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주의 사생활 - 조선 왕실의 은밀한 이야기
최향미 지음 / 북성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경혜공주는 숙부에 의해 동생과 남편을 잃고 귀양을 가게 되고 노비가 되고 승려가 돼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단다. 성종 딸 휘숙옹주는 남편 임승재가 그렇게도 따르던 연산군에게 농락을 당했고 정신옹주는 후처의 딸이라고 혼담에서 퇴짜를 맞았단다. 중종 딸 효종옹주는 난봉꾼 조의정에게 시집을 가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속을 끓이고 효종 딸 의순공주는 화냥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던가.

 

 결국은 책 한 권 분량으로 요약되는 그녀들의 삶. 책 한 권도 안 되고 각각 한 챕터로 요약되는 간략함.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란 로또 1등에 연속해서 10번 당첨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겠지?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던 왕의 딸, 공주였대도 결국 후세에는 단 몇 줄로 기억될 뿐이다. 그녀들의 인생은 지독히도 파란만장했는데. 궁에 감금 당하기도 하고, 피비린내 진동하는 소용돌이에서 몇 번씩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는데. 그나마 책으로 기억되는 공주는 몇 안 되고 이름 석 자 깡그리 잊혀진 공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 두고두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기억으로 옮겨갈 수 있게.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게. 힘든 일,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을 그래도 꿋꿋이 이기면서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하찮은 먼지처럼 조그만 자국도 남기지 못하고 후, 날아가 버리면 조금은 허탈하니까.

 

 이리 생각하다가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굴곡진 인생에서 흘려야 할 눈물이 많겠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야말로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귀여운 전환.

 

 어떻게 사는 것이 매 순간 순간 행복하게 사는 걸까. 마냥 단순하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도 행복은 아닐테고, 그렇다고 매번 진지한 얼굴로 분위기를 흐려놓는 것도 삶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 같다. 모든 일에 딴지를 거는 것도 피곤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슬렁슬렁 넘어가는 것도 비겁하다.

 

 저녁 무렵,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때쯤, 달콤한 풀냄새를 맡으며 하는 산책. 어두운 실루엣들의 느긋한 움직임, 방정맞게 뛰노는 강아지.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 약간 긴장되게 만드는 컴컴한 산 능성이. 깜박이며 켜지는 주황빛 전등과 삘링 삘링 다양한 풀벌레 소리들. 내가 사랑하는 소리,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모습들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보는 화창한 날씨. 당장 산책하러 갈 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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