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김남주

그래 그랬었다 그는
새벽이면 날이 새기가 무섭게 나를 깨워 재촉했다
―해가 중천에 뜨겠다 어서 일어나 소 띧기러 가거라

그래 그랬었다 그는
지각할까봐 아침밥 먹는 둥 마는 둥 사립문을 나서면 내 뒷통수에 대고 재촉했다
―학교 파하면 핑 와서 소깔 비어라이 길목에서 놀았다만 봐라 다리몽댕이를 분질러 놓을팅게

그래 그랬었다 그는
방금 전에 점심 먹고 낮잠 한숨 붙이려는데 나를 깨워 재촉했다
―해 다 넘어가것다 어서 일어나 나무하러 가거라

그래 그랬었다 그는
저녁먹고 등반불 밑에서 숙제 좀 하고 있으면
벌써 한숨 자고 일어나 재촉했다
―아직 안 자냐 석유 닳아진다 어서 불끄고 잠자거라

그래 그랬었다 그는
소가 아프면 읍내로 약을 지으러 간다 수의사를 부르러간다 허둥지둥바빳으되
배가 아파 내가 죽는 시늉을 하면 건성으로 한 마디 할 뿐이었다
―거시기 뭐냐 뒤안에 가서 물꼬시나무 뿌리 좀 캐서 달여 맥여

그래 그랬었다 그는
공책이란 공책은 다 찢어 담배말이 종이로 태워 버렸고
책이란 책은 다 뜯어 밑씻개로 닦아 버렸다

그래 그랬었다 그는
내가 학교에서 상장을 타오면
이놈의 종이때기는 왜 이리 빳빳하냐면서
담배말이 종이로는 밑씩개로는 못쓰겠다면서
여기저기 구멍난 창구멍을 바르거나 도배지로 벽을 발라버렸다

그래 그랬었다 그는
지푸라기 하나 헛반 데 쓰지 못하게 했다
어쩌다 내가 밥퇴기 한 알 바닥에 떨치면 죽일 듯이 눈알을 부라렸다

그래 그는 머슴이었다
십년 이십년 남의 집 부자집 머슴살이었다
나이 서른에 애꾸눈 각시 하나 얻었으되
그것은 보리 서말에 얹혀 떠맡긴 주인집 딸이었다

그는 내가 커서 어서 어서 커서
면서기 군서기가 되어주기를 바랬다
손에 흙 안 묻히고 뺑돌이의자에 앉아
펜대만 까닥까닥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랬다
그는 금판사가 되면 돈을 갈퀴질한다고 늘 부러워했다
금판사가 아니라 검판사라고 내가 고쳐 말해주면
끈내 고집을 꺾지 않고 금판사가 되면 골방에 금싸라기가 그득그득 쌓인다고 했다

그는 죽었다 홧병으로
내가 부자들의 모가지에 칼을 들이대고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었을 때
그는 죽어가면서 유언을 남겼다 한다
진갤논 일곱 마지기는 둘째놈한테 띠어주라고
성찬이 한 번 보고 죽었으면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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