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
고야스 미치코 지음, 임영희.이연현 옮김 / 밝은누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자주 듣던 노래 중에 <문제아>라는 동요가 있다. 부산 감전초등학교 김형창 어린이가 쓴 시에 백창우 씨가 곡을 붙였다. ‘문제아가 되는 건 쉽지만~♪ 보통 아이가 되는 건 어려워♫’ 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교육 문제의 핵심을 짚을 수 있다니!

 

박기범 작가의 『문제아』라는 동화책도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오덕 선생이 『어린이 책 이야기』에서 높게 평가한 글을 읽고 찾아본 책이었다. 여기 실린 10개의 글이 대체로 다 좋은데,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특징이 마음에 들었다. 이를테면 어린이들에게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잘 다루고 있다.

 

노래와 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학교는 남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쉽게 문제아로 낙인을 찍고, 온갖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기 마련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 아주 특이한 문제아를 발견했다. 1970년대에 고야스 후미라는 아이가 독일 뮌헨에 있는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를 다닌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발도르프 교육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후미와 같은 반 친구인 파우스트는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포함해 주위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 그런데 파우스트는 이 학교에서 문제아다. 선생님이 학부모 회의에서 이름을 언급해 지적할 정도이고, 부모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른 학부모들은 너무 머리가 좋은 아들을 둔 그 부모를 오히려 위로한다. 머리가 좋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위로를 받을 만큼 나쁜 뜻이 되기도 하는구나.

 

파우스트는 일반적인 교육환경에서라면(독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단한 우등생으로 떠받들어질 만한 학생이다. 파우스트의 담임인 불프 선생님은 “일반 학교를 다녔다면 두세 번은 ‘월반’할 아이입니다. 그리고 열다섯에 대학에 들어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또 그의 엄마는 “파우스트같이 머리가 너무 좋은 아이, 이건 정말 문제예요.”라고 말을 시작해서 “이런 아이는 계속해서 영재 교육을 받게 되죠. 어른이 되면 어떨까요? ‘문제 어른’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설명한다. 파우스트가 왜 문제아인지 짐작이 간다. 앞에서 언급한 <문제아>란 동요에 가사로 넣는다면 ‘공부를 잘해도~♪ 문제아♫’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도 천재가 한 명 있었다. 전교 1등이었고,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가끔 전국 1등도 하는 친구.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다 배우고 들어와서 수업시간에는 별로 집중해서 듣지도 않았다. 가끔 수학 선생님의 실수를 지적하거나, 선생님도 못 푸는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 선생님을 긴장하게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당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특별한 존재였다. 나머지 50여 명의 학생들은 마치 그를 위한 들러리 같았다. 그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서울대를 들어갔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파우스트 엄마의 말처럼 문제 어른이 되었을지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우리 교육은 문제 어른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가와 자본이 원하는 대로 남들과 똑같이 노동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어른. 획일적이고 편향적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가 없고 시험이 없는 학교에서 삶에 대해 배우고 성찰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이 나라의 교육 문제가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1977년 고야스 후미가 뮌헨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에 돌아온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전에 후미가 슈타이너 학교를 다녔던 내용은 『독일의 자존심 발도르프 학교』라는 책에 나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과연 고야스 후미는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77년에 13 혹은 14살이었으니 지금은 50쯤 되었을텐데. 여러 방면으로 검색을 해봐도 이 책의 저자이자 후미의 어머니인 고야스 미치코가 쓴 책들만 나올 뿐 그외의 정보는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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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4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6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남매맘 2014-01-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천재가 오히려 문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보통의 시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인성은 좀 안 되더라도 공부만 잘하고, 천재의 아이큐를 가지고 있으면 성공하리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머리만 비대해지고, 감수성은 작아지게 만드는 교육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감은빛 2014-01-07 18:07   좋아요 0 | URL
재밌죠?
저는 파우스트의 담임인 불프 선생님이 문제아로 지목한 것도 신기했지만,
파우스트의 부모나 주위 학부모들의 반응이 더 황당했어요.
아이가 2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천재라서 위로 받는 부모라니!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한번 읽어보세요.
70년대에 쓰인 책인데,
그로부터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우린 여전히 후진 교육을 받고 있어요.
아니 요즘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진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