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대로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이 문구가 작품의 백미인 듯하다. 선뜻 저질러 버리지는 않는, 그러나 그러기에 더 아슬아슬한 이 둘의 아찔한 사랑. 위 문장이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절대 직설적으로 내뱉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은유적이었던 작가의 선율이 묘한 흥분감을 자아낸다. 시각적인 작가의 목소리가 하얀 달빛 아래, 화사하게 빛나는 목련꽃을 영상으로 창조한다.

그러나, 나는 '백미이다.'가 아닌, '백미인 듯하다.'라고 표현했다. 이렇듯 애매하고 자신없는 말투를 사용한 이유는, 책을 읽을 때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조심스러운 작품의 매력을, 책을 읽을 때는 알아채지 못했단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은 내내 무슨 소리지? 왜 이러는 거야? 왜 자꾸 피아노를 강요하지? 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결국 책장을 다 덮고난 후에도, 이게 뭔소리냐.... 한숨만 내쉬었다. 오히려 해석을 읽고, 관련 서평을 읽고서야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내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행간을 꿰뚫어보는 심안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작가가 글을 너무 애매하게 풀어나갔는지, 독자가 뚜렷이 파악하기 어려운 글이 훌륭한 글인지 아닌지, 이런 식의 고민은 여기서 하지 않기로 한다. 위와 같은 논란을 모두 잠식시킬 만큼, 작가의 필력은 흡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필체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가 당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어 일어나는 호기심 때문인지, 작품에 대한 나의 몰입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적어도 작가는 독자를 끌어들이는데는 성공한 셈이다.

아슬아슬, 끊어질 듯 이어지고,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자신의 욕망을 이어가는 안 데바레드. 신경질 날 정도로 절제되고 폭발할 만큼 감질나는 안 데바레드의 일탈 욕구. 아찔한 향에 취해 홀린 듯 그녀는 매일 쇼뱅을 찾아가고, 나도 그녀를 따라 그녀의 은밀한 밀애에 묘하게 빠져든다. 그리고 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 흠뻑, 마음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