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에게 - 성공한 예술가들이 보내는 23통의 편지
아트온페이퍼 편집부 엮음, 정아롱 옮김 / 아트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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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혼자임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시간.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세상이 고요해지기 시작하는 문이 열린다. 지지고 볶고 서로를 할퀴고 상대를 향해 눈을 흘기며 상대를 짓밟으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비규환인 낮과는 달리 밤에는 모든 것들이 깊고도 깊은 잠에 빠진다. 소란스럽고 어지러웠던 것들이 차분해지는, 같은 곳이지만 다른 장면이 연출되는 공간. 또 다른 우주, . 밤은 전투장인 낮과는 다른 또 다른 지구다.

  이 밤이 아쉬워 쏟아지는 잠을 참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통약으로 달래며 버티는 나. 낮과는 다른 밤의 나. 나 역시 또 다른 우주요, 또 다른 지구, 또 다른 역사다.

 예술가의 기질을 가졌으나 예술가의 재능까지는 미처 챙기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나온 나는 매일 밤 반쪽짜리 예술가의 영혼으로 흐느껴 운다. 나머지 반쪽의 결핍이 사무치게 서러워서. 세상이 규정한 정상적인 직장생활과 안정감을 필요로 하나, 그 구속감은 견디지 못하는 모순된 두 개의 자아. 나는 밤 12시가 지나면 변신하는 신데렐라, 보름달이 뜨면 변하는 늑대인간, 해가 지면 괴물로 변신해야 하는 피오나 공주다.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모순된 두 개의 욕망이 나는 괴롭힌다. 이 밤, 폭우가 쏟아져 건물이 무너지고 차가 부서지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는 이 밤, 나의 마음도 지금의 폭우처럼 휘몰아치고 사납다. 자꾸 사고를 일으킨다.

그냥 작업을 하세요. 그리고 당신의 재능이 발견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엉뚱한 짓을 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익숙한 것과 과거에 유효했던 것을 넘어 아무 데도 갈 수 없습니다.
해답은 작업입니다.
당신의 작업을 위해 매일 시간을 내십시오.
재능과 집념이 결합.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십시오.

 엄격하고 가혹하지만 가장 진실 된 조언들. 다른 방법으론 통하지 않음을 나도, 그들도, 알고 있다. 현재를 바꾸고 싶어 하지만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나임을 나도 뼈가 저릴 만큼이나 똑똑히 알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어느 날 덜컥!’ 이란 게 내 인생에 한 번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재미삼아 해 봤는데 덜컥 어떤 시험에 붙어서 그 날 이후로 상상도 못한 인생을 살게 됐다거나, 친구 따라 면접장에 가서 온 김에 오디션이나 보자고 면접을 봤는데 친구는 안 되고 자기만 됐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들. 나에게도 이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텐데. 무엇이든 노력하고 열심을 내지 않으면 내 손에 쥘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는. 애를 써야했고 연습을 해야 했고 암기해야 하고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 밤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코피가 날 때까지, 잠이 부족해 머리가 띵하도록, 그렇게 내가 하얗게 지새웠던 나의 밤들. 그 밤이 내 힘의 원천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어느 밤은 뜨거운 코피 없이도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어떤 밤들은 좀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행운으로 가득 찬 마술 같은 밤들
 

 인내와 독기와 열정과 지독함. 내 트레이드 마크들. 지금도 그런가,는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버리고 싶은, 내게 달린 표딱지들. 그러나 이것마저 버리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차마 선뜻 잘라버리지 못하는 단어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버리지 않았으나 이미 나에게는 없는 말들. 하는 수 없이 다시 주어 와 달아야 할 것 같은 슬픈 나의 표식들. 수많은 밤을 함께 했던 나의 신념들. 그 밤들.

 밤은 또 다른 지구요, 우주다. 나의 낮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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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