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선배에게서 이 책을 소개받았다. 2000년 어느 무렵, 함께 지방대학을 졸업하고나서 선배는 서울의 한 회사 3년차 직장인이고, 그리고 나는 지방에서 2년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회 초년병들이다.
추석이 지난 어느 가을,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핑계로 휴가를 온 선배와 오랜만에 대학때 자주 갔던 학교 근처 식당에 들렀다. 그 식당은 밥과 후식을 겸하고 있다. 전에는 '포키스(네번의 키스)'란 간판을 내걸고 있었으나 오랜만에 들러보니 간판이나 외양이 깔끔하게 바뀌어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싸고 양많고 후식까지 먹을 수 있어서 시간 때우기에 안성맞춤인 식당이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고화질" 이라 적힌 텔레비전엔 프로야구가 중계중이었다.
선배가 느닷없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책이야기를 꺼냈다. 헉, 안읽어봤는데... 게다가 나는 야구에도 문외한이 아니던가. 대화에 일조를 하지 못하자 빨리 '삼미' 얘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밑도 끝도 없이 야구라니, 당시 그 이야기를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책을 읽고서야 "삼미"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두어달 뒤에 알라딘을 통해 이 책을 주문했다. 마침 회사일로 지쳐갈 때쯤 가벼운 소설이 구미를 당기던 시점이었다. 책을 받아들었을때, 슈퍼맨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폼을 잡는 동그란 붉은 딱지가 눈길을 끓었다. 언젯적 슈퍼맨인가. 슈퍼맨의 촌스런 복장만큼이나 표지도 촌스럼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책표지가 촌스럽거나 말거나 어쨌든 책은 술술 읽혔다. 처음 반틈은 거의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읽어나갔으니 말이다.
82년이 시작되던 1월, 인천의 어느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12살의 소년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무렵 인천을 연고로 창단된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 주인공은 인천에 함께 사는 또래들과 함께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의 어리이회원이 되어, 삼미 슈퍼스타즈의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는 열정적인 팬들이 되었다. 그러나 삼미는 그리 잘나가는 야구팀이 아니었다. MBC 청룡, 삼성, OB, 롯데 쟈이언츠 ... 등등 많은 프로야구팀 중에서 삼미를 응원한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패배감을 심어줄 수 있도 있는 일. 어쨌든 삼미를 응원하던 친구들이 배신을 때려도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인 조성훈은 끝까지 삼미를 응원한다.
이 책에서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자, '기록의 경기'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삼미의 야구는 주인공의 인생을 이야기해주는 하나의 모티브이자, 상징물로 작용한다. 야구는 '기록의 경기'임에도 최악의 기록을 세웠던 삼미. "프로"가 되지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에서 유년시절을 벗어나면서, 점점 "꼴지"인 삼미를 악으로, 깡으로 치열하게 응원했던 그때의 그 열정과, 삼미 슈퍼스타즈는 잊혀져가는 먼 기억이 되어버린다.
주인공과 친구 조성훈은 어쨌든 일류대라 칭하는 I대에 입학하게 되고, 88년 서울과 과천 사이의 한 철거민들의 집단 거주지에서 철거민들과 함께 한때 몸바쳐 '투쟁'을 벌이는 대학생이 된다. 그것도 잠시... 철학과르 다니던 조성훈이 홀연 일본으로 사라지고, 혼자 남게된 주인공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의 사장인 조르바와, 그리고 알바를 마치고 가다 술에 취한 연상의 여인과 어줍짢은 사랑을 하며 대학생활을 그냥저냥 마감한다.. 그리고 졸얼장이란 걸 따고, 대기업에 취직하는데... 98년 IMF 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 서른 초반의 주인공의 인생은 삼미처럼 낙오자가 되어버린 것일까.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 뒤돌아보지만...
해답은 홀연히 사라졌던 조성훈으 만나면서 찾게 된다. 너무나 오랜동안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이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친구 조성훈은 "치기 힘든 볼은 치지않고, 받기 힘든 공은 받지 않는" 삼미의 야구는 잘못된 것이 아니란 걸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삼미를 응원했던 자신들의 유년시절도 잘못된 것이 아니란 것도.
잘못된 것이라면, 7~80년대 고도성장기, 산업화를 거치면서 자본주의사회는 프로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약육강식의 사회란 걸, 그리고 그러한 논리가 미국에서 이식되어져 왔다는 걸, 조성훈은 프로야구를 들어 이야기한다.
어쨌든 유신정권의 막바지에 태어나, 8-90년대 성장기를 거친 나 역시, 경쟁논리에 이끌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란 데를 다니고, 또 직장을 다니고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인생의 2회말인지, 9회초인지 알 수 없지만 자본의 경쟁논리에 내맡겨져 살고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니 수없이 해봤다. 그리고 나름대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더딘 사회를 위해 일조해보려고 노력중인데, 사회적 시간은 점점더 빨리 흘러가는 듯하다.
이러면서도, 내일 아침 출근시간 늦으면 안되는데... 불끄고 자야하는데, 하는 강박관념이 뇌리를 스며온다,
90년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90년대 안동을 대표할 수 있는 사건은 뭐가 있었을까. 오늘 밤 꿈에서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거꾸로 가는 기차를 타봐도 좋을 일이다. 나의 90년대를 상징할 수 있는 사건이란? 뭐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