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러시아 말기에 라스푸틴(Rasputi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베리아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른 살 때 스스로 '방랑하는 성자'를 자처하고 길을 떠납니다.
낮은 교육과 저급한 품행에도 불구하고 기행과 이적을 통해 그는 금새 전국적인 명성을 얻습니다.
1905년 상 페테스부르크를 방문한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리아 황후의 궁전에서 그녀의 아들인 알렉세이 황태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혈우병의 통증을 완화시킵니다.
이 일로 황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고 주술적 능력에 현혹된 황후는 라스푸틴을 가까이 두고 대소사를 의논하기에 이릅니다.
때마침 1차 대전이 발발하여 황제인 니콜라스2세는 전선으로 나가 궁전을 비우게 되었으므로 라스푸틴의 황후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커집니다.
라스푸틴을 맹신한 황후는 그의 패거리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하여 나라살림을 맡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량은 보잘 것이 없었고 황제가 독일과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들은 독일과의 강화를 모색하는 등 국정을 농단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나라살림은 급속히 어려움에 빠졌고 마침내 1917년의 혁명으로 황제가족은 모두 처형 당하는 비극을 맞습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러시아 군주제의 몰락에는 황후의 분별없는 인사정책이 주된 원인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패한 인사정책 이면에는 라스푸틴에 대한 맹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은 17세기 일본중엽 일본에서 활동한 사상가입니다.
째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어느 가게에 점원으로 취직합니다.
본시 학문에 뜻을 둔데다 성품이 신실하였기에 낮에는 가게 일을 보면서 밤으로는 책을 읽어 유학과 불교와 신토(神道)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불혹의 나이를 지나서야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고 일하던 직장을 물러났습니다.
오구리 료운(小栗了雲)의 문하에서 그는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터득했고 이어 10여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백성들의 교화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시다는 사람의 욕심을 버려야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며 노동이 곧 인격수양의 도구(諸業卽修行)라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빈둥거리고 노는 것보다는 남의 일을 공짜로라도 해주는 것이 자신의 정신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일본 국민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 오늘날 근면, 절약, 정성으로 표현되는 일본민족성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라스푸틴과 이시다 두 사람 모두 보통을 넘는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은 특별한 수행을 통해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을 터득한 일종의 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어 왕조의 몰락을 불러왔고 다른 한 사람은 수많은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 장차 나라의 근간을 튼튼히 만들었습니다.
이시다가 일찍이 조선 땅을 다녀갔더라면 한국인의 모습도 많이 바뀌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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