정치의 시작과 끝을 직시하게 하고,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상처와 치유를, <미나리>를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삶을 버텨내는 보통 사람들을, <D.P>를 통해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된다는 교훈을 들려주는 등 협잡과 음모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정치가 아닌, 내 삶에 가까이 자리 잡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다양한 정치적 논의를 다룹니다. 정치에 대한 접근법을 영화, 드라마, 책, 미술 작품을 곁들여 들려주는 방식이라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어 정치적 동물의 길을 향한 발걸음을 가볍게 만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