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금융시장 불안의 주범은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라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 보도했다.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로 차입해 상품이나 주식 등 자산에 투자하는 기법을 지칭하는 용어다. 즉 저금리의 달러를 빌려 고금리의 비달러 자산을 매입하는 거래 방식이다.
지난 2년간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의 1% 초저금리를 이용한 캐리 트레이드가 주요 투자기법 가운데 하나로 각광받아 왔다. 캐리 트레이드는 그 간 상품가격의 급등과 이머징마켓에 대한 외국인 대량 매수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 여름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국제 투자패턴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FRB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증대를 우려하면서 올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FT는 캐리 트레이드가 최근 금융시장의 이상 흐름을 빚어 냈다고 전했다.
우선 인플레이션 우려는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방어 투자처인 금값은 급락하고 있다. 점진적인 금리인상이 예상되고 있으나 달러 가치는 주요 통화에 대해 급격히 상승했다.
시장 변동성도 커졌다. 지난 6일 이머징마켓 채권시장은 2년여 만에 최악의 외인 매도세를 기록했다. 미 국채와 이머징마켓채 사이의 금리 차이는 한 달 사이에 1%포인트 벌어졌다.
이 모두 주요 투자자들이 기존의 캐리 트레이드 포지션을 정리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FT는 전했다.
캐리 트레이드를 이용했던 투자자들은 약달러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저금리 달러를 차입했으나 최근 경제흐름이 예상을 빗나가자 황급히 달러를 사들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달러 가치는 크게 상승했고 동시에 달러와 반대로 움직이는 금값은 급락했다.
아울러 투자자금의 이동속도는 빨라졌다. 국제 자금흐름 추적회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에 따르면 최근 국제 금융자금은 최소 8년 만에 가장 빠르게 음료와 담배 등 방어주 투자로 흘러들어 갔다. 경기회복 전망에도 불구하고 금리인상이 예상되면서 자금이 경기변화에 그다지 민감치 않은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FT는 FRB가 금리를 올리더라도 이전 금리수준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FT는 캐리 트레이드에 따른 그간 과장된 자금 흐름은 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례로 FRB는 지난 1994년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해 인플레이션을 단속했으나 국제 금융시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급락하고 오렌지 카운티는 파산하는 등 위기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캐리 트레이드는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98년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는 파산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10년 전과 달리 투자기법이 발달해 캐리 트레이드의 후폭풍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뮤추얼펀드와 보험사, 연기금까지 투자 다각화로 위험이 분산됐다는 분석이다.
크레디 스위스 에셋 매니지먼트(CSAM)의 부회장인 로버트 파커는 "투자자들은 극단적인 사고나 리스크를 앞서 고려할 만한 리스크 관리 모델을 개발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금융시장의 혼란은 경기 회복세 둔화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메릴린치의 투자전략가인 데이비드 보워스는 "금리인상 전망은 이미 경제성장에 대해 회의적으로 돌아선 증시에 추가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메릴린치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최근 경기 전망에 대해 비관론으로 돌아섰다. 갤럽의 조사에서 앞으로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미국인은 43%인 반면 악화될 것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51%에 달했다. 한 달 전에만 해도 낙관론이 비관론이 우세했으나 최근 주가하락 등으로 경기 비관론이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