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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12년 5월
평점 :
가난, 이라는 단어는 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개인의 의지나 능력이나 노력 정도에 따라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시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가난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본보기나 롤 모델로 추앙을 받기도 한다. 그런 시련이 있어야 인생이 좀 더 풍성해 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열심히만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마구마구 끓어 오른다. 시퍼런 청춘이 펄떡 펄떡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이미지.
빈민촌, 이라는 말은 왠지 더럽고 파리가 꼬이고 꼬질꼬질하고 흙먼지로 잔뜩 뒤덮여 있는 느낌이다. 이건 극복해 내고 말고가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냄새가 많이 날 것 같아 다가가고 싶지 않은 생각만 들 뿐이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한 이미지랄까.
가난과 빈민촌이 실상 크게 다르지 않은데 두 단어가 주는 어감은 어찌 이리 다른지. 때때로 우리들은 가혹한 현실을 너무나 쉽게 한 단어로 미화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철거라든지, 재개발 같은 단어는 더욱더 흉물스러운 실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폐허가 된 건물 외벽에 시뻘겋게 칠해진 X표들. 군데 군데 허물어진 담장하며, 쌓여져 있는 쓰레기 더미들. 게다가 철거 반대 시위라든지 용산 참사 등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힘겨워진다. 우리의 삶은 왜 이리 처절해야 하는지.
죽음까지도 불사하지 않는, 생존권을 위한 투쟁 앞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지. 개인의 잘못인가, 사회의 잘못인가 잘잘못을 따지기는 너무 진부하다. 이야기가 아닌 생생한 피비린내 나는 현실 앞에서, 숨 쉬고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 속에서, 벗어나고자 벗어나고자 아무리 발버둥쳐도 도망칠 수 없는 단단한 굴레 밑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책장을 넘기면서 가끔은 가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한 번 겪어보지도 못하고 지나치다 그 흔적조차 경험해 보지 못한 교수와 연구원들의 무지함이 불편하기도 했다. 그들의 방에서는 가난의 냄새가 난다는 둥, 왜 그들은 맨날 싸우기만 하고 술이나 마시고 다니면서 가난을 이겨낼 생각은 하지 못하냐는 둥, 왜 그들의 범죄를 짓고 다니냐는 둥, 이렇게 좁은 방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도 못했다는 식의 이야기들. 그들의 삶이 마치 대단한 발견이나 엄청난 깨달음이나 되는 것처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주고 받는 대화들. 곱게만 자란 교수와 연구원들이 생살 냄새가 진동하는 그들의 삶을 학문의 대상으로 관찰하는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교수와 연구원을 비판할 자격이 나에게도 없지 않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새로운 대책, 이렇게 하면 모두 잘 살 수 있다는 사기꾼 같은 명쾌한 해결책, 내가 돈을 많이 벌어 이들을 구제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영웅주의 말고, 실체도 없고 실행도 없는 가식적인 사명감도 말고, 누가누가 잘했네 못했네 라는 쓸데없는 지적질들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나 누군가의 생 앞에서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