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이외수

마음만으로는
사랑을 할 수 없어
밤마다 편지를 썼었지
서랍을 열면
우울한 스무살의 가슴앓이
사어들만 수북히 쌓여 있었지

입대하기 전날 아무도 몰래
편지를 모두 잘게 찢어
그대 집 담벼락 밑에 깊이 묻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으리
나는 바삐 걸었네

황산벌 황사바람 속에서도
바래지 않던 추억
수시로 가시처럼 날카롭게
되살아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파고들던 아픔이여
그래도 세월은 가고 있었네

제대해서 돌아와
다시 편지를 쓰려는데
그대는 하늘나라 먼 길을 떠났다던가
보름달은 환하게 밝아 있고
편지를 잘게 찢어 묻은 그 자리
찔레꽃이 무더기로 핀 이유를
비로소 알아내고 혼자 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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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이 봄볕이 완연한 날이면 고향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이 詩가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마침 [방위]를 받기위해 훈련소로 가기 한달 전쯤이어서 더 가슴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다.
"황산벌 황사바람 속에서도 바래지 않던 추억"이란 구절하고 "편지를 잘게 찢어 묻은 그 자리 찔레꽃이 무더기로 핀 이유를 비로소 알아내고 혼자 울었지"라는 문구가 그리 가슴에 와 닿았는지...
그리고 한참을 지난 후.... 이 시가 생각나기는 하는데...이외수님의 시라는 것과 찔레꽃...어쩌구 한 구절만 또렷하여...인터넷에서 힘겹게 찾았다.
이외수님의 어떤 글보다 가슴에 와 닿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제 추억의 목소리가 되어버린 "김세윤" 진행자 차분한 낭독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생진님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던 이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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