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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플로리스트
조은영 지음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야지. 괜히 우리 교육이 어쩌고 저쩌고, 어렸을 때 많은 경험을 해야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그래야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둥, 지금 우리의 현실은 모두 똑같은 꿈만을 꾸고 그 꿈에서 낙오하면 실패자로 낙인 찍힌다는 둥, 그 꿈이라는 것도 기껏해야 고시니, 공무원이니, 대기업이니, 일류대학이니 하는 등의 시시한 것 뿐이라는 둥. 이런, 불쾌한 이야기들을 벌써 이만큼이나 해 버렸네. 하하하. 꼭 이렇게 되더라고. 좋은 이야기만 해야지, 다짐을 해도 꼭 삐딱한 말들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으니.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하는데 이런 건 잘 안 고쳐지나?
자기 꿈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휘리릭,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기니,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니, 하는 등의 감상들도 너무 지루하다. 그 감상들 또한 너무 교과서적이지 않나? 정작 본인은 결단을 내리지도 못하고, 결단은커녕,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기를 읽고 멍하게 책상에 앉아 주인공을 마냥 부러워하는 모습도 이젠 좀 지긋지긋하다. 어쩌자는 건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빡빡한 틀 속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 물론 그것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단연코 그것은 그 틀에서 벗어나서는 생존할 방법이 없도록 살 길을 막아버린 우리 사회와 교육과 정치와 제도 때문이다. 아 이런, 또 삐딱하게 나간다.
그냥 꽃 그림을 많이 봤으니 아름다운 생각만 하자. 다른 사람들처럼 둥글둥글하게 단순하게 행복하게. 공연히 괜한 일에 예민하게 굴지 말고 까닭 없이 힘 빼지 말고 소용 없는 이야기들로 노화를 부추기지 말고. 이렇게 다짐을 하고도 또 나는 어느 자리에서 여전히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침 튀기면서 무언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겠지. 그 누구도 대꾸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그래서 나한테는 꽃이 필요하다.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보기 위해서, 나의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저 예쁜 것을 보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즐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것저것 따지고 꼬치꼬치 캐묻고 반문하고 질문하고 반박하고 싸우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꽃이 주는 차분함, 향기로움, 화려함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찾기 위해서. 길어야 열흘이면 시들어 버리는 꽃이지만 그 열흘을 위해 쓸데없이 정성스레 꽃을 꼽는 풍요로운 재미를 알아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짓을 왜하냐고 타박을 했을 텐데.
아, 그래도 저자가 중간중간 본인이 너무 힘들었다며 징징거리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리고 꽃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 어떤 일도 스스로, 독립적으로 해 본 적이 없다는 듯 별 것 아닌 경험을 대단한 성과인 양 써내려 간 부분에서도 '얘는 그럼 이 전에는 완전 애기처럼 살았던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불편했다. 본인의 인생을 설계한 적도, 어떤 시련을 극복해 본 경험도, 무언가에 도전을 해 실패든 성공이든 잘 받아들인 적도 없는 한심한 사람이 그려져서. 앗, 자꾸...
그만하고, 이번 주는 꽃병이랑 꽃을 사러 가는 쓸데없는 짓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