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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윈터
대프니 캘로테이 지음, 이진 옮김 / 시작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보봐리 부인. 뜬금없는, 뚱딴지 같은 연결고리라고? 그렇지. 작가가 같은 것도 아니고 시대 배경이 같은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두 작가가 동일한 선 위에서 평가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생각해도 러시안 윈터에서 보봐리 부인을 논하는 것이 생뚱맞긴 하다.
니나가 빅토르와 베라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니나의 인생은, 이전에는 결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빅토르와의 사랑과 빅토르로부터 받았던 따뜻함, 그와 함께 있었던 행복했던 시간, 베라와의 어렸을 적 추억, 재회의 기쁨, 빅토르와 베라와 거쉬와 함께 차를 마시며 깔깔대고 웃었던, 단란한 오후의 한 때. 다 스러져 버렸다. 망명 이후 니나의 명성은 높아졌을지 모르나, 니나는 발레리나의 대모가 됐을지 모르나, 함께 했던 그들과의 사랑과 우정은, 버려졌다. 니나는 외로워졌다.
그래서 사랑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고 참아주는 거고 인내하는 거고 믿어주는 거고 신뢰하는 거고 용서해야 하는 거고 내가 더 많이 이해해 줘야 되는 거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본인부터 더 성숙해지고 더 깊은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들...
‘그래도 사랑해 주세요.’
보봐리 부인을 읽고 내가 쓴 서평 제목이다. 보봐리 부인은 사치와 허영을 일삼느라 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남편의 소중함을 모르고 바람을 피다 끝내 자살을 하고 마는 어리석은 여성이었다. 니나는 보봐리 부인처럼 남자의 사랑만을 바라는 전업주부는 아니었지만, 괜히 남편과 친구 사이를 의심해 스스로 자신을 고독한 처지의 할머니로 만들어 버렸다. 상대방의 진심을 믿어줬으면, 상대방의 사랑을 헤아릴 혜안이 있었다면, 니나가 그렇게 미성숙하지 않았다면 니나는 평생 사랑하는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고 즐거운 토론을 나누며 그렇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행복을 깨뜨려 버리는 어리석음이란.
그래도 보봐리 부인도, 니나도 사랑 받았으면 한다. 그녀들을 보며 ‘우리는 저래서는 안 되지.’, ‘그래서 사랑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받는 거지.’, ‘우리도 좀 더 성숙해져야지.’ 이렇게 교훈 삼고 위로 받고 그들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부족해도, 미성숙해도, 어리석어도, 유치하고, 예민하고, 의심이 많고, 속이 좁아도, 그래도 그녀들도 누군가의, 한 남자의, 주변 친구들의, 세상 사람들의,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아기였을 때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부터 부모님의,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아기가 예의가 바르고, 사리 판단이 현명하며, 신중하고, 조신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며, 배려심이 많고,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는 아량이 있고, 인내심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기를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잠시, 곧 아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미움을 받고, 사랑을 받는지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되면 주변의 평가는 더욱 냉혹해진다. 절대적인 사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미소를 지어주지 않는다. 성과를 내야 하고, 보다 성숙하게 행동해야 하고, 어른답게 행동해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참아줘야 한다. 보봐리 부인처럼 허영에 빠져있다든가, 니나처럼 성실한 남편을 의심한다거나 하면 더 이상 보봐리 부인과 니나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사람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사회의 교훈이 될 뿐.
그래서 어른이 되는 일은 슬프고 잔인하고 쓸쓸한가 보다. 떼를 쓰고 악을 쓰며 울 곳이 없어서. 제멋대로 뛰어다니고 생떼를 부려도 귀엽다고 안아줄 품이 없으니. 어느 곳에 머리를 두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