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레시피 - 39 delicious stories & living recipes
황경신 지음, 스노우캣 그림 / 모요사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경신이 죽을 만큼 좋다고 표현한 달걀말이.

나에게 달걀말이는... 지긋지긋함, 이다.

 

어렸을 때, 그 때는 아직 학교에서 급식이 실시되지 않았던 때다. 그래서 무상급식이다 뭐다,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됐고, 학생들의 식사를 담보 삼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볼썽사나운 일도 보지 않아도 됐고, 무상급식에 맞서 온 몸으로 저항하다 서울시장이 임기 내에 사퇴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지금보다는 세상이 훨씬 작고 단순하고 느렸던 그 때. 학교에서 점심을 주지 않으니 당연히 나는 매일 같이 큰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다.

 

세상은 작고 단순하고 느렸는지 모르지만, 우리 엄마의 세계는 너무 넓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벅찼다. 드센 말처럼 쿵쿵 뛰어다니는 우리 셋을 휘어잡아야 했고, 한창 쿵쾅대다 배고프다며 악악거리는 우리들에게 밥을 해 먹어야 했고, 잠시라도 가만있지 않는 우리들 때문에 정신없이 어질러진 집안을 박박 닦아야 했고, 지옥의 지하철을 타고 꾸벅꾸벅 졸면서 아빠 사무실에 출근까지 해야 했다.

 

지옥만큼이나 정신없는 하루다 보니, 내 도시락 반찬이 다양할 리가 없었다. 주로, 아니 거의 매일 콩자반 아니면 계란말이 아니면 오징어 말린 채 무침. 거의 이 정도였다. 가끔 장조림 계란을 싸주실 때도 있었지만 위 세 가지 반찬이 거의 번갈아 가며 내 도시락에 담겼다. 중학교 3, 고등학교 3, 초등학교 한 3년 쯤. 계란말이라면 치가 떨린다. 그 비릿한 냄새가 혀 끝에 닿으면 속이 다 뒤집히는 것 같다. 가뜩이나 입도 짧은데, 계란말이만 몇 년 동안 주구장창 먹었으니. 토할 만큼 지긋지긋해서 대학교를 입학해서도,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계란말이를 잘 입에 담지 않았다.

 

같은 반찬을 계속 먹어서 지겨웠을 뿐 아니라, 난 그 시절도 몸서리 쳐질 만큼 지긋지긋했다. 당시 느꼈던 답답함과 지루함. 내가 냈던 짜증과 신경질.

 

그래서 내게 달걀말이는 지긋지긋함이고 벗어나고픈 현실이었다.

 

달걀말이가 먹고 싶다. 이제는 엄마가 싸 주는 도시락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다. 각자 힘이 넘쳤던 그 때, 서로 부둥켜 안아 버티던 그 때,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었던 그 때, 피곤한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키며 그래도 꾸역꾸역 새벽에 부엌에서 부쳐 주었던 그 때. 잘 먹는 걸 최고로 여기며 반찬 없이도 아무 거나 입에 미어지게 디밀어 아구아구 먹었던 그 때. 으르렁 거리며 싸워도 곧 헤헤 거리며 거리낌 없이 뒹굴던 그 때. 엄마 아빠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던 그 때. 서로가 없으면 슬퍼서 어쩌나, 괜히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던 그 때. 지금보다 더 순박하고 깨끗하고 온전했던 그 때. 그 때의 달걀말이를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