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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이 뻔뻔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지금 그들처럼 뻔뻔하지 않은 것은 단지 그들이 가 진 능력이 내게 없기 때문이라는 점도 대부분의 진실이다. 그들에겐 뻔뻔할 수 있는 능력 이 있지만 나에겐 그럴 능력이 없는 것뿐이다.
울고 싶게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예의 있게 행동하고, 인간미를 풍기고, 사람다움을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사는 사회를 고민하는 이유는, 나에게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깔아 뭉개고 내가 올라가고, 나를 더 높이고, 내 배부르면 망고 땡이라는 식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성숙한 인간이고, 함께 사는 사회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타인에 대한 존중감이 더 높아서가 아니라, 남의 것을 빼앗을 수 있을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무시할 만큼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이유다.
그대가 장차 이 땅의 노블레스가 된다면 스스로 오블리주 할 것인가.
글쎄. 노블레스 하지는 않지만, 오블리주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오긴 했지만, 자신이 없다. 정말 내가 많은 것을 베풀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을 때, 내가 가진 것만큼 오블리주 할 수 있을지는. 노블레스가 되면 나도 지금의 그들처럼 마찬가지로 뻔뻔하지 않을까? 능력있다, 돈 있겠다, 권력 있겠다, 세상이 모두 내 발 앞에 굽신거리는데 내가 굳이 약자의 인권이나, 사회 복지, 나눔, 상호 존중,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에 대해 고민하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을까? 난 그냥 내가 가진 것들을 누리고 살면 되는데.
편한 비루함보다는 불편한 자유 쪽에 서려고 했던 삶의 궤적을 통해 소수에겐 그래도 탄식 보다는 의지가 어울린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홍세화도, 불편한 자유 쪽에 서지 않는 삶이었다면, 굳이 지금 탄식보다는 의지가 어울린다는 주장을 하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다 나처럼 얄팍한 건 아닌데, 좀 더 안락한 삶을 산다고 해서 모두 나처럼 사회에 대한 고민을 저버리는 것은 아닐 텐데, 이런 의문이 죄송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꾸 궁금하기도 하다. 머 눈에는 머만 보인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노블레스라면, 나는 소수적 약자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을 것 같고, 부의 재분배니, 시민의 건강권이니, 기초 생활이니, 기본 인권이니, 행복이니, 사회적 안전망이니, 복지제도니, 타인에 대한 배려니, 사회적 연대감이니, 오블리주니, 머 이 따위 것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게 다 무슨 소리냐. 나는 행복한 걸. 아마 이런 생각 쯤일 테다. 흐흐.
그리고 사실 노블레스 하고 싶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가져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나 같은 약자는 이 사회의 밥이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대접하고 아무렇게나 써먹고 아무 말이나 내뱉고 아니꼬우면 회사를 나가든지, 너 같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는 식. 이런 식의 비참한 대우가 매일 매일 서럽다. 왜 난 널리고 널린 것들 중 하나가 됐고 그렇다고 해서 왜 인간적인 존중을 받지 못하고 부속품 취급을 당하는지. 흔하디 흔한 샐러리맨은 왜 갑자기 아프면 돈을 더 걱정해야 하고 의식주의 기본인 집은 엄두도 못 내고 삶의 질 따위는 생각도 못한 채 회사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내 인생은 언제야 끝이 나는지. 내 인생에도 볕들 날은 없는 건지. 사무실에 가둬 놓는 고문은 그렇게 겪었음에도 왜 적응이 안 되는지.
그래서 매일, 노블레스가 되고 싶다. 노블레스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격증을 따고 시험에 합격하고 학위를 높이는 것.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내 몸값을 올리는, 내 권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제일 손쉬운 방법.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누구나 할 수는 없지만, 하기만 하면 가장 손쉽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그러나 가장 비겁한 유혹. 자주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라도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아무 것도 없다하여 나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서. 그래서 나도 뻔뻔한 얼굴로, 너 따위는 저리 꺼져, 이런 태도로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어서.
이런 책에 이런 서평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하하. 홍세화 씨가 보면 허망해 하겠지? 가진 것이 많지만 개념 없는 망나니로 사는 것과 조금 부족해도 나와 너, 우리, 함께, 휴머니즘, 인간미 등에 대해 고민하고 사는 것 중 어떤 것이 옳은지, 끝끝내 답을 모르겠다.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후자가 가치 있는 삶이지만, 전자로서의 삶도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너무 솔직했나?
어쨌든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름 내가 갖고 있는 노블레스를 통해 나름 오블리주 하자는 생각은 역시나 변함없다.
노블레스 하지 않지만, 오블리주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