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 이름은 우리를 죄인으로 만듭니다
어머니는 죽지않는다 / 최인호 지음 / 여백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
스타가족들이 출연한 TV오락프로그램에서 20대 초반 여가수가 옆자리의 어머니이야기를 하면서 갑작스레 눈물을 쏟았다. 왜 당차고 발랄한 영스타조차 어머니란 말앞에 눈물을 보이는 걸까.

1945년생 해방둥이, 내년이면 만 육십인 작가 최인호씨도 이미 17년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한 자전적 소설을 펴내며 많이도 울었다고 했다.

“새삼스러운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살아 생전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슬픔이 솟구쳐 올라 왔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어머니 회상은 온통 참회의 사모곡이다.

‘나는 비겁하게도 어머니를 볼 수 없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감옥에 가둬두고, 좋은 옷 입히고 매끼마다 고기반찬에 맛있는 식사를 드리고 있는데 무슨 불평이 많은가, 하고 산 채로 고려장시키는 고문으로 어머니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던 형리(刑吏)였던 것이다.’


한결같은 흰고무신에 쥐색두루마기차림으로 학교를 찾은, 할머니같은 키작은 어머니를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한 일은 철없던 어린 시절로 제쳐두자. 그러나 한껏 멋을 부리고 노인학교를 다니던 일흔 무렵의 어머니, 팔순잔치때 먹고 남은 음식을 미리 준비해간 비닐봉지에 서둘러 담던 어머니, 그리고 치매에다 앞을 볼 수 없던 말년에 반가운 혈육을 만나도 그저 닥치는 대로 욕하고 증오하던 어머니를 짐스럽게 여기며 일을 핑계삼으며 멀리 했던 일은 어떻게 변명할 수 있는지.

‘어머니가 마치 개구리처럼 오그라붙으시고 노망이 들으셔도 어머니를 목욕시키고 어머니의 시든 젖을 빨면서 지난 일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나누는 그런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그 임종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울지도 않고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불안을 내가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그런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자신이 없어요. 어머니.’

작가는 백번의 뉘우침이나 백마디의 미사여구보다 단 한번이라도 효의 실천이 아쉬웠음을 솔직히 털어놓고있다. 생전 처음 71세의 어머니를 모신 부산여행에서 평소처럼 급한 성격탓에 어머니와 사소한 일로 다투고 소리지르지 않도록 맹세했던 일이며, 눈 멀고 노망에다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의 휠체어를 미는 마음에 짜증과 권태과 신경질이 북받쳐올랐던 일. 가면 괴롭고 보면 괴롭기에,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지만 솔직히 어머니의 늙으신 모습, 죽음을 앞두신 그 모습이 보기에 마음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하기 싫은 숙제하듯 한 오분 앉아있다 ‘자아 가자 얘들아’하고 일어서는 철부지아들이었음을 그는 고백한다.

작가가 ‘어머니는 영원히 죽지않는다’며 내밀한 치부까지 드러내보이는 이야기들은 개인사를 너머 어버이날에 즈음해 새삼 가슴에 와닿는 다양한 일화를 담고있다.

나이를 속이며 어머니와 함께 갔던 여자목욕탕의 추억부터, 천하에 음식솜씨 없던 어머니가 부쳐주신 밀전병의 맛. 해질무렵 집앞 골목길을 따라 함께 가던 시장나들이도 너나없이 중장년층 세대라면 어머니와 더불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담일 것이다. 작가는 또한 삼십년동안 어머니의 전속안마사로서 어머니의 다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뼈만 남은 다리에서 돌아가실 날이 가까웠음을 느끼며 가슴이 아프고 기분이 언짢았던 그때를 돌이켜 기록한다.

작가의 어머니(손복녀)는 18세때 혼인한 한살 위의 아버지와 사이에 3남3녀를 두었다. 신식양복이 잘 어울렸던 변호사 아버지가 마흔여덟에 세상을 뜨고 어머니는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긴 했지만 홀로 하숙을 치며 여섯 자녀의 대학교육을 시켰다.

작가는 초등학교만 나온 어머니의 존경스러운 교육비법은 바로 자식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말한다. 형이 기하에서 20점을 맞았을 때도 “쉬엄쉬엄 하거라. 너무 애쓰지는 말아라”고 했으며, 낙제한 아들이 대학 등록금을 한해 더 내야한다고 했을 때도 소리내어 웃으셨던 넉넉한 어머니였다.

5월 가정의 달, 그리고 8일의 어버이의 날을 맞아 이밖에 문학평론가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에세이 ‘아버지와의 만남’(생각의 나무)을, 소설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씨가 아들딸들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편지’(이가서)를 출간, 또 다른 가족이야기를 전한다.

올해 71세인 강인숙씨는 책을 통해 자신 삶의 이정표였으며, 한편으로 아주 난해한 어른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자유로운 아버지를 평생 사랑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더불어 한 인간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김정현씨의 책은 지난날의 인상깊은 만남과 사람에 대한 일화를 중심으로 직접 아들딸에게 이야기하듯 인생과 삶의 지혜를 편지글 형식으로 기록한 내용이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