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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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작가의 얼굴을 닮는다. 작가가 순진한 얼굴이면 글도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하게 된다. 작가의 얼굴에 음습한 먹구름이 끼어 있다면 그의 글 역시, 우울하고 음산해 진다. 실제의 예를 살펴보면, 얼마 전 영면한 고 박완서 작가의 글과, 검은 혀를 빼물고 요절했던 기형도 시인의 글 사이의 차이 정도 되겠다.


김승옥의 글은 고 박완서 선생님 쪽이라기 보다는 기형도 시인 쪽에 가깝다. 약간은 우울하기도 하고 체념한 듯 하지만, 시니컬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날카로움. 그의 글을 읽다보면 현실에 대한 냉소를 마음껏 내뱉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고독한, 쓸쓸한 사나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글은 공지영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남성성을 갖고 있고, 신경숙이 모방할 수 없는 건조함을 뼛속 깊이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 글은 작가의 얼굴을, 작가의 성격을 고스란히 빼닯는다.


내 글은 어떨까? 남들에게 글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타인의 평가는 잘 모르겠고. 내가 바라는 나의 글은, 음... 박완서 보다는 기형도 쪽이었으면 좋겠다. 어둡고 우울하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쓸쓸하고 건조한. 왠지 담배 한 개비와 소주 한 잔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공지영 작가나 정이현 작가가 기형도 시인의 글을 쓸 수 없듯이, 나도 김승옥 분위기의 글을 쓸 수는 없을 게다. 글을 만드는 내 성격은 그들의 것과는 사뭇 다르니까.


그래도 김승옥의 글 중 닮고 싶은 게 있다면, 솔직함과 적나라함. 자신의 시선과 판단을 가감 없이 내뱉어 버리는 당당함. 내 글이 김승옥의 뻔뻔함은 닮았으면 한다.


요즘 심리 코칭을 받고 있다. 심리 상담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코칭'이라 함은 상담이나 컨설팅, 심리 치료에 미치는 것은 아니고, 그 전 단계 수준의 전문가가 조언을 해주는 정도의 컨설팅이라고 한다. 마치, 의사는 아니고 헬스 트레이너가 건강을 위해 옆에서 도움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내 코칭의 주제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거다. '연극을 하고 싶다.'라는 말은 대학로나 충무로 같은 무대에서 연극 배우를 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가면을 쓴 채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뜻이다. 좋고 싫음이 얼굴에 명확히 드러나는 편이라 사회생활을 하는데 내 카드는 남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는 때가 많다. 그리고 싫어하는 상사에게 이를 감추고 어느 정도는 그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데 난 발끈, 울컥, 하느라 그런 연극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코치의 주제를 '연극'으로 잡았다.


타고난 성격이 몇 번 코칭을 받는다고 변하지는 않을 게다. 그 점,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력을 하는 건,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내 표정을 감추고 싶어서다. 그리고 한 회, 한 회, 코칭을 거듭할수록 느끼는 것은 오히려 솔직하게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더 강렬해 진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고 코믹하게도 말이다. 허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현실에서는 솔직해지기가 매우, 무척 어려우니, 내 글은, 내 글만은 솔직하고 과감하고 사정없이 적나라했으면 한다. 제대로 시니컬하고 더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로 냉소적이게.



전생에, 난 무식한 싸움닭, 아니면 고집있는 전투사, 뭐 이런 거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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