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청목 스테디북스 42
이광수 지음 / 청목(청목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최초의 근대장편소설이라는 '무정' 이 작품을 중학생 읽고는 그저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났었다. 이따위 작품이 어째 그리 중요하다고 말들 하는가, 하는. 가령,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형식과 선형과 영채의 삼각관계의 전반부에서 느닷없이(정말 느닷없다!) 민족 계몽을 외치는 부분은 실로 황당하고 어이없었다. 전반부의 삼각관계에서는 개인의 주체성, 자유의지를 주장하다가 삼량진 홍수를 계기로 형식은 시대의 교사이자 영채, 선형의 교사가 되어 민족을 깨우쳐야 한다고 민족을 외쳐대니 얼마나 모순적인가.가이 이럴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고대소설에서 많이 나타나는 우연, 예를 들어 영채가 기생이 되는 계기가 영채가 도움을 받는 집의 부인과 딸이 모두 기생이었다는 데서나, 영채와 병욱과 선형과 형식이 동시에 만나는 마지막 부분의 우연이 그러하고 영채와 병욱의 기차안에서 만남에서 버젓이 있던 병욱의 동생이 그뒤 병욱의 집에서 모습조차 나타나지 않는 장면, 형식이 기생과의 관계를 오해받으면서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던 자신의 제자들이건만 단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학교를 떠나는 점 등도 부자연스럽다. 전근대의 봉건적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형식이 영채의 정절에 매여있는 점은 화가나기는 했지만 오히려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리지지 않고 다채롭게 느껴져 괜찮았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 통치 초인데,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 하에 억압받고 수탈받는 궁핍한 모습을 그리지 않고 '나날이 아름다워지는' 조선으로 설정한 데 작가의 한계랄지, 근대만을 모방하려했던 시대의 한계가 느껴진다. '무정' 정도면 나도 소설가가 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던 터라 이런 작품을 중요하다고 한다는 데 강한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러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무정'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읽으면서, '무정'을 배우면서 왜 '무정'이 중요한 작품인지는 알게 되었다.

이유는 이러하다. 우리 근대문학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무정은 정말 혁신적이다. 요지만 간추려 말하면 우선 문체가 그러하고 주인공이 고아인점(이는 주변부에서 이상으로 설정한 중심부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물 형식을 빌어, 우리의 근대 추구를 읽을 수 있다.)이 그러하다. '무정' 읽기는 곧, 우리 근대문학의 장을 읽는 것과 동시에 우리 근대를 읽어내는 하나의 장치로 해석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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