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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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등 수많은 일본 현대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 28년 차 번역가 권남희의 에세이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엄마로서, 번역가로서, 권남희로서의 삶을 솔직 담백하게 담은 훈훈한 에피소드가 가득합니다.


번역가 지망생들의 애독서가 된 『번역에 살고 죽고』를 쓴 권남희 저자는 이번 에세이에서도 번역 일을 하며 생기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놨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와 다이렉트로 소통할 기회를 어이없이 날린 사건의 전말,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상을 받지 않아서 '너무' 기뻤다는 속사정, 오가와 이토의 방한 때 직접 만나면서 나눈 대화 등 권남희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의 작가들과 연관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일본 작품 번역하는 직업이다 보니 작품 속에서 일본 특유의 국민성과 문화가 드러나는 부분을 접할 때면 우리와의 차이를 실감하기도 합니다.


편집자와의 에피소드도 읽는 맛이 쏠쏠했어요. 수많은 연령대의 편집자들과 그동안 참 많은 에피소드가 쌓였을 테죠. 이제는 딸 같은 편집자와 마주하게 된 세월. 늘 마감에 쫓겨 장기여행 따위 꿈도 꾸지 못하지만, 역사 깊은 집순이인지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기운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재 없는 번역가 권남희의 집안 분위기 묘사 장면도 인상 깊습니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에는 거실, 앞에는 텔레비전,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가 철철 넘쳐 난다."며 거실 한 귀퉁이가 번역하는 최적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취준생이 된 딸과의 에피소드도 유쾌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주부이자 가장으로 오랜 세월을 살면서 엄마보다 더 철 든 것 같은 딸의 입바른 말에 빵 터지기도 하고, 서운했거나 민망한 일도 솔직 담백하게 꺼냅니다. 엉뚱하게 히트치는 말을 내뱉던, 갓 말을 종알종알 배우던 어린 시절 마주이야기를 읽는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어렸을 땐 마주이야기도 열심히 기록했었는데 ㅠ.ㅠ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기록도 안하다보니, 분명 그때 뭔 이야기를 해서 엄청 웃었는데 싶어도 기억이 까무룩해집니다.



일본 문학 작품을 잘 안 읽는 사람에겐 일본어 번역가가 낯설 수도 있을텐데 저는 라이트노벨과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땐 양윤옥 번역가의 책을 특히 좋아했었고, 따뜻한 소설과 에세이 류는 권남희 번역가의 책이 많았어요. 이 두 분의 책은 믿고 읽었답니다. 두 분의 이름이 있으면 일단 책 자체의 재미 보장은 확실하다는 전제 하에 고르게 되더라고요.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슬쩍 묻어 나옵니다. 사노 요코, 마스다 미리 에세이 분위기를 받은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읽으면서도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단 생각을 했으니 권남희 번역가의 소설도 기대되는걸요. 따스하다는 평을 받는 번역가이니 훈훈한 작품이 탄생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300권에 가까운 책을 번역한 연중무휴 프리랜서 번역가로서의 삶에는 엄마로서, 권남희로서의 삶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습니다. 집순이에게 최적화된 사고방식으로 최적화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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