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이 모이면 세상이 바뀐다"

극작/연출: 김인경
 극       단: 우금치



 




 

 

 

 

 

 


 



전통 마당극의 단골 등장인물인  삼신 할미가 무대에 등장해, 새로 세상밖으로 나갈 6명의 아이들에게 각각 성별을 결정해줄 찰라, 극이 시작됐다.

의성문화회관에 오랜만에 좋은 재밌는 마당극이 올려졌다. 극단 우금치의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이다. 대전에서 민족극운동을 펼쳐온 우금치. 재작년이던가? 성주 민족극한마당에서 노인문제를 다룬 '쪽빛황혼'을 본 이후 두번째 보는 작품이다. 

아이들은 각각 고추(남자아이)와 사과(?, 여자아이)를 부여받는다. 그 중에 여자 아이가 "나는 여자로 태어나기 싫어요"하며  자신이 차별받으며 살아왔던 전생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며 삼신할미에게 대항한다. 삼신할미는 요즘은 "남녀평등이나 여성상위 시대다 하면서 여자들도 살기 좋아졌다며 다시 한번 여자로 살아보거라"하며 설득하는데...

"이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그것에 대해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얼마전 직장내에서 차별문제로 골머리를 썪이던 내 경우를 생각하면 이번 마당극은 조금이나마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공연이었다. 아마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할머니, 아주머니 관객들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남성관객들도 한번쯤은 생활 깊숙이 스며있는 남성위주의 문화, 성차별적인 문화가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극을 통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극에서는 세쌍의 부부가 등장한다. 한 쌍은 맞벌이 부부, 또다른 한쌍은 중산층의 딸부잣집, 나머지 한쌍은 부인이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겨우  살아가는 부부. 이들 세부부가 일상에서 겪는 사례들을 현대사회에서의 '남녀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밀도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극을 위해 약간은 과장된 면도 있지만 말이다.

극에서 보여주는 남녀차별의 사례는 대충 다섯가지 정도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맞벌이 부부의 아침 출근 장면을 유재길과 이미경을 통해 보여준다. 풍물과 마임, 절제된 대사를 통해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여자들에게 편중되어 있는 가사노동을 표현했다.

황말녀와 그 남편, 그리고 그의 시어머니가 등장하는 중산층의 딸부잣집으로 마당이 바뀌고,아들을 낳기 위해 비상식적인 행위까지 마다 않는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딸만 넷을 낳은 황말녀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성화에 못이겨 온몸을 갖가지 기자도구로 치장하고, 돌부처의 코를 갈아먹고, 아미타삽신교라는 사이비 교주를 찾아 아들 낳기를 빈다.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번 패야한다'?는 통설이 심심찮게 얘기되는 현실을 슈퍼댁과 그 남편을 통해 보여주는데. 남편의 폭력에 의해 무기력해지는 아내들의 의식을 고발한다. 백수건달 백만수, 슈퍼마쳇을 운영하는 아내에게 얹혀살면서도 남편이라는 권위를 이용, 폭행을 일삼는 반면, 슈퍼댁은 여자이기 때문에 맞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고 모든 것을 인내한다.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직장내에서의 남녀차별문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직장내 성차별과 기혼여성에게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압력.

대충 뽑아놓은 남녀차별의 사례가 당하는 여성들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지많은 않은 문제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제도나 문화가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고, 의식이 개혁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하는 여성들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깨닫고, 서로 연대해야 남자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이 극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서로 다른 처지에 속해있어서 서로의 고통을 외면하던 여자들이 동류의식을 확인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뭉치게 된다. 바로 주부 파업으로~ 아내들이 사라지자 남성들이 집안 가사일이며, 아이들 돌보는 문제 등을 떠안게 되는데. 이에 반해 남자들의 연대의식은  거미줄 처럼 너무나 강고하게 얽혀 있다. 한번 틈이 생기면 더 똘똘 뭉쳐진다.  같은 혈연, 지연, 학연... 같은 군대 등등. 


무대위에 권투링이 둘러쳐지고, 결론부분에 도달해 남여 격돌이 벌어진다. 끝까지 버티는 여성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남성.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전선이 그어진 채 목소리를 높이는 남성과 여성. 계속되는 대립과 그 안에서 진행되는 대화로 상대방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는데... 극은 화해모드로 바뀌고 대동놀이로 남성과 여성과의 대화타협으로 끝을 맺는다.  

중간중간 관객들을 끌어들여 객을 극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장면은 마당극이 갖을 수 있는 묘미였다. 이런 현실비판 의식을 극을 통해 보여주는 것 자체가 마당극의 운동성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번 극을 통해 거창하게 여성해방을 얘기하진 말자.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 "남성으로서 이해하고 양보하기"라는 명제라도 각자가 깨닫고 간다면 이번 극은 성공이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나 관객 입장에서 말이다.

* 2003년 12월 20일, 의성문화회관에서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을 봤습니다.
 토요일 오후고, 당직서던 날이라 취재겸 마당극을 보러 갔었는데,  공연장에 들어서니 문화지킴이의 은영과 그의 후배 지민, 그리고 민속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언니(갑자기 이름 생각이 안나네요)가 와있더군요. 의외의 친구들을 만나 재밌게 봤던 공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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