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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 번째 걷기 여행 -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다독이는
김연미 지음 / 나무수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래, 여행을 좀 다니자, 는 생각으로 덜컥, 책을 구입했다. 책을 사 놓고 보니, 이런. 이미 비슷한 책들이 몇 권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호젓한 여행지니, 아름다운 우리나라 섬이니, 하는 뭐 이런 제목의 비슷비슷한 책들. 그랬구나... 벌써 여행 책을 구입했었구나... 그런데 한 번도 책에 소개된 곳을 가본 적이 없구나... 허망함.
여행? 내가 여행을 좋아하나? 여행은 별로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워낙 집 떠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1박 2일, 길어야 2박 3일 여행은 견딜만 하지만 이보다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 피곤해 진다. 짐도 많이 싸가야 하고, 배낭 속 눅진눅진한 옷의 느낌도 싫고,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고, 집 떠나면 고생이다. 아니, 여행을 많이 안 해 봐서. 그래서 여행의 환희를 내가 몰라서, 이런 소리 하는 지도 모르겠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거니까. 아무튼 쾌적하고 깨끗한 여행은 좋아하지만 꾀죄죄한 숙소에서 땀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여행은 사양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해보고 싶은 일' 이라는 나의 목록에 '언제나' 올라가 있다. 막상 여행 배낭을 꾸리지는 않으면서, 늘 여행을 꿈꾸다니. 모처럼 쉴 수 있는 토요일, 새벽 같이 일어나 기차에 몸을 싣기엔 난 너무 게으르다. 친구와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혼자 여행을 떠나자니 위험한 것 같고. 이런 저럼 핑계들 때문에 선뜻 여행길을 나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어지는 여행에 대한 갈망.
그건 아마 '여행' 자체 보다는 자유롭게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한 그 상황, 에 대한 목마름일 것이다. 언제든, 내가 원하는 때, 내 마음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자유.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나를 움직일 수 있을 만한 홀가분함. 일찍 일어나고 싶으면 일찍 일어나 가방을 둘러메고, 늦은 밤 떠나고 싶다면 다음날 출근 따위를 걱정하지 않고 당장 방문을 박차고 떠날 수 있을 정도의 여유. 내가 소망하는 것은 이런 것들일 것이다. 여행을 가든 안 가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내 멋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상황. 그러려면 경제적인 요건도 충족돼야 하고, 직업적인 면에서도 많은 조건들이 채워져야 한다.
그런 날. 요즘은 이런 날들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산다. 언젠가는 나를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나 몰라라 하고, 얽매어져 있는 것들을 모두 풀어버리고, 그렇게 홀가분히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그런 날. 기약없고, 정말 그런 날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내 생애 언제쯤은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지난한 하루하루를 다가올 꿈을 위해 착실히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루가 너무 지겨워 박제된 인형처럼 창백한 나를 보며 한숨을 짓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악착같이 그 날을 위해 애써보기도 한다. 이런 소박한 날들이 쌓이면 언젠간 황홀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날이 오겠지. 마음은 이미 바빠, 어느 한적한 시골 여행길을 잰 걸음으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