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의 결 - 뷰티 다큐
고현정 지음, 조애경 감수 / 중앙M&B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오늘 몸이 조금 안 좋아서 그런지, 서평 쓰기가 어렵다. 그리 어려운 책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쓸 내용들도 어느 정도 정리해 놓았는데 이렇게 썼다가 저렇게 썼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 지워버렸다. 오전에 무슨 서비스 교육인지 나발인지를 듣느라 완전 지겹고 가당치도 않은 말들을 주저리 주저리 들었더니 진이 다 빠져 버렸나 보다. 점심도 거의 1시에 겨우 도시락 따위로 떼우고. 아침도 못 먹었는데 말이다. 강사가 겨우 한다는 소리는 아이 컨택을 하고 안녕하십니까를 천천히 말하고 서서히 허리를 굽히고 다시 일어나서 아이 컨택. 참 나. 그렇게 인사하면서 일하다가는 일 빨리 하라고 욕이나 먹기 십상이다. 암튼, 그래서 오늘 오후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다. 조금 전 배가 고파서 먹은 베이글도 체한 것 같고.. 에고고..

 

서비스 교육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고객은 왕이고 무조건 옳고 100을 잘해도 1을 못하면 전부를 못한 거라는 둥, 고객이 있기에 너희가 월급을 받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은, 결국은 벨 꼬이고 드럽고 치사해도 먹고 살려면 닥치고 남 비위 제대로 맞추라는 거구나.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이 결국은 인간을 회사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앉아 있는 훈련, 규율에 잔말 없이 순종하는 훈련을 하는 것처럼 이 교육도 그런 식이구나. 돈을 받으면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일도 참아야 하는구나. 그게 옳은가? 그러다가, 뭐 각자 자리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배운다고 좋게 생각하는 게 좋은 거지 뭐. 틀린 말도 아니니 열심히 배워보자,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래도, 역시 갑(甲)으로 살아야 돼, 라는 생각.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고 배우는 확실히, 갑이다. 고 배우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조금 덥지 않아요? 라는 고 배우의 아무렇지도 않은 한 마디에 여기저기서 창문을 열지, 히터를 끌지, 조명을 끌지 여기저기서 고 배우의 눈치를 살피며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유난히 까칠하고, 대하기가 어렵고, 예민하다는 평도 있다. 까칠하고 예민하게 굴어도 되는 위치에 있으니 얼마나 좋을꼬. 실력도 있고 예쁘고 경력도 있고 어느 정도 짠빱도 있고 영향력이 있어 아무도 그에게 함부로 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러면 지는 거라는데도 힝, 부럽다.



그러나 아무리 슈퍼 갑인 그녀라도, 그녀에게도 힘든 날도 있고 아픈 날도 있음이 확실하다. 마냥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는 것도 아닐 테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자잘한 것들을 품어주고 더욱더 냉철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하니 이런 대접을 받게 된 것일 테다. 그래서, 새삼 고 배우가 대단해 보인다. 예전에는 사실, 여배우를 무시하는 마음을 조금 갖고 있기도 했다. 별 생각도 없는 것들이 얼굴만 믿고 나와서 깝치는 꼴들을 보기 싫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아마 많은 것을 가진 그들이 사실은 조금 부럽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즘 보면 여배우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여자이기 때문에, 그것도 예쁜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비와 모멸감과 치욕과 상처들. 비껴가지 않는 세월 앞에 내뱉어야 했던 깊은 한숨과 자괴감. 내가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일들을, 내가 상상도 못하는 시련들을 헤치면서 그들은 또래들 보다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녀들을 만나고 싶다. 만나서 조언을 들으면서 그들의 아량과 단단함을 배우고 싶다. 여배우 선배를 알아 언니 삼아 지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텐데. 엥엥 거리는 내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을 텐데. 사람 만나고 친구 사귀는 걸 귀찮아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새삼 사람이 욕심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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