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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평점 :
흠. 이런 내용이라면 할 말이 무지무지 많다. 나를 아는 누군가는 너에게는 이미 필요 없는 책, 이라고 말했을 만큼. 이에 관해서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들이 지금도 충분히 넘쳐나기 때문에. 많은 말들과 많은 주장들이 나의 입 속을 맴돌고 맴돌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사회적 약자다, 아니다 이는 여성이 갖고 있는 열등감이다에서부터 시작해, 왜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아무렇게나 자른 단발머리에 큼직한 점퍼를 입고 있는지, 여성의 나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잣대가 얼마나 엄격한지, 왜 남성의 획일적인 시각으로 인해 여성의 아름다움이 판단되고 더욱이 한 여성의 성격이 유순한지 여부는 왜 남성의 입맛에 잘 맞는지 아닌지로 결정이 되는지. 왜 여성은 남성들이 획일적으로 찍어놓은 틀안에 우겨넣어 져야 하는지. 속사포 같이 쏟아내는 내 말들에 정신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 흠. 이 정도야 뭐 언제든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할까, 하다가. 문득 책이 나온 인물들 하나 하나에 눈길이 갔다. 골드미스네, 노처녀네, 라며 이들을 무생물 덩어리로 취급하는 그런 말들 말고, 개인 하나하나를 보게 됐다.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들. 외로웠던 사람들. 누군가 한 명으로부터는 이해 받고 싶었던 사람들. 따뜻한 온기를 주고 받으며 시린 마음을 달래고 싶었던 사람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부대끼는 사회생활 속에서 아득바득 버티느라 독해보이지만 실상 속은 너무도 여려서 연약한 사람들. 시린 한 손을 누군가와 살며시 잡고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길을 걷고 싶었던 사람들. 연애를 통해 따스함을 느끼고 싶어했던 이들은 오히려 연애를 통해 더욱더 너덜너덜해져 급기야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야 말았다. 너무 여리고 약해서 누군가가 보듬어줘야 하는 이들은 그 누군가로부터 악랄하게 이용만 당하고 내쳐졌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연애에 있어 여성은 손해만 보는 피해자, 라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순진하게 사랑을 했고 그 순진함 때문에 상처를 받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는 거다.
그래서, 연애도 배워야 한다. 연애에 있어 순진함이란, 장점이 아니다. 이는 무지함이고 그 무지함을 이용해 나에게 상처를 줄 사람들은 도처에 깔려있다. 물론 연애를 무슨 수학공식처럼 이론적으로 배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연애란 무엇인지, 어떤 자세로 연애에 임해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연애는 무엇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한 번쯤 고민해보고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연애 경험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과, 전혀 연애에 관해 무지한 것과의 차이도 클 것이고.
내 연애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후배들이나 혹은 내 딸아이에게 연애를 가르쳐야 하는데 뭘 가르치지? 잠시 생각을 해보면....
1. 사람보는 안목을 기를 것.
: 자기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사랑을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연애를 하다보면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고 내 주장을 굽히고 양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방이 충분히 나로부터 그럴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내가 해 주는 배려를 감사히 받고 이를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인지. 그래서 나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할 줄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그래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지 아닌지. 안목을 기른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의외로 연애를 하는데 있어 개차반인 사람들이 많으므로 상대방의 수준을 선별해 내는 눈을 기를 것.
2. 자신의 감정에서 허우적거리지 말 것.
: 연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으로 골인을 하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보다는 헤어질 확률이 더 높다. 자신의 연애 중 대부분은 이별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확실함.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이별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함부로 이별을 결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단 헤어지기로 결정을 했다면 더 이상 자신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아야 한다. 이별에 대한 판단은 신중하게 할 것이지만,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이별을 대처해야 할 것이다.
3. 널린 게 남자
: 정말 세상에 널린 게 남자다. 얘 아니면 재를 골라 잡으면 되고, 얘는 이래서 좋고 쟤는 저래서 좋고, 가지각색 다양한 모습들의 남자들이 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본인과 제일 잘 맞는지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그리고 이별하기 힘들다 싶으면 또 다른 사랑을 찾으면서 실연의 아픔을 이기면 된다. 무책임하게 양다리를 걸친다거나, 재미삼아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되, 자신에게 무례한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정리하고 인격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을 만나면 된다는 뜻이다.
4. 까다롭게 굴 것.
: 괜히 상대방을 배려한답시고 무던하게 구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럽게 굴면 안 되겠지만 적당히 까다로워야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해야만 대접을 받는지 조금 슬프긴 하지만, 너무 편한 상대에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듯하다. 먹는 거, 입는 거, 깔끔떠는 것. 이런 것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무례한 언행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해야 다른 사람들도 본인에게 깍듯하게 대한다. 과한 예민함과 스스로에 대한 존중 사이에서 적절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은 말만큼 쉽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
이 밖에도 배워야 할 것들, 가르쳐 줘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엄마가 되면 내 딸에게 연애 수업을 잘 해줄 수 있을까? 어린 내 딸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도록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처음 연애를 내딛는 내 딸아이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도록 옆에서 지혜롭게 조언해 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참 좋은 엄마가 될 텐데. 연애 수업은 누군가로부터 받아 본 적도 없고, 주변에서도 연애수업에 대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참 낯선 모습이다. 그래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어떻게 조언을 해 줘야 할지 잘 모르겠는 정도가 아니라, 감도 잡히지 않는다. 연애 수업의 풍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정말 중요한 것들인데 우리 인생의 선배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우리들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미리 조금이나마 귀띔을 해줬다면 맨 땅에 헤딩하면서 여기저기 쓸리고 까지고 멍들이 않을 텐데. 누구나 하는 연애라면 누구나 연애에 관한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가 없다면 누구나 백발 백중 쓰라린 경험을 해야 할 텐데, 왜 아무도 이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은 걸까.
그래서 언니들이 해 주는 이야기가 고마웠다. 10년 전에 해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면 좀 더 멋진 연애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더 많이 아팠고 힘들었고 그래서 후회되는 것이 많은 20대. 비단 연애 뿐이랴. 모든 것이 그랬지...
요즘 많이 드는 생각. 나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들도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부질없는 소망. 통상의 여자들(통상, 이라는 정의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난도질 당했던 이 책의 언니들도, 그리고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는 20살 병아리들도, 아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