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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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리카의 펭귄이 남극에서 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연히 빙산에서 놀던 펭귄 커플이 깜빡 잠든 사이, 빙산이 남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멀리까지 흘러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떠밀려온 빙산에서 내려 헤엄을 친다는게 그만 방향을 잘못 잡아 아프리카에 도달하고 만 겁니다. 그런데 이거 웬걸, 아프리카는 온통 뜨거운 곳인 줄만 알았는데 제법 살만한 해변이잖아? 하고 놀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연히 아프리카에 오게 된 펭귄 커플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고 그렇게 아담과 이브가 되어 볼더스비치의 아프리카 펭귄 가족을 이뤘을 거라 생각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은 때로 행운을 가져다줍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간혹 길을 좀 잃어 주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힘으로는 다른 길로 발을 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길로부터 벗어나는 게 두려운 것입니다...

당신과 만나 길을 잃고 새로운 해변에 도달한 다음 사랑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길을, 잃었다. 아직 새로운 아프리카에 도착하지는 못했다. 그건 확실한 사실이다. 안락한 둥지를 틀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자신만의 아프리카를 찾기 위해 바다를 헤엄쳤던 펭귄처럼, 지금 나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가 보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높은 파도는 무서운 상황. 언제쯤 나의 아프리카에 도달할지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 내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 뿐.  

우연히 길을 잃어 또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는 것은 좋은데, 그 과정은 만만치가 않다. 물은 차갑고 배는 고프고 체온은 자꾸 떨어지고, 엄마도 보고 싶고 친구도 보고 싶고 편안한 흔들의자에 앉아 마음껏 게으름도 못 피우니. 펭귄이 아프리카를 찾아냈던 과정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작고 어린 펭귄이 힘겨운 일을 겪었을 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하다. 펭귄은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기엔 너무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데. 펭귄은 그저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마음껏 다른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살아도 되었을 텐데.

그래도 웃어야 하는 거겠지? 목적지를 잃은 것이 명확하니. 지금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전혀 모르니. 이제 난 어디든 갈 수 있고, 새로운 미지의 땅에 곧 다다를 테니. 모든 것이 새로운 가능성.  

설렘 반, 두려움 반. 펭귄은 오늘도 힘껏 두 팔을 저어 봅니다.  

 p.s. 내용은 무척 심각한데, 바다에 어리둥절, 두둥실 떠 있는 펭귄을 상상하니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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